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용암사 마애여래입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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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옥천용암사마애여래입상.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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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113300170000 옥천 용암사 마애여래입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113300170000 옥천 용암사 마애여래입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옥천 용암사 마애여래입상
 
|대표명칭=옥천 용암사 마애여래입상
|영문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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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Rock-carved Standing Buddha of Yongamsa Temple, Okcheon
 
|한자=沃川 龍岩寺 磨崖如來立像
 
|한자=沃川 龍岩寺 磨崖如來立像
 
|주소=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삼청리 산51-4
 
|주소=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삼청리 산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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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해설문'''==
===기존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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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이 불상은 천연 바위에 새겨진, 높이 3m의 마애불 입상으로 붉은 바위 색이 매우 인상적이다. 발을 좌우로 벌리고 연꽃대좌 위에 있는 이 불상에는 신라 말 고려 초기에 유행하던 기법이 잘 표현되어 있다. 가늘고 긴 눈, 작은 입, 도드라진 코 등이 묘사된 얼굴은 미소를 띠었음에도 매우 형식적이다. 또한 넓은 어깨, 늘씬한 하체, 붙인 듯한 팔과 U자형의 규칙적인 옷의 주름, 좌우로 힘없이 표현된 옷자락 등 갖가지 세부표현에서도 신라 말과 고려 초 불상 조성의 기법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세련된 신라시대의 조각이 점차 형식적으로 변해가던 시기의 불상으로 생각된다. 이곳은 신라의 마지막 태자인 마의태자가 조성했다는 전설이 있는 마애불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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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용암사 뒤편의 대형 암벽에 새겨져 있는 마애여래입상은 통일신라시대 혹은 고려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마애란 암벽에 새겼다는 뜻이고, 여래는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덕성을 표현하는 열 가지 이름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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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 위에 드러난 암반은 비바람으로부터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지붕을 얹어 놓은 듯하다. 불상은 연꽃 대좌 위에 발을 좌우로 벌리고 뒤꿈치가 서로 닿을 듯이 어색하게 있으며, 몸 주변의 광배*는 마치 불꽃을 표현한 듯하다. 눈은 감은 듯 가늘고 귀는 늘어져 어깨에 닿아 있으며, V자형의 규칙적인 옷 주름이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다. 목에 있는 세 개의 주름은 삼도(三道)인 번뇌, , 고통을 상징한다. 광배, 연꽃 대좌, 입술, 옷 등에는 붉은색을 칠했던 흔적이 있는데, 이처럼 색이 남아 있는 마애불은 매우 드물다.  
  
===수정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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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던 중 이곳의 용바위에 올라 서라벌을 향해 통곡했다고 한다. 이후 신라의 후손이 마의태자를 추모하기 위해 이 불상을 조각하였다고 하여 마의태자불이라고도 부른다.
====초고====
 
용암사의 서쪽 바위에 조각한 마애여래입상이다. 마애(磨崖)는 바위에 새긴다는 뜻이고, 여래(如來)는 ‘진리에 도달한,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의미로 부처를 이르는 10개의 존칭 중 하나이다.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敬順王)의 아들 마의태자(麻衣太子)가 금강산으로 가다가 이곳의 용바위에 올라 서라벌을 향해 통곡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용암사에서 이 불상을 마의태자불이라고 부르는데, 마의태자가 이 불상을 조성했다는 전설과 마의태자를 추모했던 신라 도공의 후손이 태자의 모습을 그리며 조각했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용암사 마애여래입상은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으로 높이는 약 3m이다. 불상은 연꽃대좌 위에 두 발을 벌리고 서 있는 모습이며, 눈은 감은 듯 가늘고 귀는 늘어져 어깨에 닿았다. 목에는 세 개의 줄 삼도(三道)가 있으며,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법의는 몸 앞에서 U자 모양을 하고 있다. 오른손은 선정(禪定)에 들 때의 손가짐인 선정인(禪定印)을 하고 있다. 불상 둘레에 키 모양의 광배를 표현했다. 광배 둘레와 연꽃대좌, 입술과 법의 등에 붉은색이 남아 있는데 이는 채색한 흔적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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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배: 부처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하여 몸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화한 것.  
  
