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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전일상(田日祥, 1700~1753)의 초상화 1점과 전일상이 한가로이 더위를 피하고 있는 풍경을 그린 한유도(閒遊圖) 1점이다. 두 그림 모두 도화서*의 화원이었던 김희겸(金喜謙, ?~1763)이 1748년에 그렸다.
 
조선 후기의 무신 전일상(田日祥, 1700~1753)의 초상화 1점과 전일상이 한가로이 더위를 피하고 있는 풍경을 그린 한유도(閒遊圖) 1점이다. 두 그림 모두 도화서*의 화원이었던 김희겸(金喜謙, ?~1763)이 1748년에 그렸다.
  
전일상은 지금의 홍성군 구항면 내현리의 담양전씨 집성촌에서 태어났다. 5대를 연이은 무관 집안 출신답게 그 역시 무신으로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고, 1728년 이인좌(李麟佐, 1695~1728)가 난을 일으켰을 때에는 적을 진압하고 민심을 안정시키는 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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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상은 지금의 홍성군 구항면의 담양전씨 집성촌에서 태어났다. 5대를 연이은 무관 집안 출신답게 그 역시 무신으로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전일상의 초상화는 비단에 채색하여 그렸다. 가슴의 흉배에 두마리의 학을 수놓은 관복을 차려 입고 호피를 깐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가로 90.2㎝, 세로 142.4㎝의 크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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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상의 초상화는 가로 90.2㎝, 세로 142.4㎝의 크기로 비단에 채색하여 그렸다. 흉배에 두 마리의 학을 수놓은 관복을 차려 입고 호피를 깐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한유도는 종이에 옅은 채색으로 그렸다. 굽이쳐 흐르는 냇물 옆에 정자가 서 있고, 정자에는 전일상이 편한 옷차림으로 앉아 여인들의 시중을 받으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전일상이 오른손에 잡고 있는 매, 정자 기둥에 걸려 있는 칼, 정자 앞에 있는 흰 말 등은 모두 전일상이 무예를 닦은 사람임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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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도는 종이에 옅은 채색으로 그렸다. 굽이쳐 흐르는 냇물 옆에 정자가 서 있고, 정자에는 전일상이 편한 옷차림으로 앉아 여인들의 시중을 받고 있다. 전일상이 오른손에 잡고 있는 매, 정자 기둥에 걸려 있는 칼, 정자 앞에 있는 흰 말 등은 모두 전일상이 무예를 닦은 사람임을 상징한다. 여인들과 마부는 간략하게 표현한 데 비해 전일상의 얼굴은 초상화를 그리듯 자세히 그린 것이 대조적이다. 화폭 왼쪽에는 “무진년 6월에 제작함(戊辰年六月日製)”이라는 글씨와 김희겸의 도장이 찍혀 있다.  
 
 
화폭 왼쪽에는 “무진년 6월에 제작함(戊辰年六月日製)”이라는 글씨와 김희겸의 도장이 찍혀 있다.
 
 
 
무진년은 전일상이 전라우수사(全羅右水使)를 지냈던 1748년이다. 이 그림에는 무인의 호걸스런 모습이 표현되었다.
 
 
 
이 그림들은 한 가문에 문화재급 회화가 있는 특이한 경우이며, 「한유도」의 경우 풍속도 중에서 매우 오래된 것으로 그림에 나타난 생활상이나 문물의 묘사는 당시의 문화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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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6일 (일) 20:35 판


전일상영정및한유도
전일상 영정 및 한유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전일상영정및한유도
한자 田日祥影幀및閒遊圖
주소 충청남도 홍성군
국가유산 종목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7호
지정(등록)일 1987년 12월 30일
분류 유물/일반회화/인물화/초상화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2점
웹사이트 전일상 영정 및 한유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없음.

수정 국문

초고

이 그림들은 화가 김희겸(金喜謙)이 1748년에 그린 것으로 전일상(田日祥, 1700~1753)의 초상화 1점과 한가로이 더위를 피하고 있는 풍경을 그린 한유도(閒遊圖) 1점이다.

전일상은 5대를 연이은 무관 집안에서 태어난 조선 후기 무신으로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고, 1728년 이인좌(李麟佐, 1695~1728)가 난을 일으켰을 때 전공을 세웠다.

「전일상영정(田日祥影幀)」은 비단에 채색하여 그린 그림으로, 오사모(烏紗帽)에 청포단령(靑袍團領)의 관복을 입고 호피를 깐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한유도」는 종이에 옅은 채색으로 그린 그림으로, “무진년 6월에 제작함(戊辰年六月日製)”이라는 관지와 “김희겸”이라는 백문방인(白文方印)이 찍혀 있다. 무진년은 전일상이 전라우수사(全羅右水使)를 지냈던 1748년이다. 이 그림에는 무인의 호걸스런 모습이 표현되었다.

이 그림들은 한 가문에 문화재급 회화가 있는 특이한 경우이며, 「한유도」의 경우 풍속도 중에서 매우 오래된 것으로 그림에 나타난 생활상이나 문물의 묘사는 당시의 문화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1차 수정

조선 후기의 무신 전일상(田日祥, 1700~1753)의 초상화 1점과 전일상이 한가로이 더위를 피하고 있는 풍경을 그린 한유도(閒遊圖) 1점이다. 두 그림 모두 도화서*의 화원이었던 김희겸(金喜謙, ?~1763)이 1748년에 그렸다.

전일상은 지금의 홍성군 구항면의 담양전씨 집성촌에서 태어났다. 5대를 연이은 무관 집안 출신답게 그 역시 무신으로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전일상의 초상화는 가로 90.2㎝, 세로 142.4㎝의 크기로 비단에 채색하여 그렸다. 흉배에 두 마리의 학을 수놓은 관복을 차려 입고 호피를 깐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한유도는 종이에 옅은 채색으로 그렸다. 굽이쳐 흐르는 냇물 옆에 정자가 서 있고, 정자에는 전일상이 편한 옷차림으로 앉아 여인들의 시중을 받고 있다. 전일상이 오른손에 잡고 있는 매, 정자 기둥에 걸려 있는 칼, 정자 앞에 있는 흰 말 등은 모두 전일상이 무예를 닦은 사람임을 상징한다. 여인들과 마부는 간략하게 표현한 데 비해 전일상의 얼굴은 초상화를 그리듯 자세히 그린 것이 대조적이다. 화폭 왼쪽에는 “무진년 6월에 제작함(戊辰年六月日製)”이라는 글씨와 김희겸의 도장이 찍혀 있다.


  • 도화서(圖畵署): 조선시대에 그림 그리는 일을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청.

문맥요소

Nodes

Links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