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당 회맹단
남당 회맹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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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남당 회맹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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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塘 會盟壇 |
주소 |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용반리 460번지 |
지정(등록) 종목 | 고창군 향토문화유산 제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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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남당 회맹단'은 임진왜란 당시 채홍국과 고덕붕 등 의병 92명이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겠다는 맹약을 한 곳이다. 이 의병들은 회맹단 앞에서 훈련을 하였으며, 군량 300석을 모아 의주 행재소*에 보내기도 하였다. 이들은 1597년 정유재란 때에 다시 의병을 일으켜 장등원을 거쳐 부안 호벌치에서 23일 동안 격전을 벌인 끝에 순국하였다. 이런 충절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고종은 1872년에 채홍국에게 병조 판서를 추증**하고 정려를 내렸다.
남당 회맹단은 왕릉 모양의 언덕이며, 앞쪽에 순절자 92명을 안치한 모충사가 자리하고 있다. 한편, 남당 회맹단이 있는 이곳은 백제의 토기류와 옥류, 철로 만든 말의 장식이나 다수의 관 못 등이 수습된 것으로 보아, 백제 시대 돌방무덤〔석실분〕일 가능성이 높다.
- 행재소: 왕이 상주하는 궁궐을 떠나 멀리 거동할 때에 임시로 머무르는 별궁
- 추증: 사후 관직을 내리는 일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곳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채홍국(1534-1597) 등 의병 92명이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겠다는 맹약을 한 곳이다. 말의 피를 나누어 마시며 맹약을 나누었다고 하여 혈맹단이라고도 한다.
채홍국은 당시 모인 300여 명의 의병들을 이끄는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다. 이들은 회맹단 앞에서 훈련을 하고, 군량 400여 석을 모아 당시 선조가 피난해 있던 의주 행재소로 보내기도 하였다. 이들은 1597년 정유재란 때 다시 의병을 일으켰고, 부안 지역에서 전투를 하다가 순국하였다.
이러한 충절을 뒤늦게 인정받아 채홍국은 1872년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정려를 받았다.
한편, 이곳에서는 1963년에 백제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류, 옥류, 철로 만든 말의 장식이나 다수의 관 못 등이 수습되었다. 해당 유물은 국립전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1964년에는 채홍국의 후손과 고창 군민들이 뜻을 모아 기적비(紀績碑)를 새로 세웠다.
남당 회맹단 바로 옆에는 채홍국이 정려를 받은 1872년 함께 향사된 92인을 모신 사당인 모충사가 있다.
참고 자료
- 남당회맹단 http://www.namdang.org/?Mpage=sub03 -> 정보들 확인, 사진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