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예안리 고분군"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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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 =='''해설문'''== | ||
− | === | + | ===국문=== |
− | + | 김해 예안리 고분군은 4~7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무덤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는 유적이다. 이곳은 가야 지역 최초로 덧널무덤*이 조성된 곳인데, 이전 시기에 만들어진 무덤을 훼손하고 그 위에 새로운 양식의 무덤이 조성되었다. | |
− | + | 고분군이 위치한 곳은 옛 김해만이 형성되어 있던 곳으로, 해안의 습한 토양과 이곳에 쌓여 있던 조개껍데기 덕분에 유례없이 많은 인골이 온전하게 남아 있을 수 있었다. 발굴된 250여 기의 인골은 가야인의 체질적 특징부터 매장 관습에 관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이곳에서는 4~5세기 금관가야의 특징을 보여 주는 외절구연** 굽다리 접시를 비롯한 각종 가야의 토기와 철기, 귀걸이, 구슬 등이 이곳에서 출토되었다. 이외에도 두개골이 변형된 인골이 출토되었는데, 이는 가야 편두*** 풍습의 존재를 증명해 준다. | |
− | + | 예안리 고분군은 가야 고분의 형식이 덧널무덤 → 돌덧널무덤**** → 앞트기식돌방무덤*****으로 전개된 과정과 그 연대 구성에 귀중한 정보를 제공하며, 가야 사회의 편두 풍습과 가야인의 형질 연구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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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덧널무덤: 무덤 속에 관을 넣어두는 묘실을 나무로 짜 만든 무덤. |
− | + | *외절구연(外折口緣): 아가리가 밖으로 꺾여 있는 모습. | |
− | + | *편두(偏頭):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에서 널리 행해졌던 풍습, 아직 뼈가 무른 갓난아기 때 머리를 돌로 눌러 두개골을 납작하게 변형시키는 행위. 이를 통해 권위나 아름다움을 표현하거나 민족적 동질감을 나타내었다. 삼국지 위서 동이 변진전에 의하면 가야에 편두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 |
− | + | *돌덧널무덤: 지면을 깊게 파고 자갈 따위의 석재로 덧널을 만든 무덤, 널길이 없는 것이 특징. | |
− | + | *앞트기식 돌방무덤: 돌로 널방을 만들고 출입을 위한 널길을 만든 무덤 양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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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영문=== | |
+ | '''Ancient Tombs in Yean-ri, Gimhae''' | ||
− | + | ===영문 해설 내용=== | |
+ | 예안리 고분군은 4~7세기에 조성된 가야의 무덤이다. 가야 지역 최초로 덧널무덤이 조성된 곳이며, 이전 시기에 만들어진 무덤을 훼손하고 그 위에 새로운 양식의 무덤이 조성되기도 하였다. 덧널무덤, 돌덧널무덤, 앞트기식돌방무덤 등 다양한 양식의 무덤이 발견되어, 가야의 고분 양식이 발전해간 과정과 그 연대 구성에 귀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 ||
− | + | 고분군이 위치한 곳은 옛 김해만이 형성되어 있던 곳으로, 해안의 습한 토양과 이곳에 쌓여 있던 조개껍데기 덕분에 유례없이 많은 인골이 온전하게 남아 있을 수 있었다. 발굴된 250여 기의 인골은 가야인의 체질적 특징부터 매장 관습에 관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앞이마가 편평한 형태로 변형된 두개골이 발견되었다. 이를 통해 갓 태어난 아이의 이마를 돌로 눌러 두개골의 모양을 변형시키고, 이를 통해 권위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풍습이 가야시대에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 |
− | 출토된 유물은 | + | 출토된 유물은 토기류, 농기구, 마구 등과 금은제, 유리, 호박제 장신구 등이 있다. |
− | ==''' | + | =='''참고자료'''== |
− | *가야 자료총서 3 - 가야 발굴조사 자료편 I , 문화재청, 2018. | + | *가야 자료총서 3 - 가야 발굴조사 자료편 I , 문화재청, 2018. → 발굴 무덤 기수 및 유물류 정보 및 발굴조사 내력 확인가능. |
− | → 발굴 무덤 기수 및 유물류 정보 및 발굴조사 내력 확인가능. | + | *한국고전용어사전.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6569&cid=41826&categoryId=41826 → ‘편두’ 정의 |
− | *한국고전용어사전 | ||
− | → ‘편두’ 정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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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12일 (목) 03:06 판
김해 예안리 고분군 Ancient Tombs in Yean-ri, Gimha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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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김해 예안리 고분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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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Ancient Tombs in Yean-ri, Gimhae |
한자 | 金海 禮安里 古墳群 |
주소 |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 예안리 369-6번지 |
지정번호 | 사적 제261호 |
지정일 | 1978년 6월 23일 |
분류 | 유적건조물/무덤/무덤/고분군 |
시대 | 가야 |
수량/면적 | 22,934㎡ |
웹사이트 | 김해 예안리 고분군,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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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김해 예안리 고분군은 4~7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무덤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는 유적이다. 이곳은 가야 지역 최초로 덧널무덤*이 조성된 곳인데, 이전 시기에 만들어진 무덤을 훼손하고 그 위에 새로운 양식의 무덤이 조성되었다.
