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남휘, 정선공주 묘역
창녕 남휘, 정선공주 묘역 Tombs of Nam Hwi and Princess Jeongseon, Changnye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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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창녕 남휘, 정선공주 묘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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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Tombs of Nam Hwi and Princess Jeongseon, Changnyeong |
한자 | 昌寧 南暉, 貞善公主 墓域 |
주소 | 경상남도 창녕군 부곡면 구산리 산 1-2 |
지정번호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36호 |
지정일 | 1997년 2월 13일 |
분류 | 유적건조물/무덤/무덤/기타 |
수량/면적 | 2기 |
웹사이트 | 창녕 남휘, 정선공주 묘역,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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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조선 태종의 넷째 딸 정선공주와 부마駙馬 남휘의 묘이다. 남휘는 의령 남씨의 7세손으로, 정선공주와 결혼하여 임금의 사위인 부마가 되었다.
남휘, 정선공주의 묘는 각각 나란히 묏자리를 쓴 쌍분으로 서쪽에 남휘, 동쪽에 정선공주의 묘가 위치한다. 묘는 세 개의 단으로 되어있는데, 윗단에 두 개의 무덤이 있고 그 주위에 석물(石物)*들이 놓여있다. 그 중 무덤 뒤쪽에 석양(石羊)**이 세 방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중간단과 아랫단에도 석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원래 남휘묘는 경기도 안성시 장서리, 정선공주묘는 경기도 평택시 동천리에 있었는데, 1974년에 현재 놓여 있는 석물과 함께 이곳으로 옮겨졌다.
- 석물(石物) : 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든 여러 가지 물건
- 석양(石羊) : 왕릉이나 무덤 앞에 세워 놓은 돌로 만든 양 모양 조각
영문
Tombs of Nam Hwi and Princess Jeongseon, Changnyeong
영문 해설 내용
조선 태종(재위 1400-1418)의 막내딸 정선공주(1404-1424)와 남편 남휘(?-1454)의 묘이다. 오른쪽이 정선공주의 묘이고, 왼쪽이 남휘의 묘이다.
두 사람은 1416년에 결혼하였으며, 1남 1녀를 두었다. 공주가 21세에 병으로 죽자, 오빠인 세종(재위 1418-1450)은 '공주는 성품이 정숙하고 곧으며 행실은 공손하고 착하였다'고 하며 크게 슬퍼하였다.
본래 남휘의 묘는 경기도 안성에, 정선공주의 묘는 경기도 평택에 있었는데, 1974년 남휘의 후손들에 의해 석물들과 함께 이 곳으로 옮겨졌다. 사각형으로 조성된 봉분 아래쪽에는 봉분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직사각형의 돌을 둘렀다. 봉분 앞에는 상석, 묘비, 향로석, 장명등이 각각 한 쌍씩 있으며, 양옆 끝에는 문인석이 두 쌍 있다. 사자상 한 쌍은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무덤 뒤쪽에는 돌로 만든 양이 세 개 있다.
참고 자료
-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hk022644&logNo=221070035001&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 "밀양 한촌서 만난 세종의 누이 정선공주의 묘", 경남일보 2013.4.9. - 근처 석물 설명 상세
- "정선공주(貞善公主)", 위키 실록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 "정선 공주에게 사제하는 글", 세종실록 23권, 세종 6년 2월 2일 무신 2번째기사.
- 조선 세조 대의 장군 남이(1441∼1468, 전설이 많이 전해짐)의 친조부-친조모이며, 신사임당의 외고조부-외고조모(딸이 신사임당의 할아버지를 낳았음.)
- 남휘는 과부의 아들이었지만 그 집안이 명문가였다고 하며, 결혼 후에는 유교의 삼년상을 따르는 정선공주와 불화가 있어 여노비와 바람을 피웠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