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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령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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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2년 3월 19일 (토) 17:0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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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령초당
대표명칭 만령초당
한자 萬嶺草堂
주소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수류길 44-33
국가유산 종목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8호
지정(등록)일 1985년 8월 5일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당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만령초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 건물은 조선 후기의 학자 만령 류익휘(萬嶺 柳益輝)가 1680년대에 세운 초당(草堂: 집의 몸채에서 따로 떨어진 곳에 지은 조그마한 집)이다. 류익휘가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길렀던 곳이며, 시를 읊고 학문을 즐기던 곳이기도 하다. 원래 안동시 임동면 마령리의 가르편 마을에 있었으나, 1987년에 임하댐을 건설하면서 현재 위치로 옮겼다.

건물이 자리잡은 터가 다소 기울어져 있어 앞쪽은 누마루(樓마루: 다락처럼 높게 만든 마루)를 이루며, 왼쪽으로만 정자에 드나들 수 있다. 중앙 대청을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앞쪽에는 반 칸 규모의 퇴칸을 두었다. 퇴칸(退間: 안둘렛간 밖에다 딴 기둥을 세워 만든 칸살)의 둘레에는 다시 칸살(일정한 간격으로 공간 사이를 갈라서 나누는 창살)을 달아내어 헌함(軒檻: 대청 기둥 밖으로 돌아가며 놓는 좁은 마루)을 둘렀다. 지붕은 다소 심하게 기울어져 있고, 추녀(네모지고 끝이 번쩍 들린, 처마의 네 귀에 있는 큰 서까래 또는 그 부분의 처마) 부분은 둥그스름한 모양이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만령초당은 조선시대의 학자 류익휘(1629-1698, 호: 만령)가 1680년대에 지었다. 류익휘는 이곳에서 후학을 길렀으며, 시를 읊고 학문을 즐기기도 하였다. 원래 안동 마령리에 있었으나, 1987년에 임하댐을 건설하면서 현재 위치로 옮겼다.

건물이 자리잡은 터가 다소 경사져 있어 앞쪽은 누마루 형태로 지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왼쪽의 돌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대청을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을 두었고, 앞쪽에는 툇마루를 두었다. 툇마루 앞에는 난간을 두른 좁은 마루를 하나 더 두어 공간을 확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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