산청 사양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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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사양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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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산청 사양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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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山淸 泗陽精舍 |
주소 |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지리산대로 2901-7 (남사리 264-1)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53호 |
지정(등록)일 | 2009년 1월 15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근대주거/근대가옥 |
시대 | 일제강점기 |
수량/면적 | 2동/1,400㎡ |
웹사이트 | 산청 사양정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산청 사양정사는 구한말 유학자 계제 정제용의 아들인 정종화가 남사로 이전한 후 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하여 지은 재실이다. 정제용은 정몽주의 후손으로 구한말 유학자인 허유와 파리장서*를 작성한 곽종석의 문인이다. 사양정사란 ‘사수’ 남쪽의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집이라는 의미로 공자를 흠모하는 뜻을 담고 있으며, 자식들을 교육하고 지인과 교류하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사양정사는 앞면 7칸, 옆면 2칸 규모로, 옆에서 보았을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건물이다. 2칸의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2칸의 온돌방, 왼쪽에는 1칸의 온돌방을 두었으며, 건물 각 끝에는 마루가 1칸씩 설치되어 있다. 높은 천장, 튼실하고 정교하게 손질된 부재, 다락과 벽장 등 풍부한 수납공간, 유리의 사용 등 근대 한옥의 특징적 모습을 잘 보여준다.
정사 앞쪽에 위치한 대문채는 4칸의 광을 설치한 7칸 규모의 큰 건물로 당시 경제력을 확인할 수 있다. 가운데 1칸은 충절을 상징하는 태극문양과 삼지창이 설치된 솟을대문**으로 구성하였다.
- 파리장서(巴里長書) : 1919년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에 참여하지 못한 유림들이 1차 세계대전 종전 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강화회의에 독립을 호소하며 보낸 청원서.
- 솟을대문 : 출입문 좌우로 설치된 행랑채의 지붕보다 높이 솟게 지은 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