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영천 매산고택과 산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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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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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이 집은 조선후기 문신인 정중기(鄭重器, 1685~1757, 호: 매산)가 건축을 시작해서 그의 아들인 정일찬(鄭一鑽)에 의해 완성된 집이다. 정중기의 호를 따서 매산고택이라 하였다. 정중기는 원래 살던 마을에 천연두가 만연하자 병을 피해 이곳으로 옮겨왔다.
정중기는 정만양(鄭萬陽)과 정규양(鄭葵陽) 형제의 문인으로, 퇴계 이황의 학문을 전수받았다. 1727년 문과에 급제하고 관직 생활을 하여 형조참의에 이르렀다. 이인좌의 난이 발생할 때에 영남 남인들이 정계에서 소외되자 상소를 올려 부당함을 아뢰기도 했다.
매산고택은 안채와 사당, 사랑채, 그리고 산수정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산수정은 매산고택에서 조금 떨어져 얕은 개울이 흐르는 벼랑 위에 자리하고 있다. 산수를 즐기는 공간으로 주변 풍경과 조화가 아름답다.
1차 수정
매산고택은 조선 후기 문신인 정중기(鄭重器, 1685~1757, 호: 매산)가 짓기 시작하고 그의 아들인 정일찬(鄭一鑽)이 완성한 집이다. 정중기의 호를 따서 매산고택이라 하였다. 정중기는 원래 살던 마을에 천연두가 만연하자 병을 피해 이곳으로 옮겨왔다.
정중기는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2~1570)의 학문을 전수 받았다. 1727년 문과에 급제하고 관직 생활을 하여 벼슬이 형조참의에 이르렀다. 1728년 이인좌의 난이 발생했을 때 영남 남인들이 정계에서 소외되자 상소를 올려 부당함을 아뢰기도 했다.
매산고택은 안채와 사당, 사랑채, 그리고 산수정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산수정은 매산고택에서 조금 떨어져 얕은 개울이 흐르는 벼랑 위에 자리하고 있다. 산수를 즐기는 공간으로 주변 풍경과 조화가 아름답다.
자문의견
- 분야별 자문위원1
- 매산고택은 안채와 사당, 정침, 사랑채, 산수정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대문채는 3칸으로 솟을대문의 서칸에는 헛간의 마판(馬板)이 있고 동칸에는 마부 등이 대기하던 방이 있다.
- 분야별 자문위원2
- 매산고택은 매산 정중기(鄭重器, 1685~1757)가 짓기 시작하여 아들 정일찬(鄭一鑽)이 완성하였다고 한다. 정중기는 1727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벼슬이 형조참의에 이르렀다.
- 매산고택은 안채, 사랑채, 사당으로 구성된다. 안채는 비탈진 대지에 맞배지붕의 몸채, 익랑, 행랑이 층차를 두고 연결되어 ㅁ자 평면을 이루었다. 전면 행랑의 좌우측으로 한 칸씩 덧달아 ‘날개집’의 형태가 되었다. 우측 날개와 연결하여 지은 사랑채는 팔작지붕의 누각 형태로서 건물의 측면이 전면이 되게 배치하였다. 매산고택은 경상북도 북부지방의 전형적인 고식 ㅁ자 집과 사랑채가 발달하기 시작한 초기의 별당형 사랑채가 결합되어 지역적 특색과 시대성을 잘 보여준다.
- 산수정은 전면 3칸 측면 1칸의 단출한 맞배지붕 건물로 매산고택 인근의 경치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가파른 경사면에 축대를 쌓고 툇마루 부분을 축대 밖으로 내밀어 경치를 감상하기 좋게 하였다.
-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1728년 이인좌의 난이 발생했을 때(1728년 이인좌의 난이 발생했을 때 -> 1728년 일어난 이인좌의 난으로 인해) 영남 남인들이 정계에서 소외되자 상소를 올려 부당함을 아뢰기도 했다.
- 산수를 즐기는 공간으로 주변 풍경과 조화가 아름답다.(산수를 즐기는 공간으로 주변 풍경과 조화가 아름답다 -> 주변 풍경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뤄 산수를 즐기기 좋은 공간이다.)
2차 수정
매산고택은 조선 후기 문신인 매산 정중기(梅山 鄭重器, 1685~1757)가 짓기 시작하고 그의 아들인 정일찬(鄭一鑽)이 완성한 집이다. 정중기는 원래 살던 마을에 천연두가 만연하자 병을 피해 이곳으로 옮겨왔다.
정중기는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2~1570)의 학문을 전수 받았다. 1727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벼슬이 형조참의에 이르렀다. 1728년 일어난 이인좌의 난으로 인해 영남 남인들이 정계에서 소외되자 상소를 올려 부당함을 아뢰기도 했다.
매산고택은 안채, 사랑채, 사당, 산수정 등의 건물이 남아 있으며, 경상북도 북부지역의 전형적인 ㅁ자형 배치를 보인다. 산수정은 매산고택 인근의 경치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가파른 경사면에 축대를 쌓고 툇마루 부분을 축대 밖으로 내밀어 경치를 감상하기 좋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