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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Archaeological Site in Misa-ri, Ha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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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河南 渼沙里 遺蹟
 
|한자=河南 渼沙里 遺蹟
|주소=경기 하남시 미사동 557번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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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경기도 하남시 미사동 557번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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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번호=사적 제269호
 
|지정번호=사적 제2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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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해설문'''==
===기존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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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미사리 유적은 한강상류가 굽어지면서 생긴 남북 3km, 동서 1km의 충적대지 위에 위치하고 있는 선사~역사시대의 유적이다. 1960년 서울대학교 김원룡 교수가 처음으로 확인한 후 1979년에 사적 제269호로 지정되었다. 1980년 한 차례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이후 1987년부터 1992년까지 다시 3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신석기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문화층을 확인하고 모두 466개의 유구를 발굴조사하였다. 미사리 유적은 각 시대의 집터와 생활양식을 알 수 있는 유물이 다량으로 발견되어 서울의 암사동과 더불어 한강 하류 지역 선사문화 및 역사시대 연구의 가장 중요한 유적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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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 미사리 유적은 한강 상류의 충적지*에 위치하고 있는 생활유적이다. 김원룡 선생에 의해 유적이 학계에 처음 알려진 1960년에는 신석기시대의 유적으로 보았으나, 1987년부터 1993년까지 여러 차례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신석기시대부터 초기백제시기까지의 생활유적이 분포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 과정과 유구** 간의 선후관계가 뚜렷해 한국 중부지역 선사시대의 전반적인 사회상을 잘 보여준다.
  
안내판을 중심으로 뒤편 좌·우측에 위치한 유적지는 매장문화재의 보존 및 관리차원에서 현재 복토된 상태임을 부언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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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시대의 유구로는 집터, 불땐자리 등이 발견되었고, 돌도끼, 돌화살촉 등 다양한 석기와 빗살무늬토기가 발굴되었다. 불땐자리가 많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신석기시대 이곳에서 토기를 직접 만들고 음식도 만들었을 것이다.
  
===수정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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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시대의 유구는 정사각형과 직사각형의 집터, 불땐자리, 목책*** 등이 발견되었으며, 덧띠새김무늬토기, 구멍무늬토기, 석기, 옥제 장신구 등이 출토되었다. 목책은 집터가 많은 북쪽의 강가를 따라 분포한다. 주로 적이나 짐승의 침입을 막거나 강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을 막기 위해 설치했을 것이다.  
====초고====
 
하남 미사리 유적은 한강상류가 굽어지면서 생긴 남북 3km, 동서 1km의 충적대지 위에 위치하고 있는 선사~역사시대의 유적이다. 미사리 유적은 서울의 암사동과 더불어 한강 하류 지역 선사문화 및 역사시대 연구의 가장 중요한 유적 중의 하나이다.
 
  
1960년에 유적이 처음으로 확인된 이후 1979년에 사적 제269호로 지정되었다. 1980년 차례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이후 1987년부터 1992년까지 다시 3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신석기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문화층을 확인하고 모두 466개의 유구를 발굴조사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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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백제시기의 유구는 집터, 밭, 부뚜막 등이 있다. 유물로는 다양한 형태의 토기, 물고기를 잡는 데 쓰는 그물추, 철제 화살촉, 장신구, 유리구슬을 만드는 데 쓰는 거푸집, 중국 한나라 때의 거울을 본떠 만든 청동거울이 있다. 백제의 밭은 국내에서 최초로 조사되었다. 당시 이곳에 농업을 기반으로 백제인의 대규모 취락이 있었으며, 백제 초기의 왕도로 여겨지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의 생산기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남 미사리 유적 관련 유물은 현재 하남역사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신석기시대 집자리의 형태는 방형과 원형으로 약 50~80cm를 파고 바닥을 다진 후 가운데에 강돌을 깔아 장방형의 화덕(爐址)을 시설하였다. 야외용 화덕이 29개소나 확인되어 당시 이곳에서 토기를 생산하고 음식을 조리했던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시대 집자리의 형태는 장방형과 방형의 두 가지 형식으로 나휜다. 집자리 면적은 대개 65㎡에서 13.5㎡로 한 집자리에 대략 5~7명이나 11~13명 정도가 함께 기거했을 것으로 보인다. 바닥의 습기를 막기 위해 바닥과 벽을 점토로 보강하였다. 집자리 내부에 을 깔고 둘레를 돌린 석상위석식(石床圍石式) 화덕이 설치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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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적지: 물에 의해 운반된 모래나 흙이 쌓여 이루어진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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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 옛날 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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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책: 나무 울타리
  
