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공주(貞善公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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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404년(태종 4)~1424년(세종 6) = 21세]. 조선 제 3대 임금인 태종(太宗)의 딸로 공주.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어머니는 원경왕후(元敬王后)이다. 부마는 의령 남씨(宜寧南氏)의산군(宜山君)남휘(南暉)이다. 세종(世宗)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출생 및 사망

정선공주는 1404년(태종 4) 태종과 원경왕후 사이의 4남 4녀 가운데 4녀로 태어났다. 1415년(태종 15) 남경문(南景文)의 아들 남휘가 정선공주의 부마로 결정되었고, 이듬해인 1416년(태종 16) 두 사람의 혼인 후 남휘는 의산군에 봉해졌다.(『태종실록』 16년 2월 2일),(『태종실록』 16년 2월 4일)

그러나 1624년(세종 6) 21세의 젊은 나이로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났다. 당시 세종은 왕의 여자 형제의 초상도 왕의 딸과 동등하게 하여야 한다며 정선공주의 상장(喪葬)은 태종의 딸로서 태종 시대 때 세상을 떠난 경안공주(慶安公主)의 상장을 따르게 하였다.(『세종실록』 6년 1월 25일),(『세종실록』 6년 2월 2일)

성품과 일화

정선공주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공주는 성품이 정숙(靜淑)하고 곧으며, 행실은 공손하고 착하였다. 중곤(中壼)에 있을 때로부터 극진한 효성이 숙성하였고, 집을 가지기에 이르러서 근검함이 더욱 나타났다. 바로 규문(閨門)의 화목함을 이루었고, 이로써 척리(戚里)의 규범을 보여 주었다.(『세종실록』 6년 2월 2일)

묘소와 후손

묘소는 경상남도 창녕군 부곡면 구산리에 있다. 원래는 경기도 평택시 동천리 사후동에 있었으나, 1974년 의령 남씨 종중에서 현재의 위치로 이장 후 관리하고 있다. 1997년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 236호로 지정되었다.

정선공주와 부마 남휘는 1남 1녀를 두었다. 1남은 남빈(南份)이고, 1녀는 신자승(申自繩)의 처가 되었다. 남빈은 3남을 주었는데, 그 장남이 남이(南怡)의 옥으로 유명한 남이이다. 1468년(예종 즉위년) 역모의 주동자로 지목되어 남이가 처형된 후 남이의 할머니인 정선공주에게 하사된 노비들은 모두 내수사(內需司)로 환수되었다.(『예종실록』 즉위년 11월 9일) 한편 정선공주와 부마 남휘 사이의 1녀와 그 남편 신자승의 증손녀는 신사임당(申師任堂)으로 유명한 신인선(申仁宣)이다. 그는 남편 이원수(李元秀)와의 사이에서 조선 중기 대학자로 이름을 떨친 아들 이이(李珥)를 낳았다.

참고문헌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 『단종실록(端宗實錄)』
  • 『예종실록(睿宗實錄)』
  •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記略)』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동문선(東文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춘정집(春亭集)』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지두환, 『태종대왕과 친인척』, 역사문화,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