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두산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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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두산서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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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경주 두산서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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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州 斗山書堂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송전리 149-1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04호 |
지정(등록)일 | 2013년 6월 24일 |
분류 |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당 |
수량/면적 | 1곽(7동) |
웹사이트 | 경주 두산서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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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문옹 김석견(汶翁 金石堅, 1546~1614)과 그의 세 아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정조 22년(1798) 두산사(斗山祠)를 건립하였다. 그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19년 고쳐지으면서 두산서당으로 바뀌었다. 문중에는 공신녹권(功臣錄券)* 3책과 유품이 전해지고 있다.
경주 출신인 김석견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용력이 뛰어나고 무예에 능해 김삼몽(金三夢)이라 불리던 몽수(夢秀)·몽량(夢良)·몽남(夢南) 삼형제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출전하였다. 둘째아들 몽량은 전사하고 자신은 부상을 입었다. 난이 평정된 후 그는 아들과 함께 공을 인정받아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올랐으며, 순조 16년(1816) 통정대부병조참의로 추증**되었다.
두산서당은 일반적인 서당의 배치 형식에서 벗어나 지형조건에 맞춰 강당과 사당을 나란히 배치한 점이 특징이다.
- 공신녹권(功臣錄券) : 고려·조선시대에 공신을 선정하고 공훈을 기록하여 나누어준 책자
- 추증(追贈) : 죽은 사람의 관작(官爵)을 올려 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