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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일상은 지금의 홍성군 구항면 내현리의 담양전씨 집성촌에서 태어났다. 5대를 연이은 무관 집안 출신답게 그 역시 무신으로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고, 1728년 이인좌(李麟佐, 1695~1728)가 난을 일으켰을 때에는 적을 진압하고 민심을 안정시키는 공을 세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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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일상의 초상화는 비단에 채색하여 그렸다. 가슴의 흉배에 두마리의 학을 수놓은 관복을 차려 입고 호피를 깐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가로 90.2㎝, 세로 142.4㎝의 크기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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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유도는 종이에 옅은 채색으로 그렸다. 굽이쳐 흐르는 냇물 옆에 정자가 서 있고, 정자에는 전일상이 편한 옷차림으로 앉아 여인들의 시중을 받으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전일상이 오른손에 잡고 있는 매, 정자 기둥에 걸려 있는 칼, 정자 앞에 있는 흰 말 등은 모두 전일상이 무예를 닦은 사람임을 상징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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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진년은 전일상이 전라우수사(全羅右水使)를 지냈던 1748년이다. 이 그림에는 무인의 호걸스런 모습이 표현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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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그림들은 한 가문에 문화재급 회화가 있는 특이한 경우이며, 「한유도」의 경우 풍속도 중에서 매우 오래된 것으로 그림에 나타난 생활상이나 문물의 묘사는 당시의 문화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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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화서(圖畵署): 조선시대에 그림 그리는 일을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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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6일 (일) 19:41 판
전일상영정및한유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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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전일상영정및한유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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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田日祥影幀및閒遊圖 |
주소 | 충청남도 홍성군 |
지정번호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7호 |
지정일 | 1987년 12월 30일 |
분류 | 유물/일반회화/인물화/초상화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2점 |
웹사이트 | 전일상 영정 및 한유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기존 국문
없음.
수정 국문
초고
이 그림들은 화가 김희겸(金喜謙)이 1748년에 그린 것으로 전일상(田日祥, 1700~1753)의 초상화 1점과 한가로이 더위를 피하고 있는 풍경을 그린 한유도(閒遊圖) 1점이다.
전일상은 5대를 연이은 무관 집안에서 태어난 조선 후기 무신으로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고, 1728년 이인좌(李麟佐, 1695~1728)가 난을 일으켰을 때 전공을 세웠다.
「전일상영정(田日祥影幀)」은 비단에 채색하여 그린 그림으로, 오사모(烏紗帽)에 청포단령(靑袍團領)의 관복을 입고 호피를 깐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한유도」는 종이에 옅은 채색으로 그린 그림으로, “무진년 6월에 제작함(戊辰年六月日製)”이라는 관지와 “김희겸”이라는 백문방인(白文方印)이 찍혀 있다. 무진년은 전일상이 전라우수사(全羅右水使)를 지냈던 1748년이다. 이 그림에는 무인의 호걸스런 모습이 표현되었다.
이 그림들은 한 가문에 문화재급 회화가 있는 특이한 경우이며, 「한유도」의 경우 풍속도 중에서 매우 오래된 것으로 그림에 나타난 생활상이나 문물의 묘사는 당시의 문화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1차 수정
조선 후기의 무신 전일상(田日祥, 1700~1753)의 초상화 1점과 전일상이 한가로이 더위를 피하고 있는 풍경을 그린 한유도(閒遊圖) 1점이다. 두 그림 모두 도화서*의 화원이었던 김희겸(金喜謙, ?~1763)이 1748년에 그렸다.
전일상은 지금의 홍성군 구항면 내현리의 담양전씨 집성촌에서 태어났다. 5대를 연이은 무관 집안 출신답게 그 역시 무신으로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고, 1728년 이인좌(李麟佐, 1695~1728)가 난을 일으켰을 때에는 적을 진압하고 민심을 안정시키는 공을 세웠다.
전일상의 초상화는 비단에 채색하여 그렸다. 가슴의 흉배에 두마리의 학을 수놓은 관복을 차려 입고 호피를 깐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가로 90.2㎝, 세로 142.4㎝의 크기이다.
한유도는 종이에 옅은 채색으로 그렸다. 굽이쳐 흐르는 냇물 옆에 정자가 서 있고, 정자에는 전일상이 편한 옷차림으로 앉아 여인들의 시중을 받으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전일상이 오른손에 잡고 있는 매, 정자 기둥에 걸려 있는 칼, 정자 앞에 있는 흰 말 등은 모두 전일상이 무예를 닦은 사람임을 상징한다.
화폭 왼쪽에는 “무진년 6월에 제작함(戊辰年六月日製)”이라는 글씨와 김희겸의 도장이 찍혀 있다.
무진년은 전일상이 전라우수사(全羅右水使)를 지냈던 1748년이다. 이 그림에는 무인의 호걸스런 모습이 표현되었다.
이 그림들은 한 가문에 문화재급 회화가 있는 특이한 경우이며, 「한유도」의 경우 풍속도 중에서 매우 오래된 것으로 그림에 나타난 생활상이나 문물의 묘사는 당시의 문화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 도화서(圖畵署): 조선시대에 그림 그리는 일을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청.
문맥요소
Nodes
Links
참고자료
- 전일상영정및한유도(田日祥影幀및閒遊圖),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2113401270000#
- 전일상영정및한유도(田日祥影幀─閒遊圖),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C%A0%84%EC%9D%BC%EC%83%81%EC%98%81%EC%A0%95%EB%B0%8F%ED%95%9C%EC%9C%A0%EB%8F%84&ridx=0&tot=5216
- 「전일상 영정 및 한유도」,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http://www.grandculture.net/ko/Contents/Inde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