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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화암사 우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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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화암사 우화루
Uhwaru Pavilion of Hwaamsa Temple, Wanju
완주 화암사 우화루,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완주 화암사 우화루
영문명칭 Uhwaru Pavilion of Hwaamsa Temple, Wanju
한자 完州 花巖寺 雨花樓
주소 전라북도 완주군 화암사길 271 (경천면, 화암사)
국가유산 종목 보물 제662호
지정(등록)일 1980년 6월 11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각루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완주 화암사 우화루,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이 건물은 극락전의 정문과 같은 성격의 누문형식인데 정면만을 누문형식으로 하고 후면은 단층 건물로 한 반루각식으로 되어 있다. 현재의 건물은 조선 광해군 3년(1611)에 세워진 것으로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수리되었으나 크게 변형되지는 않은 것 같다. 정면 지층의 기둥은 4칸이나 2층에서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되어 있다. 공포는 안과 밖이 모두 3출목형식의 다포집 양식이며, 공포부재의 조각 솜씨 등으로 보아 조선초기 양식이 가미된 느낌이 든다. 내부는 남쪽 중앙에 고주 2개를 세워 대들보를 그 위에 얹고 한쪽으로 이어진 퇴랑은 평주 위 공포에 얹게 하였다. 천정은 연등천정이며 대들보와 고주 위에서는 화반형식의 포작을 짜서 동자기둥의 기능을 하도록 하였다.

수정 국문

초고

이 건물은 극락전의 정문의 역할을 하는 누각이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불탄 건물을 1611년 다시 지었으며, 이후 여러 차례의 수리를 거쳤지만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우화루는 경사진 땅에 돌로 축대를 쌓고 그 앞에 기둥을 나란히 세워 마루를 놓았다. 그래서 절 입구를 향한 남쪽 방향은 2층 누각의 모습이지만, 반대쪽은 단층 건물로 되어 있다.

누각의 위층에는 ‘불명산화암사(佛明山花巖寺)’라는 편액이 걸려있으며, 아래층은 축대로 막혀 있어 건물 왼편에 별로도 나 있는 출입문을 지나야 경내에 진입할 수 있다.

남쪽 방향은 나무판자로 벽을 막고 창문을 내었지만, 극락전 방향은 문 없이 마당을 향해 뚫려 있다. 마당과 비슷한 높이에 마루를 구성하였으며 칸을 나누지 않은 하나의 공간으로 되어 있다. 양 옆으로 쌓은 흙벽에는 벽화의 흔적이 있고, 중앙에 ‘우화루’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 출입문 가까운 방향에 목어가 걸려있다. (사진으로 확인 가능) -> 우리나라에서 손 꼽히는 목어라고 함.
  • 내부에 걸린 여러 편액 중 1873년 부모의 건강과 국가의 평안함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아 고종이 하사한 것이 있어 화암사의 원찰(願刹)로서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
  • 화암사는 불명산 시루봉 남쪽에 있는 절로 본사인 금산사에 딸린 절이다. 절을 지을 당시의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원효와 의상이 유학하고 돌아와 수도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신라 문무왕 이전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1981년 해체·수리 때 발견된 상향문에는 1297년에서 1307년 사이에 중창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초창은 그보다 앞선 시대로 추정되며, 조선 숙종 37년(1711)까지 여러번에 걸쳐 수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차 수정

참고 자료

→ 우화루 기본 정보(구조 및 중건 정보)

→ 목어에 대한 정보 (마곡사, 선암사 목어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어로 꼽힌다고 함.)

한 단의 석축을 쌓고 석축 끝에 우화루를 세웠는데, 우화루의 마루 바닥면과 중정의 레벨이 일치하여 엄연히 구분되는 다른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연장되어지는 인상을 받게 한다. 백제계 사찰의 특징인 평지성의 지향이다. 옆으로 돌아 출입을 하도록 한 것은 역시 백제계 사찰의 일반적인 진입방법이다. 지형적인 조건으로 인해 신라계 사찰과 유사한 듯해 보이지만, 공간구성은 백제의 특성을 제대로 살려내고 있다.

→'백제계 사찰'이라는 정보를 살릴 것인지에 대한 고민 필요 - 화암사가 백제식 사찰의 건축 기법이 남아있는 곳이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