원삼국시대의 집자리의 형태는 ‘凸’자형과 ‘呂’자형 및 원형과 방형 등이 확인되는데 한강유역의 전형적인 집자리 형태이다. 벽을 따라 온돌을 만들었고 부뚜막이 있는 아궁이와 부석식 화덕을 갖추었다. 백제시대의 집자리의 형태는 육각형, 방형, 타원형, 장방형 등이며, 부뚜막과 화덕아궁이 시설을 갖추고 있다. 경작유구, 다량의 저장시설, 범람을 방지하는 배수의 기능을 갖고 있는 도랑 등이 확인 되는 것을 볼 때 당시 미사리 지역에 농업을 기반으로 한 백제인의 대규모 취락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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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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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aeological Site in Misa-ri, Hanam'''
  
이후로도 고려시대의 집자리와 저장공, 독무덤(甕棺墓) 등이 확인되어 삼국시대 이후에도 미사동 일대에 지속적으로 사람들이 기거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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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archaeological site in Misa-ri Village is located on the alluvial plain in the upstream area of the Hangang River. This site was first became known to academic circles in 1960, and it was presumed to date to the Neolithic period. However, several excavations from 1987 to 1993 identified archaeological remains dating from the Neolithic period to the early period of the Baekje kingdom (18 BCE-660 CE). The process of the site’s change over time and the temporal relation among the remains is distinct, thus clearly showing the overall social circumstances in the central region of Korea during the Neolithic period.
  
====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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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aeological remains from the Neolithic period include dwelling sites and fireplaces. Excavated artifacts include various stone tools, such as stone axes and stone arrowheads, as well as comb-pattern pottery. Because many fireplaces were identified, this place is presumed to have been used for pottery production and food preparation during the Neolithic period.
하남 미사리 유적은 한강 상류의 충적대지에 위치하고 있는 생활유적이다. 이 유적이 처음 조사된 1960년 당시에는 신석기시대의 유적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1987년부터 1993년까지 여러 차례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신석기시대부터 백제시대까지 다양한 층위의 유적이 분포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각 시기별 유적의 변천 과정이 명확하고 유구 간의 선후 관계를 밝히기에도 매우 용이하기 때문에, 한국 중부 지역 선사시대의 전반적인 사회상을 살피는 데 표준이 된다.
 
  
신석기시대의 유구로는 방형과 원형의 집터, 화덕자리 등이 발견되었고, 다양한 석기와 빗살무늬토기가 다수 발굴되었다. 화덕자리가 31기나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당시 이곳에서 토기를 생산하고 음식을 조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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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aeological remains from the Bronze Age include square and rectangular dwelling sites, fireplaces, and wooden fences. Excavated artifacts include pottery with band engravings, hole-pattern pottery, stone tools, and jade ornaments. The wooden fences were distributed along the northern side of the river, where there is a concentration of dwelling sites. They are presumed to have been installed to block the advances of enemies or beasts or to block the strong winds blowing from the river.
  
청동기시대 지층에서는 방형과 장방형의 집터, 화덕자리, 목책유구 등이 발견되었으며, 토기류, 석기류, 옥제 장신구 등이 출토되었다. 목책유구는 집터가 밀집된 지역 북쪽의 강가를 따라 분포하고 있어, 강한 바람을 막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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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aeological remains from the early Baekje period include dwelling sites, farming fields, and fireplaces. Excavated artifacts include various types of pottery, stone fishing weights, iron arrowheads, ornaments, molds used for making glass beads, and bronze mirrors made modeled on those from Han China (206 BCE-220 CE). In particular, the large farming fields discovered in Misa-ri were the first Baekje-period fields to be surveyed in Korea. This site was home to a large agricultural community of Baekje people, which presumed to have supplied goods to Pungnaptoseong and Mongchontoseong Earthen Fortifications, which are thought to have been the capital during the early Baekje period.
  
백제시대의 유구는 움집, 지상가옥 집자리, 경작유구, 부뚜막 시설 등이 확인되었다. 출토된 유물로는 다양한 형태의 토기, 물고기를 잡는 데 쓰는 그물추, 철제 화살촉, 장신구, 유리구슬을 만드는 데 쓰는 거푸집, 1세기 무렵의 것으로 보이는 청동거울 등이 있다. 특히 미사리에서 발견된 백제시대의 대규모 경작지는 국내에서 처음 조사된 백제시대의 밭 유구이다. 당시 미사리 지역에 농업을 기반으로 한 백제인의 대규모 취락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백제 초기의 왕도로 여겨지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의 생산기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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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facts excavated from this archaeological site are currently exhibited at the Hanam Museum of History.
  
