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매산고택과 산수정"의 두 판 사이의 차이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사용자 3명의 중간 판 5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1번째 줄: 1번째 줄:
{{진행중}}
 
 
{{문화유산정보
 
{{문화유산정보
 
|사진=영천매산고택과산수정.jpg
 
|사진=영천매산고택과산수정.jpg
22번째 줄: 21번째 줄:
  
 
=='''해설문'''==
 
=='''해설문'''==
===기존 국문===
+
===국문===
없음.
+
매산 고택은 조선 후기 문신인 매산 정중기(梅山 鄭重器)가 짓기 시작하여 그의 아들인 정일찬(鄭一鑽)이 완성하였다. 정중기는 원래 살던 마을에 천연두가 널리 퍼지자 병을 피해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수정 국문===
+
산수정은 매산 고택과 비슷한 시기에 짓기 시작하여 정중기가 만년에 완성한 개인 별서*이다.
====초고====
 
이 집은 조선후기 문신인 정중기(鄭重器, 1685~1757, 호: 매산)가 건축을 시작해서 그의 아들인 정일찬(鄭一鑽)에 의해 완성된 집이다. 정중기의 호를 따서 매산고택이라 하였다. 정중기는 원래 살던 마을에 천연두가 만연하자 병을 피해 이곳으로 옮겨왔다.
 
  
정중기는 정만양(鄭萬陽)과 정규양(鄭葵陽) 형제의 문인으로, 퇴계 이황의 학문을 전수받았다. 1727년 문과에 급제하고 관직 생활을 하여 형조참의에 이르렀다. 이인좌의 난이 발생할 때에 영남 남인들이 정계에서 소외되자 상소를 올려 부당함을 아뢰기도 했다.
+
정중기는 퇴계 이황의 학맥을 이어받았다. 영조 3년(1727)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벼슬이 형조참의에 이르렀다. 그는 산수정에서  『매산집』등 많은 저술을 남긴 것으로 보이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매산고택은 안채와 사당, 사랑채, 그리고 산수정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산수정은 매산고택에서 조금 떨어져 얕은 개울이 흐르는 벼랑 위에 자리하고 있다. 산수를 즐기는 공간으로 주변 풍경과 조화가 아름답다.
+
매산 고택은 대문채, 안채, 사랑채, 사당, 산수정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경상북도 북부 지역에서 볼 수 있는 ㅁ자형 구조이다. 산수정은 가파른 경사면에 축대를 쌓고 툇마루 부분을 축대 밖으로 나오게 만들어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기 좋게 하였다.
  
====1차 수정====
+
----
매산고택은 조선 후기 문신인 정중기(鄭重器, 1685~1757, 호: 매산)가 짓기 시작하고 그의 아들인 정일찬(鄭一鑽)이 완성한 집이다. 정중기의 호를 따서 매산고택이라 하였다. 정중기는 원래 살던 마을에 천연두가 만연하자 병을 피해 이곳으로 옮겨왔다.
+
* 별서(別墅): 농장이나 들이 있는 부근에 한적하게 따로 지은 집. 별장과 비슷하나 농사를 짓는다는 점이 다르다.
  
정중기는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2~1570)의 학문을 전수 받았다. 1727년 문과에 급제하고 관직 생활을 하여 벼슬이 형조참의에 이르렀다. 1728년 이인좌의 난이 발생했을 때 영남 남인들이 정계에서 소외되자 상소를 올려 부당함을 아뢰기도 했다.
+
===영문===
 +
'''Maesan House and Sansujeong Pavilion, Yeongcheon'''
  
매산고택은 안채와 사당, 사랑채, 그리고 산수정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산수정은 매산고택에서 조금 떨어져 얕은 개울이 흐르는 벼랑 위에 자리하고 있다. 산수를 즐기는 공간으로 주변 풍경과 조화가 아름답다.
+
This house was established around the mid-18th century by Jeong Jung-gi (1685-1757, pen name: Maesan), a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Construction of the house was completed by his second son Jeong Il-chan. To the northwest of the house is Sansujeong Pavilion, a separate villa built in the last years of Jeong Jung-gi’s life.
  
====자문의견====
+
Jeong Jung-gi originally lived in Seonwon-ri in Yeongcheon, the clan village of the Yeongil Jeong clan to which he belonged. In 1719, he moved to Maegok-ri to escape the smallpox epidemic. In 1727, he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and left his hometown to serve various official posts. After retiring, he returned to Maegok-ri, where he produced numerous literary works and dedicated himself to teaching his students.
#분야별 자문위원1
 
#*매산고택은 안채와 사당, 정침, 사랑채, 산수정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대문채는 3칸으로 솟을대문의 서칸에는 헛간의 마판(馬板)이 있고 동칸에는 마부 등이 대기하던 방이 있다.  
 
