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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상 영정 및 한유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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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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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田日祥影幀및閒遊圖
 
|한자=田日祥影幀및閒遊圖
|주소=충청남도 홍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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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충청남도 홍성군 구항면 거북로 422-41(홍주성역사관 소장)
 
|소장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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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번호=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7호
 
|지정번호=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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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해설문'''==
===기존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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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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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상 영정 및 한유도는 조선 후기 무신 전일상(1700~1753)의 초상과 한가롭게 더위를 피하고 있는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한유도(閒遊圖)는 1748년(영조 24) 화가 김희겸(?~1763)이 그렸다.  
  
===수정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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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상은 5대에 걸쳐 무관을 배출한 홍성군 구항면의 담양 전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1661년(숙종 1) 무과에 급제한 뒤, 전라우수사와 경상좌병사를 비롯하여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초고====
 
이 그림들은 화가 김희겸(金喜謙)이 1748년에 그린 것으로 전일상(田日祥, 1700~1753)의 초상화 1점과 한가로이 더위를 피하고 있는 풍경을 그린 한유도(閒遊圖) 1점이다.
 
  
전일상은 5대를 연이은 무관 집안에서 태어난 조선 후기 무신으로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고, 1728년 이인좌(李麟佐, 1695~1728)가 난을 일으켰을 때 전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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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는 가로 90.2㎝, 세로 142.4㎝의 크기로 비단에 그렸다. 가슴에 두 마리 학을 수놓은 관복을 입고, 호랑이 가죽을 깐 의자에 앉아 있는 당당한 무사의 모습이다.  
  
「전일상영정(田日祥影幀)」은 비단에 채색하여 그린 그림으로, 오사모(烏紗帽)에 청포단령(靑袍團領)의 관복을 입고 호피를 깐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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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도는 가로 87.5㎝, 세로 119.5㎝의 크기로, 종이에 옅은 채색으로 그렸다. 정자 위에 앉아 편한 옷차림으로 한가로이 더위를 피하고 있는 모습이다. 오른손에 잡고 있는 매와 정자 기둥에 걸려 있는 칼, 정자 앞에 있는 흰 말 등이 무인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유도」는 종이에 옅은 채색으로 그린 그림으로, “무진년 6월에 제작함(戊辰年六月日製)”이라는 관지와 “김희겸”이라는 백문방인(白文方印)이 찍혀 있다. 무진년은 전일상이 전라우수사(全羅右水使)를 지냈던 1748년이다. 이 그림에는 무인의 호걸스런 모습이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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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과 마부에 비해 전일상의 얼굴은 초상화를 그리듯 매우 상세하여 대조적이다. 18세기 양반들의 더위를 피하는 풍습과 풍속화에 초상화 기법을 활용한 특징을 살필 수 있다.  
  
이 그림들은 한 가문에 문화재급 회화가 있는 특이한 경우이며, 「한유도」의 경우 풍속도 중에서 매우 오래된 것으로 그림에 나타난 생활상이나 문물의 묘사는 당시의 문화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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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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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조선 후기의 무신 전일상(田日祥, 1700~1753)의 초상화 1점과 전일상이 한가로이 더위를 피하고 있는 풍경을 그린 한유도(閒遊圖) 1점이다. 두 그림 모두 도화서*의 화원이었던 김희겸(金喜謙, ?~1763)이 1748년에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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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무신 전일상(1700-1753)의 초상화와 전일상이 한가로이 더위를 피하고 있는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한유도는 1748년 도화서의 화원 김희겸(?~1763)이 그렸다.
  
