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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동암사 석조여래좌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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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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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암사 대웅전에 모셔진 석조여래좌상은 고려시대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예안면 신남리의 한 절터에 남아있던 것을 1950년대에 동암사로 옮겨 모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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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암사 석조여래좌상은 예안면 신남리의 한 절터에서 1950년대에 동암사 대웅전으로 옮겨 모신 높이 97cm의 불상이다.  
  
높이 97cm의 이 불상은 화강암을 깎아 만들었다. 원래 등 뒤에는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나타내는 광배가 있던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머리에는 나발이 큼직하게 표현되어 있고, 눈과 코 부분은 심하게 훼손되었다. 오른손은 땅을 향하고 왼손은 무릎 위에 올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이 자세는 부처가 모든 악마를 항복시키고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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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상은 화강암을 깎아 만들었는데, 눈과 코 부분은 심하게 훼손되었다. 등 뒤에는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나타내는 광배가 있던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오른손은 땅을 향하고 왼손은 무릎 위에 올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자세를 하고 있는데, 이 자세는 부처가 모든 악마를 항복시키고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상징한다.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한 전형적인 여래상의 형식을 따랐으나, 무릎과 상체의 어색한 비례와 평면적인 옷주름의 표현은 고려시대 전기 불상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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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한 전형적인 여래상**의 형식을 따랐으나, 머리에 비해 큼직하게 표현한 나발***, 무릎과 상체의 어색한 비례, 평면적인 옷 주름 표현으로 보아 고려 시대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는 통일신라시대의 항마촉지인여래좌상의 전통이 고려 시대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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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악마를 항복하게 하는 인상(印相). 왼손을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은 내리어 땅을 가리키는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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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래상: 석가여래(석가모니)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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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발: 부처의 머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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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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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암사 대웅전에 모셔진 석조여래좌상은 고려시대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예안면 신남리의 한 절터에 있던 것을 1950년대에 지금 위치로 옮겨 모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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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97cm의 이 불상은 화강암을 깎아 만들었다. 원래 등 뒤에는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나타내는 광배가 있던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머리에는 나발이 큼직하게 표현되어 있고, 눈과 코 부분은 심하게 훼손되었다. 오른손은 땅을 향하고 왼손은 무릎 위에 올린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이 자세는 부처가 모든 악마를 항복시키고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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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한 전형적인 여래상의 형식을 따랐으나, 무릎과 상체의 어색한 비례와 평면적인 옷주름의 표현은 고려시대 전기 불상의 특징이다. 이는 통일신라시대 여래좌상의 전통이 고려시대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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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17일 (월) 13:35 판


안동 동암사 석조여래좌상
안동 동암사 석조여래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안동 동암사 석조여래좌상
한자 安東 銅巖寺 石造如來坐像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대곡리 1306
지정번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97호
지정일 2012년 10월 4일
분류 유물/불교조각/석조/불상
시대 고려시대
수량/면적 1구
웹사이트 안동 동암사 석조여래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동암사 석조여래좌상은 예안면 신남리의 한 절터에서 1950년대에 동암사 대웅전으로 옮겨 모신 높이 97cm의 불상이다.

이 불상은 화강암을 깎아 만들었는데, 눈과 코 부분은 심하게 훼손되었다. 등 뒤에는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나타내는 광배가 있던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오른손은 땅을 향하고 왼손은 무릎 위에 올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자세를 하고 있는데, 이 자세는 부처가 모든 악마를 항복시키고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상징한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한 전형적인 여래상**의 형식을 따랐으나, 머리에 비해 큼직하게 표현한 나발***, 무릎과 상체의 어색한 비례, 평면적인 옷 주름 표현으로 보아 고려 시대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는 통일신라시대의 항마촉지인여래좌상의 전통이 고려 시대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악마를 항복하게 하는 인상(印相). 왼손을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은 내리어 땅을 가리키는 인상
  • 여래상: 석가여래(석가모니) 불상
  • 나발: 부처의 머리털

영문

영문 해설 내용

동암사 대웅전에 모셔진 석조여래좌상은 고려시대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예안면 신남리의 한 절터에 있던 것을 1950년대에 지금 위치로 옮겨 모셨다고 한다.

높이 97cm의 이 불상은 화강암을 깎아 만들었다. 원래 등 뒤에는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나타내는 광배가 있던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머리에는 나발이 큼직하게 표현되어 있고, 눈과 코 부분은 심하게 훼손되었다. 오른손은 땅을 향하고 왼손은 무릎 위에 올린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이 자세는 부처가 모든 악마를 항복시키고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상징한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한 전형적인 여래상의 형식을 따랐으나, 무릎과 상체의 어색한 비례와 평면적인 옷주름의 표현은 고려시대 전기 불상의 특징이다. 이는 통일신라시대 여래좌상의 전통이 고려시대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