#분야별 자문위원2
 
#*매산고택은 매산 정중기(鄭重器, 1685~1757)가 짓기 시작하여 아들 정일찬(鄭一鑽)이 완성하였다고 한다. 정중기는 1727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벼슬이 형조참의에 이르렀다.
 
#*매산고택은 안채, 사랑채, 사당으로 구성된다. 안채는 비탈진 대지에 맞배지붕의 몸채, 익랑, 행랑이 층차를 두고 연결되어 ㅁ자 평면을 이루었다. 전면 행랑의 좌우측으로 한 칸씩 덧달아 ‘날개집’의 형태가 되었다. 우측 날개와 연결하여 지은 사랑채는 팔작지붕의 누각 형태로서 건물의 측면이 전면이 되게 배치하였다. 매산고택은 경상북도 북부지방의 전형적인 고식 ㅁ자 집과 사랑채가 발달하기 시작한 초기의 별당형 사랑채가 결합되어 지역적 특색과 시대성을 잘 보여준다.
 
#*산수정은 전면 3칸 측면 1칸의 단출한 맞배지붕 건물로 매산고택 인근의 경치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가파른 경사면에 축대를 쌓고 툇마루 부분을 축대 밖으로 내밀어 경치를 감상하기 좋게 하였다.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1728년 이인좌의 난이 발생했을 때(1728년 이인좌의 난이 발생했을 때 -> 1728년 일어난 이인좌의 난으로 인해) 영남 남인들이 정계에서 소외되자 상소를 올려 부당함을 아뢰기도 했다.
 
#*산수를 즐기는 공간으로 주변 풍경과 조화가 아름답다.(산수를 즐기는 공간으로 주변 풍경과 조화가 아름답다 -> 주변 풍경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뤄 산수를 즐기기 좋은 공간이다.
 
  
====2차 수정====
+
The house consists of a men’s quarters and a women’s quarters which together form a square layout with a central courtyard. This arrangement is an example of a typical traditional house in the northern Gyeongsangbuk-do area. Behind the house to the right is a family shrine. Sansujeong Pavilion was built upon a stone elevation on a steep slope. Its narrow wooden veranda partially extends over the slope, enabling a great view of the surroundings.
매산고택은 조선 후기 문신인 매산 정중기(梅山 鄭重器, 1685~1757)가 짓기 시작하고 그의 아들인 정일찬(鄭一鑽)이 완성한 집이다. 정중기는 원래 살던 마을에 천연두가 만연하자 병을 피해 이곳으로 옮겨왔다.
 
  
정중기는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2~1570)의 학문을 전수 받았다. 1727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벼슬이 형조참의에 이르렀다. 1728년 일어난 이인좌의 난으로 인해 영남 남인들이 정계에서 소외되자 상소를 올려 부당함을 아뢰기도 했다.
+
===영문 해설 내용===
 +
매산고택은 조선시대의 문신인 정중기(1685-1757, 호: 매산)가 18세기 중반에 짓기 시작하고 그의 둘째 아들인 정일찬이 완성하였다. 산수정은 집의 서북쪽 암벽 위에 지어진 정자로, 정중기가 만년에 지은 개인 별장이다.
  
매산고택은 안채, 사랑채, 사당, 산수정 등의 건물이 남아 있으며, 경상북도 북부지역의 전형적인 ㅁ자형 배치를 보인다. 산수정은 매산고택 인근의 경치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가파른 경사면에 축대를 쌓고 툇마루 부분을 축대 밖으로 내밀어 경치를 감상하기 좋게 하였다.
+
정중기는 원래 영일정씨 집성촌인 영천 선원리에 살고 있었으나, 1719년 선원리에 천연두가 만연하자 병을 피해 매곡리로 옮겨왔다고 한다. 1727년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이후 고향을 떠나 여러 벼슬을 지냈다. 은퇴한 후에는 매곡리로 돌아와 많은 저술을 남겼으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
 
 +
매산고택은 안채와 사랑채가 마당을 중심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이러한 배치는 경상북도 북부 지역 전통 가옥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집의 오른쪽 뒤편에는 사당이 있다. 산수정은 가파른 경사에 축대를 쌓고 툇마루 부분을 축대 밖으로 나오게 만들어,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기 좋게 하였다.
  
