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 해설문

화령전 - 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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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정전에서 제사를 지낼 때 제사를 주관하는 헌관이 제사를 준비하는 곳이다. 국왕이 직접 제사지낼 때는 어재실로도 쓰였다. 헌관은 재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대기하고 있다가 시간이 되면 재실 앞 동문을 통해 정전 마당으로 들어선다. 동문에서 정전 월대 사이에는 헌관이 나아가는 길을 구분해 놓았으며 월대에 오르기 전에 대기하는 장소인 판위(版位)가 마련되어 있다. 국왕 친제 또는 작헌례 때는 이 길을 따라 국왕이 판위에 나아간다. 제사 시각이 되면 판위에서 월대 동편 계단을 통해 월대에 오른다. 재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1칸반 규모이며 좌우 양 끝에 온돌방이 1칸씩 있고 가운데 3칸은 대청을 두었다.

현재 대청 처마 밑에는 풍화당(風化堂)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1908년 정전에 모시고 있던 정조 어진을 서울로 옮겨 모시고 난 후에 쓸모를 잃은 화령전을 두고 당시 국정을 총괄하던 내각에서 화령전의 빈 건물을 수원의 풍화당 부로들이 머물면서 관리하도록 하라는 명을 내렸다. 풍화당이란 수원 지역 향교 유림을 지칭한다. 이명에 따라 수원의 유림에서 재실을 거처로 사용하면서 풍화당으로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재실 본래의 기능에 맞추어 정전에서 제례를 있을 때 제관이 머무는 장소로 쓰이고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정전에서 제사를 지낼 때 제사를 담당하는 관리가 대기하던 곳이다. 국왕이 직접 제사에 참여할 때는 국왕이 이 건물에서 옷을 갈아입고 정전으로 나아갔다. 건물 앞 출입문에서 정전 까지 왕이 이동하는 경로를 따라 바닥에 벽돌로 깔아 동선을 표시했다. 실내 중앙 바닥은 나무 판자(마루)를 깔았고 좌우 방은 온돌을 설치했다. 마루와 온돌은 한국의 전통적인 주택의 기본적인 구성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