====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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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용암사의 서쪽 바위에 조각한 마애여래입상이다. 마애란 바위에 새겼다는 뜻이고, 여래는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덕성을 표현하는 열 가지 이름 중 하나이다.
+
'''Rock-carved Standing Buddha of Yongamsa Temple, Okcheon'''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연꽃대좌 위에 두 발을 벌리고 서 있는 모습이며, 몸 주변에는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나타내는 광배가 있다. 눈은 감은 듯 가늘고 귀는 늘어져 어깨에 닿았다. 목에 새겨진 세 개의 주름인 삼도(三道)는 번뇌, 업, 고통을 상징한다. 광배, 연꽃대좌, 입술, 옷 등에 붉은색이 남아있는데 이는 색을 칠했던 흔적으로 보인다.
+
This large rock carving located behind Yongamsa Temple depicts a standing buddha and is presumed to have been made in either the Unified Silla period (668-935) or the early period of the Goryeo dynasty (918-1392).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927~935 재위)의 아들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던 중 이곳의 용바위에 올라 서라벌을 향해 통곡했다고 한다. 이후 마의태자를 추모하던 신라의 후손이 태자의 모습을 그리워하며 이 불상을 조각하였다고 하며, 불상은 마의태자불이라고도 부른다.
+
The buddha is depicted standing on a lotus-shaped pedestal with his feet slightly spread and with a halo that represents an auspicious light emanating from his body. His slender eyes are closed, and his ears are long and touching the shoulders. The three creases encircling his neck, which represent the “three destinies” of afflictions, actions, and suffering, are clearly expressed. The folds of his robe below his waist are depicted in a formulaic manner. Traces of red paint are still visible on the halo, the pedestal, the lips, and the robe. It is rare to find a Buddhist rock carving with its paint remaining intact.
  
====자문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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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ording to a legend, Prince Maui, the son of the last king of the Silla kingdom, King Gyeongsun (r. 927-935), climbed on a rock and let out a wail while facing the capital. Later, the descendants of the Silla royal family carved this Buddha to honor the prince. Therefore, this carving is also known as the Prince Maui Buddha.
#분야별 자문위원 1
 
#*용암사의 서쪽 바위에 조각한 마애여래입상이다. 마애란 바위에 새겼다는 뜻이고, -> 이 불상은 용암사의 서쪽 바위에 조각한 마애여래입상이다. 마애란 암벽에 새겼다는 뜻이고,
 
#*수정안 5줄 : 귀는 늘어져 어깨에 닿았다. -> 귀는 길게 늘어져 있다.
 
  
====2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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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이 불상은 용암사의 서쪽 바위에 조각한 마애여래입상이다. 마애란 암벽에 새겼다는 뜻이고, 여래는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덕성을 표현하는 열 가지 이름 중 하나이다.
+
용암사 뒤편의 대형 암벽에 새겨져 있는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 혹은 고려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 혹은 고려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연꽃대좌 위에 두 발을 벌리고 서 있는 모습이며, 몸 주변에는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나타내는 광배가 있다. 눈은 감은 듯 가늘고 귀는 늘어져 어깨에 닿았다. 목에 새겨진 세 개의 주름인 삼도(三道)는 번뇌, 업, 고통을 상징한다. 광배, 연꽃대좌, 입술, 옷 등에 붉은색이 남아있는데 이는 색을 칠했던 흔적으로 보이며, 마애불로서 이렇게 색이 남아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927~935 재위)의 아들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던 중 이곳의 용바위에 올라 서라벌을 향해 통곡했다고 한다. 이후 신라의 후손이 마의태자를 추모하기 위해 이 불상을 조각하였다고 하며, 불상은 마의태자불이라고도 부른다.
 
 
 
=='''문맥요소'''==
 
===Nodes===
 
 
 
===Li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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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는 연꽃대좌 위에 두 발을 벌리고 서 있으며, 몸 주변에는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나타내는 광배가 있다. 눈은 감은 듯 가늘고 귀는 늘어져 어깨에 닿아 있다. 목에는 번뇌, 업, 고통을 상징하는 삼도가 깊게 새겨져 있다. 허리 아래로 늘어진 옷자락에는 형식화된 옷주름이 표현되어 있다. 광배, 대좌, 입술, 옷 등에 붉은색을 칠했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이처럼 색이 남아 있는 마애불은 매우 드물다.
  
 +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재위 927-935)의 아들 마의태자가 인근의 한 바위에 올라 서라벌을 향해 통곡했다고 한다. 이후 신라의 후손이 마의태자를 추모하기 위해 이 불상을 조각하였다고 하며, 불상은 마의태자불이라고도 불린다.
  
