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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충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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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충의사
진주 충의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진주 충의사
한자 晉州 忠毅祠
주소 경남 진주시 이반성면 용암길 59-2
지정(등록) 종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1호
지정(등록)일 1983년 7월 20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수량/면적 2동
웹사이트 진주 충의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충의사는 조선 선조 시절 임진왜란 때 북관대첩(北關大捷)을 이룬 충의공 정문부*를 모신 사당이다.

처음에는 귀곡동 일명 ‘까꼬실’에 있었으나 1995년 남강댐 숭상공사로 물에 잠기게 되어 이곳으로 옮겼다.

건물은 사당인 충의사, 가호서원, 유물전시관, 농포집 목판(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67호)을 보관한 장판각이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조선 중기의 명장 정문부(1565-1624)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정문부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부임지였던 함경북도에서 의병을 조직해 활약하였다. 1624년의 반란에 연루되어 고문을 받다 죽었으며, 1666년에 신원되었다.

전각 안에는 정문부의 유품 중 의복 1점과 환도 1점, 임금에게 받은 교지 등의 문서들이 보존되어 있다.

경내에는 사당 충의사를 비롯해 유물 전시관과 정문부 농포집 목판(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67호)을 보관하는 장판각, 강당 등의 건물들이 있으며, 왼편에 가호서원이 자리한다.

원래 후손들이 모여 사는 귀곡동에 있었으나, 1995년 남강댐 공사로 인해 이곳으로 옮겨 세우게 되었다.

  • [정문부 농포집 목판] 항목 참조
  • 충의사의 현판은 한글로 되어 있는데, 1970년 가호서원을 새로 지을 때 박정희 대통령이 보내온 것이다.

참고 자료

  • 충의사와 가호서원, 농포 정문부 - 진주 [39], 문화재?문화재!,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mallarmel/10077487044 -> 가호서원과 충의사 사진 확인
  • 충의사, 가호서원 홈페이지 http://gaho.kr/gaho/chung/ -> 상세 정보 ; 충의사(忠義사)는 1592년(선조25)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충의공(忠毅公)정문부(鄭文孚)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둔 사당(祠堂)이다.

사당은 삼문을 갖춘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이다. 경내(境內)에는 충의공의 일대기와 유물을 전시한 정문부선생 유물전시관, 농포집 책판을 보관하고 있는 장판각(藏板閣),강당(講堂)등의 부속건물이 있다. 후손들이 거주하는 진주의 까꼬실에는 종가와 부조묘사당이 있었는데 1970년 가호서원을 세우면서 당시의 박정희대통령으로부터 「충의사」라는 편액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