 
=='''참고자료'''==
 
=='''참고자료'''==
62번째 줄: 53번째 줄: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영천 매산고택과 산수정.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8,00240000,37&pageNo=1_1_1_0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영천 매산고택과 산수정.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8,00240000,37&pageNo=1_1_1_0
 
* 두산백과, 영천 매산고택과 산수정.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95826&cid=40942&categoryId=33596
 
* 두산백과, 영천 매산고택과 산수정.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95826&cid=40942&categoryId=33596
* 초아의 문화산책, 영천 매산고택. https://blog.naver.com/cho-a47/221187543864
+
* "역병과 정치에 염증난 조선 선비의 자가격리", 서울신문, 2020.04.13.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0414022006
 +
* 영천 매산고택, 초아의 문화산책,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cho-a47/221187543864
 +
* 영천 매산고택, 생에 대한 진한 애착,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jvj24601/221688005462
  
 
[[분류:문화유산해설문]]
 
[[분류:문화유산해설문]]
68번째 줄: 61번째 줄:
 
[[분류:국가민속문화재]]
 
[[분류:국가민속문화재]]
 
[[분류:가옥]]
 
[[분류:가옥]]
 +
[[분류:2020 영문집필]]
 +
[[분류: 2020 국문집필]] [[분류: 2020 국문초안지원사업]]

2021년 2월 5일 (금) 16:34 기준 최신판

영천 매산고택과 산수정
Maesan House and Sansujeong Pavilion, Yeongcheon
영천 매산고택과 산수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영천 매산고택과 산수정
영문명칭 Maesan House and Sansujeong Pavilion, Yeongcheon
한자 永川 梅山古宅과 山水亭
주소 경북 영천시 임고면 삼매매곡길 356-6 (삼매리)
국가유산 종목 국가민속문화재 제24호
지정(등록)일 1970년 12월 29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2필지/6,175㎡
웹사이트 영천 매산고택과 산수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매산 고택은 조선 후기 문신인 매산 정중기(梅山 鄭重器)가 짓기 시작하여 그의 아들인 정일찬(鄭一鑽)이 완성하였다. 정중기는 원래 살던 마을에 천연두가 널리 퍼지자 병을 피해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산수정은 매산 고택과 비슷한 시기에 짓기 시작하여 정중기가 만년에 완성한 개인 별서*이다.

정중기는 퇴계 이황의 학맥을 이어받았다. 영조 3년(1727)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벼슬이 형조참의에 이르렀다. 그는 산수정에서 『매산집』등 많은 저술을 남긴 것으로 보이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매산 고택은 대문채, 안채, 사랑채, 사당, 산수정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경상북도 북부 지역에서 볼 수 있는 ㅁ자형 구조이다. 산수정은 가파른 경사면에 축대를 쌓고 툇마루 부분을 축대 밖으로 나오게 만들어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기 좋게 하였다.


  • 별서(別墅): 농장이나 들이 있는 부근에 한적하게 따로 지은 집. 별장과 비슷하나 농사를 짓는다는 점이 다르다.

영문

Maesan House and Sansujeong Pavilion, Yeongcheon

This house was established around the mid-18th century by Jeong Jung-gi (1685-1757, pen name: Maesan), a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Construction of the house was completed by his second son Jeong Il-chan. To the northwest of the house is Sansujeong Pavilion, a separate villa built in the last years of Jeong Jung-gi’s life.

Jeong Jung-gi originally lived in Seonwon-ri in Yeongcheon, the clan village of the Yeongil Jeong clan to which he belonged. In 1719, he moved to Maegok-ri to escape the smallpox epidemic. In 1727, he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and left his hometown to serve various official posts. After retiring, he returned to Maegok-ri, where he produced numerous literary works and dedicated himself to teaching his students.

The house consists of a men’s quarters and a women’s quarters which together form a square layout with a central courtyard. This arrangement is an example of a typical traditional house in the northern Gyeongsangbuk-do area. Behind the house to the right is a family shrine. Sansujeong Pavilion was built upon a stone elevation on a steep slope. Its narrow wooden veranda partially extends over the slope, enabling a great view of the surroundings.

영문 해설 내용

매산고택은 조선시대의 문신인 정중기(1685-1757, 호: 매산)가 18세기 중반에 짓기 시작하고 그의 둘째 아들인 정일찬이 완성하였다. 산수정은 집의 서북쪽 암벽 위에 지어진 정자로, 정중기가 만년에 지은 개인 별장이다.

정중기는 원래 영일정씨 집성촌인 영천 선원리에 살고 있었으나, 1719년 선원리에 천연두가 만연하자 병을 피해 매곡리로 옮겨왔다고 한다. 1727년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이후 고향을 떠나 여러 벼슬을 지냈다. 은퇴한 후에는 매곡리로 돌아와 많은 저술을 남겼으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매산고택은 안채와 사랑채가 마당을 중심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이러한 배치는 경상북도 북부 지역 전통 가옥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집의 오른쪽 뒤편에는 사당이 있다. 산수정은 가파른 경사에 축대를 쌓고 툇마루 부분을 축대 밖으로 나오게 만들어,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기 좋게 하였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