 
=='''참고자료'''==
 
=='''참고자료'''==
* 교리상식 : 여래란 무엇인가?, 한국불교. http://www.kbulgy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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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리상식 : 여래란 무엇인가?, 한국불교. http://www.kbulgy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1802 -> 여래의 의미
:-> 여래의 의미
 
 
* 충청권 문화유산과 그 삶의 이야기, 문화재청 문화유산 스토리 마당. http://www.cha.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nttId=64095&bbsId=BBSMSTR_1222&mn=NS_03_08_03&ccbaCpno=2113300170000&regionGbn=33&pageUnit=10&pageIndex=1&rnum=1
 
* 충청권 문화유산과 그 삶의 이야기, 문화재청 문화유산 스토리 마당. http://www.cha.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nttId=64095&bbsId=BBSMSTR_1222&mn=NS_03_08_03&ccbaCpno=2113300170000&regionGbn=33&pageUnit=10&pageIndex=1&rnum=1
 
* 불상, 우리역사넷(국사편찬위원회). http://contents.history.go.kr/front/tt/view.do?levelId=tt_b08
 
* 불상, 우리역사넷(국사편찬위원회). http://contents.history.go.kr/front/tt/view.do?levelId=tt_b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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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시도유형문화재]]
 
[[분류:시도유형문화재]]
 
[[분류:불상]]
 
[[분류: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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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20 영문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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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2020 국문집필]] [[분류: 2020 국문초안지원사업]]

2021년 2월 5일 (금) 16:34 기준 최신판

옥천 용암사 마애여래입상
Rock-carved Standing Buddha of Yongamsa Temple, Okcheon
옥천 용암사 마애여래입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옥천 용암사 마애여래입상
영문명칭 Rock-carved Standing Buddha of Yongamsa Temple, Okcheon
한자 沃川 龍岩寺 磨崖如來立像
주소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삼청리 산51-4
지정번호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7호
지정일 1976년 12월 21일
분류 유물/불교조각/석조/불상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옥천 용암사 마애여래입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옥천 용암사 뒤편의 대형 암벽에 새겨져 있는 마애여래입상은 통일신라시대 혹은 고려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마애란 암벽에 새겼다는 뜻이고, 여래는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덕성을 표현하는 열 가지 이름 중 하나이다.

불상 위에 드러난 암반은 비바람으로부터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지붕을 얹어 놓은 듯하다. 불상은 연꽃 대좌 위에 발을 좌우로 벌리고 뒤꿈치가 서로 닿을 듯이 어색하게 서 있으며, 몸 주변의 광배*는 마치 불꽃을 표현한 듯하다. 눈은 감은 듯 가늘고 귀는 늘어져 어깨에 닿아 있으며, V자형의 규칙적인 옷 주름이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다. 목에 있는 세 개의 주름은 삼도(三道)인 번뇌, 업, 고통을 상징한다. 광배, 연꽃 대좌, 입술, 옷 등에는 붉은색을 칠했던 흔적이 있는데, 이처럼 색이 남아 있는 마애불은 매우 드물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던 중 이곳의 용바위에 올라 서라벌을 향해 통곡했다고 한다. 이후 신라의 후손이 마의태자를 추모하기 위해 이 불상을 조각하였다고 하여 마의태자불이라고도 부른다.


  • 광배: 부처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하여 몸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화한 것.

영문

Rock-carved Standing Buddha of Yongamsa Temple, Okcheon

This large rock carving located behind Yongamsa Temple depicts a standing buddha and is presumed to have been made in either the Unified Silla period (668-935) or the early period of the Goryeo dynasty (918-1392).

The buddha is depicted standing on a lotus-shaped pedestal with his feet slightly spread and with a halo that represents an auspicious light emanating from his body. His slender eyes are closed, and his ears are long and touching the shoulders. The three creases encircling his neck, which represent the “three destinies” of afflictions, actions, and suffering, are clearly expressed. The folds of his robe below his waist are depicted in a formulaic manner. Traces of red paint are still visible on the halo, the pedestal, the lips, and the robe. It is rare to find a Buddhist rock carving with its paint remaining intact.

According to a legend, Prince Maui, the son of the last king of the Silla kingdom, King Gyeongsun (r. 927-935), climbed on a rock and let out a wail while facing the capital. Later, the descendants of the Silla royal family carved this Buddha to honor the prince. Therefore, this carving is also known as the Prince Maui Buddha.

영문 해설 내용

용암사 뒤편의 대형 암벽에 새겨져 있는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 혹은 고려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여래는 연꽃대좌 위에 두 발을 벌리고 서 있으며, 몸 주변에는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나타내는 광배가 있다. 눈은 감은 듯 가늘고 귀는 늘어져 어깨에 닿아 있다. 목에는 번뇌, 업, 고통을 상징하는 삼도가 깊게 새겨져 있다. 허리 아래로 늘어진 옷자락에는 형식화된 옷주름이 표현되어 있다. 광배, 대좌, 입술, 옷 등에 붉은색을 칠했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이처럼 색이 남아 있는 마애불은 매우 드물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재위 927-935)의 아들 마의태자가 인근의 한 바위에 올라 서라벌을 향해 통곡했다고 한다. 이후 신라의 후손이 마의태자를 추모하기 위해 이 불상을 조각하였다고 하며, 불상은 마의태자불이라고도 불린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