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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권씨 병곡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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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ndsey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2월 6일 (목) 17:14 판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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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권씨 병곡종택
Byeonggok Head House of the Andong Gwon Clan
안동권씨 병곡종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안동권씨 병곡종택
영문명칭 Byeonggok Head House of the Andong Gwon Clan
한자 安東權氏 屛谷宗宅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가일길 84 (풍천면)
지정(등록) 종목 시도민속문화재 제138호
지정(등록)일 1999년 12월 30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수량/면적 1곽
웹사이트 안동권씨 병곡종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병곡 종택은 조선 후기 학자였던 병곡 권구(屛谷 權榘)의 집이다. 원래는 병곡 권구의 7대조로 도승지와 경상도 관찰사 등을 지낸 화산 권주(花山 權柱)가 살았던 집인데, 19세기 중엽에 후손들이 고쳐 지었다.

시습재(時習齋)란 이름은 논어에 나오는 글 중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不亦說乎)’에서 따왔다.

정산을 배경으로 풍산들이 바라보이는 마을 한 가운데에 있으며, 6칸 대청이 있는 큰 건물이지만 구조는 간단하고 소박하다. 전체적으로 ‘ㅁ’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으며, 안채 북동쪽에는 사당이 있다.

영문

Byeonggok Head House of the Andong Gwon Clan

This is the head house of the descendants of Gwon Gu (1672-1749, pen name: Byeonggok), a scholar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A head house is a residence passed down among the male successors of a family lineage.

Although it is not known when the house was first built, it was known to have been the house of Gwon Ju (1457-1505), the 7th-generation ancestor of Gwon Gu. Gwon Ju was a civil official who served various high posts including chief royal secretary, governor of Chungcheong-do and Gyeongsang-do Provinces, and vice-minister of rites. However, he was killed in a literati purge. Following this incident, the house was left unattended until the mid-18th century when his descendants repaired the house.

Gwon Gu was a representative scholar of the Andong area who dedicated his life to academics, research, and teaching. The men’s quarters is called Siseupjae, which is a reference to a passage in the Analects of Confucius that says ‘Is it not pleasant to learn with a constant perseverance and appl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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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필요
      • To learn with constant perserverance and application - It is not pleasant?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조선시대의 학자인 권구(1672-1749, 호: 병곡) 가문의 종택이다. 종택이란 한 집안의 종가가 대대로 사는 집이다.

처음 건립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원래는 권구의 7대조인 권주(1457-1505)가 살았던 집이다. 권주는 도승지, 충청도 및 경상도 관찰사, 예조참판 등 고위 관직을 역임한 문신이었으나, 사화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하였다. 이로 인해 이 집은 빈집으로 방치되었다가, 18세기 중엽에 후손들이 고쳐 지었다고 한다.

권구는 안동 지역의 대표적인 학자였으며, 평생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사랑채에 걸린 현판에는 ‘시습재’라는 이 건물의 이름이 쓰여 있는데, 『논어』의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不亦說乎)’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