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 암문-청주 상당산성

HeritageWiki
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2년 7월 14일 (목) 13:10 판 (새 문서: {{개별안내판 |사진=동북 암문.JPG |사진출처= |대표명칭=동북 암문 |한자=東北 暗門 |영문명칭= |종합안내판=청주 상당산성 |위도= |경도= }}...)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이동: 둘러보기, 검색
동북 암문 東北 暗門
동북 암문.JPG
Goto.png 종합안내판: 청주 상당산성



해설문

국문

암문(暗門)은 성을 몰래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든 사잇문이다. 암문은 아군이 적군 몰래 출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축, 양식 등을 나를 때 사용하기도 하였다. 비상시에는 흙으로 문을 막아 통로를 폐쇄할 수 있도록 하였다. 상당산성에는 동북 암문과 서남 암문이 있다.

동북 암문은 동북 방향의 산줄기를 따라 이동할 수 있는 통로일 뿐만 아니라, 동문 밖 골짜기로 모여드는 적군의 뒤쪽으로 가서 포위할 수 있는 중요한 곳에 있다. 암문에는 원래 문짝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고, 문 안쪽에 빗장을 걸었던 네모난 구멍이 남아 있다.

한편 동북 암문의 안쪽 옆면에 ‘강희* 경자 오월(康熙 庚子 五月)’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면 암문이 숙종 46년(1720)에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암문을 만든 책임자인 서세량(徐世良), 양덕부(梁德溥)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그중 양덕부는 영조 4년(1728)에 발생한 이인좌의 난** 때 성문을 열어 반란군에 가담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동북 암문에 새겨진 명문銘文은 상당산성의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 강희: 청나라에서 사용한 연호로, 1662년부터 1722년에 해당한다.
  • 이인좌의 난: 영조 4년(1728) 3월에 발생하였으며 무신란(戊申亂)이라고도 한다. 당시 이인좌, 정희량을 포함한 소론이 영조를 몰아내고 밀풍군을 임금으로 추대하려고 일으킨 반란 사건이다. 이후 소론과 남인이 몰락하게 되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