전일상은 지금의 홍성군 구항면의 담양전씨 집성촌에서 태어났다. 5대를 연이은 무관 집안 출신답게 그 역시 무신으로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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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상은 지금의 홍성군 구항면의 담양전씨 집성촌에서 태어났다. 5대를 연이은 무관 집안 출신이며, 그 역시 전라도와 경상도의 수군을 지휘하는 등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전일상의 초상화는 가로 90.2㎝, 세로 142.4㎝의 크기로 비단에 채색하여 그렸다. 흉배에 두 마리의 학을 수놓은 관복을 차려 입고 호피를 깐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한유도는 종이에 옅은 채색으로 그렸다. 굽이쳐 흐르는 냇물 옆에 정자가 서 있고, 정자에는 전일상이 편한 옷차림으로 앉아 여인들의 시중을 받고 있다. 전일상이 오른손에 잡고 있는 매, 정자 기둥에 걸려 있는 칼, 정자 앞에 있는 흰 말 등은 모두 전일상이 무예를 닦은 사람임을 상징한다. 여인들과 마부는 간략하게 표현한 데 비해 전일상의 얼굴은 초상화를 그리듯 자세히 그린 것이 대조적이다. 화폭 왼쪽에는 “무진년 6월에 제작함(戊辰年六月日製)”이라는 글씨와 김희겸의 도장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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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서(圖畵署): 조선시대에 그림 그리는 일을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청.
 
 
 
====자문의견====
 
#분야별 자문위원 1
 
#*전일상의 초상화는 가로 90.2㎝, 세로 142.4㎝의 크기로->전일상 초상화의 크기는 가로 90.2㎝, 세로 142.4㎝이고,  
 
#분야별 자문위원 2
 
#*종2품 당상요직에 해당하는 경상좌병사를 역임하였다.
 
#*면에 묘사된 전일상은 관모와 관복을 입고 호피를 깐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18세기 이후의 조선후기 초상화가 대부분 측면관으로 인물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면을 향한 모습을 묘사한 이 초상화의 구도는 고식을 따르는 특징을 보여준다. 그림에 표현된 전일상의 호방하고 당당한 체구에서 엄청나게 힘이 장사였다는 그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18세기 양반들의 피서하는 풍습을 살 필 수 있는 이 그림은 풍속도 가운데 시대가 앞서는 작품으로 화면에 보이는 문물의 묘사 등에서 당시 문화나 생활상을 살 필 수 있는 좋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2차 수정====
 
조선 후기의 무신 전일상(田日祥, 1700~1753)의 초상화 1점과 전일상이 한가로이 더위를 피하고 있는 풍경을 그린 「한유도(閒遊圖)」 1점이다. 두 그림 모두 조선시대에 그림 그리는 관청인 도화서(圖畵署)의 화원(畫員) 김희겸(金喜謙, ?~1763)이 1748년에 그렸다.
 
 
 
전일상은 지금의 홍성군 구항면의 담양전씨 집성촌에서 태어났다. 5대를 연이은 무관 집안 출신답게 그 역시 무신으로 전라도와 경상도의 수군을 지휘하는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전일상의 초상화는 가로 90.2㎝, 세로 142.4㎝이고, 비단에 채색하여 그렸다. 화면에 묘사된 전일상은 관모와 관복을 입고 호피를 깐 의자에 앉아 있다. 전일상의 호방하고 당당한 체구에서 엄청나게 힘이 장사였다는 그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한유도」는 종이에 옅은 채색으로 그렸다. 굽이쳐 흐르는 냇물 옆에 정자가 서 있고, 정자에는 전일상이 편한 옷차림으로 앉아 여인들의 시중을 받고 있다. 전일상이 오른손에 잡고 있는 매, 정자 기둥에 걸려 있는 칼, 정자 앞에 있는 흰 말 등은 모두 전일상이 무예를 닦은 사람임을 상징한다. 여인들과 마부는 간략하게 표현한 데 비해 전일상의 얼굴은 초상화를 그리듯 자세히 그린 것이 대조적이다. 18세기 양반들의 피서하는 풍습을 살 필 수 있는 이 그림은 풍속화에 초상화 기법을 활용한 새로운 양식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문맥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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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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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는 가로 90.2㎝, 세로 142.4㎝ 크기의 비단에 채색하여 그렸다. 호랑이 가죽을 깐 의자에 관복을 입고 앉아 있으며, 당당한 무사의 모습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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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도는 가로 87.5㎝, 세로 119.5㎝ 크기의 종이에 채색하여 그렸다. 굽이쳐 흐르는 냇물 옆에 정자가 서 있고, 정자에는 전일상이 편한 옷차림으로 앉아 있다. 전일상이 오른손에 잡고 있는 매, 정자 기둥에 걸려 있는 칼, 정자 앞에 있는 흰 말 등은 모두 전일상이 무예를 닦은 사람임을 상징한다. 여인들과 마부는 간략하게 표현한 데 비해 전일상의 얼굴은 초상화를 그리듯 자세히 그린 것이 대조적이다. 18세기 양반들이 더위를 피하는 풍습을 살필 수 있으며, 풍속화에 초상화 기법을 활용한 새로운 양식을 보여준다.
  
