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전주류씨 무실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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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국문집필

기존 국문

이 건물은 전주류씨 수곡파 대종택으로 정확한 건립연대는 확인할 수는 없으나 1600년 후기 또는 1700년 경으로 추정된다. 규모는 정면 7칸, 측면 6칸이며 7칸의 행랑채를 두어 대문을 달았다. ‘口’자형 구조로 사랑채와 대청이 있는 겹집이다. 본채 뒤편에 사당이 있다.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1988년 현 위치로 옮겼다.

전주류씨 류윤선(柳潤善)이 한양에서 분가하여 영주에서 거주하다가 그의 아들 류성(柳城)이 무실[水谷]에서 살게 되었다. 그 후부터 자손이 번성하고 인재가 많이 배출되어 영남에서 이름난 문중이 되었다.

수정 국문

초고

이 건물은 전주유씨 수곡파의 대종가가 대대로 살아오는 집이다. 전주유씨는 고려 후기 완산백 유습(柳濕,1367~1439)을 시조로 하고 있으며, 이황(李滉, 1501~1570)의 학문을 이어받아 학문적 기틀을 마련하였다. 유윤선(柳潤善,?~?))이 한양에서 분가하여 영주에서 거주하다가 그의 아들 유성(柳城,?~?)이 무실[水谷]에서 살게 되었다. 그 후부터 자손이 번성하고 인재가 많이 배출되어 영남에서 이름난 문중이 되었다.

무실 종택의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7세기 후반 또는 18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 1988년 임하댐 건설로 원래 있던 곳인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691번지에서 현 위치로 옮겨 왔다. 1991년 봄 사랑채에 화재가 발생하여 다시 보수하였다.

본채는 정면 7칸, 측면 6칸의 민도리 홑처마 팔작지붕집이다. 부속 건물로 솟을대문, 행랑채와 사당이 있다. 정침(正寢 : 집 안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집 또는 방)은 ‘ㅁ’자형이지만 전면 좌측의 사랑채가 돌출한 형이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크기로 정면 3칸은 대청으로 사용하고 있다. 대청의 왼쪽에는 2칸의 안방이 있고 안방 아래에는 2칸 크기의 부엌이 있으나 현재는 사용하지 않고 대신 부엌 아래의 방 2개를 터서 부엌으로 사용하고 있다. 행랑채는 솟을대문과 연결되어 있는데 정면 6칸, 측면 1칸의 크기이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맞배지붕집인데 내부는 3칸을 통간(通間)으로 하여 마루를 깔았다.


※柳의 독음에 대한 통일이 필요함. 일단 국가문화유산포털을 기준으로 ‘유’로 통일하였음. 이 경우 항목명도 바꿀 필요가 있음.
※ 유윤선, 유성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음.

초고 수정

이 집은 전주류씨(全州柳氏) 수곡파(水谷派)의 종택으로,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 사이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종택이란 한 문중에서 맏이로 이어 온 가족이 대대로 사용해온 집을 말한다.

수곡리는 1550년 무렵 류성(柳城, 1533~1560)이 결혼 후 처가가 있는 이 마을에 정착한 이후 전주류씨 후손들이 대대로 살고 있다.

집은 안채와 사랑채가 있는 ‘ㅁ’자형의 정침(正寢), 사당, 행랑채와 연결된 대문채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가운데에 대청을 두고 양쪽에 온돌방을 배치했다. 왼쪽 온돌방 아래에 부엌이 있었으나 이곳은 현재 사용하지 않는다.

정침의 왼편에 있는 중문부터 갓사랑방과 사랑 대청이 있고, 대청의 후면에 큰사랑방을 두었다. 갓사랑은 아들이 거처하고 큰사랑은 아버지가 기거하는 공간이다. 사랑 대청은 건물에서 약간 돌출되어 있으며, 지붕도 살짝 높게 올려져 있다. 지금의 사랑채는 1991년의 화재 이후 다시 지은 것이다.

이 집은 원래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691번지에 있었는데, 임하댐 건설로 인해 1988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왔다.

  • 의성김씨의 두 아들 류복기(柳復起, 1555~1617), 류복립(柳復立, 1558~1593)은 외갓집의 보살핌 속에 자랐으며,큰아들 류복기가 가계를 이어 오늘날의 ‘무실류씨’가 있게 하였다. 류복기(1555~1617)는 임진왜란 때 최소로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 의병과 창녕 화왕산 전투에서 공을 세웠고, 작은 아들 류복립은 외삼촌 학봉 김성일을 따라 진주성을 지키다가 순절하여 후손이 없다.
  • 안방 아래에는 2칸 크기의 부엌이 있으나 현재는 사용하지 않고, 부엌 아래의 방 2개를 터서 부엌으로 사용하고 있다.
  • 집의 왼편에는 수애당(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6호)이 자리하고 있다.


1차 수정

무실종택은 전주류씨 수곡파(水谷派)의 종택이다. 종택이란 한 문중에서 맏이로 이어 온 가족이 대대로 사용해온 집을 말한다. 1550년 무렵 전주류씨 류성(柳城, 1533~1560)이 처가가 있는 수곡리에 정착한 이후 전주류씨 후손들이 대대로 살게 되었다.

이 집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수곡리 691번지에 있었는데,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1988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왔다.

무실종택은 안채와 사랑채가 있는 ‘ㅁ’자형의 정침(正寢), 사당, 행랑채와 연결된 대문채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가운데에 대청을 두고 양쪽에 온돌방을 배치했다. 왼쪽 온돌방 아래에 부엌이 있었으나 이곳은 현재 사용하지 않는다. 정침의 왼편에 있는 사랑채는 1991년의 화재 이후 다시 지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