=='''문맥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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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No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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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 미사리 유적은 한강 상류의 충적지에 위치하고 있는 유적이다. 이 유적이 처음 학계에 알려진 1960년에는 신석기시대의 유적인 것으로 보았으나, 1987년부터 1993년까지 여러 차례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신석기시대부터 백제시대 초기까지의 유적이 분포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시간 흐름에 따른 유적의 변화 과정과 유구 간의 선후 관계가 뚜렷하여, 한국 중부지역 선사시대의 전반적인 사회상을 잘 보여준다.
  
===Li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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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시대의 유구로는 집터, 불땐자리 등이 발견되었고, 돌도끼와 돌화살촉 등 다양한 석기와 빗살무늬토기가 발굴되었다. 불땐자리가 많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신석기시대에 이곳에서 토기를 생산하고 음식을 조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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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시대 유구는 정사각형과 직사각형의 집터, 불땐자리, 목책 등이 발견되었으며, 덧띠새김무늬토기, 구멍무늬토기, 석기류, 옥제 장신구 등이 출토되었다. 목책은 집터가 밀집된 북쪽의 강가를 따라 분포한다. 이는 주로 적이나 짐승의 침입을 막거나 강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을 막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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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 초기의 유구는 집터, 밭, 부뚜막 등이 있다. 출토된 유물로는 다양한 형태의 토기, 물고기를 잡는 데 쓰는 그물추, 철제 화살촉, 장신구, 유리구슬을 만드는 데 쓰는 거푸집, 중국 한나라 때의 거울을 본떠 만든 청동거울 등이 있다. 특히 미사리에서 발견된 대규모 밭은 한국에서 최초로 조사된 백제의 밭이다. 당시 이 일대에 농업을 기반으로 한 백제인의 대규모 취락이 있었으며, 백제 초기의 왕도로 여겨지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의 생산기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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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현재 하남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갤러리'''==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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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미사리유적_안내판설치계획.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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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하남미사리유적_신석기주거지.jpg|하남 미사리 유적 신석기시대 주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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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하남미사리유적_신석기주거지.jpg|신석기시대 주거지
파일:하남미사리유적_신석기2.jpg|하남 미사리 유적 신석시시대 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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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하남미사리유적_신석기2.jpg|신석시시대 유구
파일:하남미사리유적_청동기주거지.jpg|하남 미사리 유적 청동기시대 주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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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미사리유적_신석기출토_빗살무늬토기.jpg|신석기시대 출토 빗살무늬토기
파일:미사리유적_신석기출토_빗살무늬토기.jpg|하남 미사리 유적 신석기시대 출토 빗살무늬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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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하남미사리유적_청동기주거지.jpg|청동기시대 주거지
파일:하남미사리 청동기 공렬토기.jpg|하남 미사리 유적 청동기시대 출토 공렬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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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하남미사리 청동기 공렬토기.jpg|청동기시대 출토 공렬토기
파일:하남미사리유적_역사시대_주거지.jpg|하남 미사리 유적 역사시대 주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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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하남미사리유적_역사시대_주거지.jpg|백제시대 주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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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21 영문집필]]

2021년 12월 15일 (수) 10:33 기준 최신판

하남 미사리 유적
Archaeological Site in Misa-ri, Hanam
하남 미사리 유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하남 미사리 유적
영문명칭 Archaeological Site in Misa-ri, Hanam
한자 河南 渼沙里 遺蹟
주소 경기도 하남시 미사동 557번지 외
국가유산 종목 사적 제269호
지정(등록)일 1979년 10월 25일
분류 유적건조물/유물산포지유적산포지/육상유물산포지/선사유물
시대 선사시대
수량/면적 56,479㎡
웹사이트 하남 미사리 유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하남 미사리 유적은 한강 상류의 충적지*에 위치하고 있는 생활유적이다. 고 김원룡 선생에 의해 유적이 학계에 처음 알려진 1960년에는 신석기시대의 유적으로 보았으나, 1987년부터 1993년까지 여러 차례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신석기시대부터 초기백제시기까지의 생활유적이 분포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 과정과 유구** 간의 선후관계가 뚜렷해 한국 중부지역 선사시대의 전반적인 사회상을 잘 보여준다.

신석기시대의 유구로는 집터, 불땐자리 등이 발견되었고, 돌도끼, 돌화살촉 등 다양한 석기와 빗살무늬토기가 발굴되었다. 불땐자리가 많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신석기시대 이곳에서 토기를 직접 만들고 음식도 만들었을 것이다.

청동기시대의 유구는 정사각형과 직사각형의 집터, 불땐자리, 목책*** 등이 발견되었으며, 덧띠새김무늬토기, 구멍무늬토기, 석기, 옥제 장신구 등이 출토되었다. 목책은 집터가 많은 북쪽의 강가를 따라 분포한다. 주로 적이나 짐승의 침입을 막거나 강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을 막기 위해 설치했을 것이다.