 
=='''참고자료'''==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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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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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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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20 영문집필]]

2020년 10월 1일 (목) 00:53 판


전일상영정및한유도
전일상 영정 및 한유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전일상영정및한유도
한자 田日祥影幀및閒遊圖
주소 충청남도 홍성군 구항면 거북로 422-41(홍주성역사관 소장)
지정번호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7호
지정일 1987년 12월 30일
분류 유물/일반회화/인물화/초상화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2점
웹사이트 전일상 영정 및 한유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전일상 영정 및 한유도는 조선 후기 무신 전일상(1700~1753)의 초상과 한가롭게 더위를 피하고 있는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한유도(閒遊圖)는 1748년(영조 24) 화가 김희겸(?~1763)이 그렸다.

전일상은 5대에 걸쳐 무관을 배출한 홍성군 구항면의 담양 전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1661년(숙종 1) 무과에 급제한 뒤, 전라우수사와 경상좌병사를 비롯하여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초상화는 가로 90.2㎝, 세로 142.4㎝의 크기로 비단에 그렸다. 가슴에 두 마리 학을 수놓은 관복을 입고, 호랑이 가죽을 깐 의자에 앉아 있는 당당한 무사의 모습이다.

한유도는 가로 87.5㎝, 세로 119.5㎝의 크기로, 종이에 옅은 채색으로 그렸다. 정자 위에 앉아 편한 옷차림으로 한가로이 더위를 피하고 있는 모습이다. 오른손에 잡고 있는 매와 정자 기둥에 걸려 있는 칼, 정자 앞에 있는 흰 말 등이 무인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인과 마부에 비해 전일상의 얼굴은 초상화를 그리듯 매우 상세하여 대조적이다. 18세기 양반들의 더위를 피하는 풍습과 풍속화에 초상화 기법을 활용한 특징을 살필 수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조선시대의 무신 전일상(1700-1753)의 초상화와 전일상이 한가로이 더위를 피하고 있는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한유도는 1748년 도화서의 화원 김희겸(?~1763)이 그렸다.

전일상은 지금의 홍성군 구항면의 담양전씨 집성촌에서 태어났다. 5대를 연이은 무관 집안 출신이며, 그 역시 전라도와 경상도의 수군을 지휘하는 등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초상화는 가로 90.2㎝, 세로 142.4㎝ 크기의 비단에 채색하여 그렸다. 호랑이 가죽을 깐 의자에 관복을 입고 앉아 있으며, 당당한 무사의 모습이 나타난다.

한유도는 가로 87.5㎝, 세로 119.5㎝ 크기의 종이에 채색하여 그렸다. 굽이쳐 흐르는 냇물 옆에 정자가 서 있고, 정자에는 전일상이 편한 옷차림으로 앉아 있다. 전일상이 오른손에 잡고 있는 매, 정자 기둥에 걸려 있는 칼, 정자 앞에 있는 흰 말 등은 모두 전일상이 무예를 닦은 사람임을 상징한다. 여인들과 마부는 간략하게 표현한 데 비해 전일상의 얼굴은 초상화를 그리듯 자세히 그린 것이 대조적이다. 18세기 양반들이 더위를 피하는 풍습을 살필 수 있으며, 풍속화에 초상화 기법을 활용한 새로운 양식을 보여준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