고분군이 위치한 곳은 옛 김해만이 형성되어 있던 곳으로, 해안의 습한 토양과 이곳에 쌓여 있던 조개껍데기 덕분에 유례없이 많은 인골이 온전하게 남아 있을 수 있었다. 발굴된 250여 기의 인골은 가야인의 체질적 특징부터 매장 관습에 관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이곳에서는 4~5세기 금관가야의 특징을 보여 주는 외절구연** 굽다리 접시를 비롯한 각종 가야의 토기와 철기, 귀걸이, 구슬 등이 이곳에서 출토되었다. 이외에도 두개골이 변형된 인골이 출토되었는데, 이는 가야 편두*** 풍습의 존재를 증명해 준다.
예안리 고분군은 가야 고분의 형식이 덧널무덤 → 돌덧널무덤**** → 앞트기식돌방무덤*****으로 전개된 과정과 그 연대 구성에 귀중한 정보를 제공하며, 가야 사회의 편두 풍습과 가야인의 형질 연구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 덧널무덤: 무덤 속에 관을 넣어두는 묘실을 나무로 짜 만든 무덤.
- 외절구연(外折口緣): 아가리가 밖으로 꺾여 있는 모습.
- 편두(偏頭):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에서 널리 행해졌던 풍습, 아직 뼈가 무른 갓난아기 때 머리를 돌로 눌러 두개골을 납작하게 변형시키는 행위. 이를 통해 권위나 아름다움을 표현하거나 민족적 동질감을 나타내었다. 삼국지 위서 동이 변진전에 의하면 가야에 편두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 돌덧널무덤: 지면을 깊게 파고 자갈 따위의 석재로 덧널을 만든 무덤, 널길이 없는 것이 특징.
- 앞트기식 돌방무덤: 돌로 널방을 만들고 출입을 위한 널길을 만든 무덤 양식.
영문
Ancient Tombs in Yean-ri, Gimhae
영문 해설 내용
예안리 고분군은 4~7세기에 조성된 가야의 무덤이다. 가야 지역 최초로 덧널무덤이 조성된 곳이며, 이전 시기에 만들어진 무덤을 훼손하고 그 위에 새로운 양식의 무덤이 조성되기도 하였다. 덧널무덤, 돌덧널무덤, 앞트기식돌방무덤 등 다양한 양식의 무덤이 발견되어, 가야의 고분 양식이 발전해간 과정과 그 연대 구성에 귀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고분군이 위치한 곳은 옛 김해만이 형성되어 있던 곳으로, 해안의 습한 토양과 이곳에 쌓여 있던 조개껍데기 덕분에 유례없이 많은 인골이 온전하게 남아 있을 수 있었다. 발굴된 250여 기의 인골은 가야인의 체질적 특징부터 매장 관습에 관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앞이마가 편평한 형태로 변형된 두개골이 발견되었다. 이를 통해 갓 태어난 아이의 이마를 돌로 눌러 두개골의 모양을 변형시키고, 이를 통해 권위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풍습이 가야시대에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토기류, 농기구, 마구 등과 금은제, 유리, 호박제 장신구 등이 있다.
참고자료
- 가야 자료총서 3 - 가야 발굴조사 자료편 I , 문화재청, 2018. → 발굴 무덤 기수 및 유물류 정보 및 발굴조사 내력 확인가능.
- 한국고전용어사전.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6569&cid=41826&categoryId=41826 → ‘편두’ 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