초기백제시기의 유구는 집터, 밭, 부뚜막 등이 있다. 유물로는 다양한 형태의 토기, 물고기를 잡는 데 쓰는 그물추, 철제 화살촉, 장신구, 유리구슬을 만드는 데 쓰는 거푸집, 중국 한나라 때의 거울을 본떠 만든 청동거울이 있다. 백제의 밭은 국내에서 최초로 조사되었다. 당시 이곳에 농업을 기반으로 한 백제인의 대규모 취락이 있었으며, 백제 초기의 왕도로 여겨지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의 생산기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남 미사리 유적 관련 유물은 현재 하남역사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 충적지: 물에 의해 운반된 모래나 흙이 쌓여 이루어진 땅
  • 유구: 옛날 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자취
  • 목책: 나무 울타리

영문

Archaeological Site in Misa-ri, Hanam

This archaeological site in Misa-ri Village is located on the alluvial plain in the upstream area of the Hangang River. This site was first became known to academic circles in 1960, and it was presumed to date to the Neolithic period. However, several excavations from 1987 to 1993 identified archaeological remains dating from the Neolithic period to the early period of the Baekje kingdom (18 BCE-660 CE). The process of the site’s change over time and the temporal relation among the remains is distinct, thus clearly showing the overall social circumstances in the central region of Korea during the Neolithic period.

Archaeological remains from the Neolithic period include dwelling sites and fireplaces. Excavated artifacts include various stone tools, such as stone axes and stone arrowheads, as well as comb-pattern pottery. Because many fireplaces were identified, this place is presumed to have been used for pottery production and food preparation during the Neolithic period.

Archaeological remains from the Bronze Age include square and rectangular dwelling sites, fireplaces, and wooden fences. Excavated artifacts include pottery with band engravings, hole-pattern pottery, stone tools, and jade ornaments. The wooden fences were distributed along the northern side of the river, where there is a concentration of dwelling sites. They are presumed to have been installed to block the advances of enemies or beasts or to block the strong winds blowing from the river.

Archaeological remains from the early Baekje period include dwelling sites, farming fields, and fireplaces. Excavated artifacts include various types of pottery, stone fishing weights, iron arrowheads, ornaments, molds used for making glass beads, and bronze mirrors made modeled on those from Han China (206 BCE-220 CE). In particular, the large farming fields discovered in Misa-ri were the first Baekje-period fields to be surveyed in Korea. This site was home to a large agricultural community of Baekje people, which presumed to have supplied goods to Pungnaptoseong and Mongchontoseong Earthen Fortifications, which are thought to have been the capital during the early Baekje period.

Artifacts excavated from this archaeological site are currently exhibited at the Hanam Museum of History.

영문 해설 내용

하남 미사리 유적은 한강 상류의 충적지에 위치하고 있는 유적이다. 이 유적이 처음 학계에 알려진 1960년에는 신석기시대의 유적인 것으로 보았으나, 1987년부터 1993년까지 여러 차례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신석기시대부터 백제시대 초기까지의 유적이 분포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시간 흐름에 따른 유적의 변화 과정과 유구 간의 선후 관계가 뚜렷하여, 한국 중부지역 선사시대의 전반적인 사회상을 잘 보여준다.

신석기시대의 유구로는 집터, 불땐자리 등이 발견되었고, 돌도끼와 돌화살촉 등 다양한 석기와 빗살무늬토기가 발굴되었다. 불땐자리가 많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신석기시대에 이곳에서 토기를 생산하고 음식을 조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청동기시대 유구는 정사각형과 직사각형의 집터, 불땐자리, 목책 등이 발견되었으며, 덧띠새김무늬토기, 구멍무늬토기, 석기류, 옥제 장신구 등이 출토되었다. 목책은 집터가 밀집된 북쪽의 강가를 따라 분포한다. 이는 주로 적이나 짐승의 침입을 막거나 강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을 막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시대 초기의 유구는 집터, 밭, 부뚜막 등이 있다. 출토된 유물로는 다양한 형태의 토기, 물고기를 잡는 데 쓰는 그물추, 철제 화살촉, 장신구, 유리구슬을 만드는 데 쓰는 거푸집, 중국 한나라 때의 거울을 본떠 만든 청동거울 등이 있다. 특히 미사리에서 발견된 대규모 밭은 한국에서 최초로 조사된 백제의 밭이다. 당시 이 일대에 농업을 기반으로 한 백제인의 대규모 취락이 있었으며, 백제 초기의 왕도로 여겨지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의 생산기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현재 하남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갤러리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