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 해설문

노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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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낙남헌에 잇대어서 지은 행궁의 별당이다. 1794년(정조18) 가을, 행궁을 증축하면서 낙남헌과 함께 지어졌다. 정조가 왕이 아끼는 신하들인 이가환과 정약용에게 이르기를, 앞으로 10년이 지난 뒤 화성에서 노년을 보낼 것이므로 화성에 노래당을 지었노라고 말했다는 기사가 정약용이 지은 이가헌의 묘지명에 보인다. 또 정조대왕 행장에도 노래당을 지어 왕위를 물려주고 화성에 내려와 지낼 뜻을 비쳤다는 대목이 보인다. 정조는 아들이 나이 15세가 되는 1804년 갑자년이 되면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화성에 내려와 지내려는 뜻을 내비쳤는데, 노래당은 그런 징표 중의 하나였던 셈이다. 건물은 낙남헌의 서쪽 끝에서 직각 방향으로 꺾여서 남쪽으로 4칸 규모이며 서남쪽에는 득중정이 자리 잡고 있어서 낙남헌, 노래당, 득중정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이다. 노래당 건물은 동향하고 있으며 전면에 퇴칸을 개방하고 난간을 갖추어 편안한 살림집 같은 구성을 하고 있다. 건물 앞 마당에 큰 우물이 있고 마당 끝에는 별돌로 담을 쌓아 바깥에서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했다. 담장 중앙의 출입문을 난로(難老)라고 이름 짓고 낙남헌과 닿아있는 곳의 작은 문 이름을 가풍(歌風)이라고 지었다. 난로는 길이 젊음을 보존한다는 뜻이며, 가풍은 한나라 고조가 고향 패현에 내려가 부로와 친지들을 불러 잔치를 열어주고 대풍가를 불렀던 곳에 세운 대 이름이다. 문 이름에서 오래 수명을 누리며 한나라 고조의 위업을 기리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벽돌담은 사라지고 없던 것을 최근에 다시 세웠다.

  • 연혁 - 1794년(정조18) 건립 / 2002년 수리
  • 구조 - 겹처마 맞배지붕

영문

영문 해설 내용


낙남헌과 연결된 별당이다. 낙남헌을 세우면서 왕이 휴식하는 곳을 염두에 두고 지었다. 집 이름은 ‘늙음이 찾아온다’는 뜻이다. 정조 임금은 아들이 15세가 되는 1804년에 왕위를 물려주고 자신은 화성에 내려와 지내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한다. 이 건물 이름에 그런 의미를 담았다. 그러나 왕은 1800년에 49세로 숨을 거두었고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