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류씨 무실종택
전주류씨 무실종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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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전주류씨 무실종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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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州柳氏 務實宗宅 |
주소 | 경북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470-43번지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47호 |
지정(등록)일 | 1984년 5월 21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
수량/면적 | 3동 |
웹사이트 | 전주류씨 무실종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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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무실종택은 전주류씨 수곡파(水谷派)의 종택이다. 종택이란 한 문중에서 맏이로 이어 온 가족이 대대로 사용해온 집을 말한다. 1550년 무렵 전주류씨 류성(柳城, 1533~1560)이 처가가 있는 수곡리에 정착한 이후 전주류씨 후손들이 대대로 살게 되었다.
이 집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수곡리 691번지에 있었는데,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1988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왔다.
무실종택은 안채와 사랑채가 있는 ‘ㅁ’자형의 정침(正寢), 사당, 행랑채와 연결된 대문채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가운데에 대청을 두고 양쪽에 온돌방을 배치했다. 왼쪽 온돌방 아래에 부엌이 있었으나 이곳은 현재 사용하지 않는다. 정침의 왼편에 있는 사랑채는 1991년의 화재 이후 다시 지은 것이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무실종택은 전주류씨 수곡파의 종택이다. 종택이란 한 집안의 종가가 대대로 사는 집이다. 1550년 무렵 전주류씨 류성(1533-1560)이 처가가 있는 수곡리에 정착한 이후 이 마을에 전주류씨 후손들이 대대로 살게 되었다.
이 집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수곡리 691번지에 있었는데,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1988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왔다.
무실종택은 행랑채와 연결된 대문채, 안채와 사랑채가 있는 ‘ㅁ’자형의 정침,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가운데에 대청을 두고 양쪽에 온돌방을 배치했다. 왼쪽 온돌방 아래에 부엌이 있었으나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정침의 왼편에 있는 사랑채는 1991년의 화재 이후 다시 지은 것이다.
참고자료
- 전주류씨 무실 종택, 디지털안동문화대전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0946
- 무실종택, 안동의 고가 http://www.gotaek.kr/coding/sub1/sub1_2.asp?seq=79&code_area=&gotaek_nm=%B9%AB%BD%C7%C1%BE%C5%C3&type_group=16 -> 사진 상세
- <참고> 물에 잠겨있는 마을 굽어보는 수애당의 당당한 위용, 경북매일, 2020.5.5. https://www.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845299 -> 마을의 입향조 류성(1533~1560)도 27살에 어린 아들 두 명 두고 요절한다. 외갓집의 보살핌 속에 자란 큰 아들 기봉 류복기(1555~1617)는 임진왜란 때 최소로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 의병과 창녕 화왕산 전투에서 공을 세웠고, 작은 아들 류복립은 외삼촌 학봉 김성일을 따라 진주성을 지키다가 순절하여 후손이 없다. 그래서 지금 무실파 자손들은 기봉의 후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