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용암사 마애여래입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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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옥천 용암사 뒤편의 대형 암벽에 새겨져 있는 마애여래입상은 통일신라시대 혹은 고려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마애란 암벽에 새겼다는 뜻이고, 여래는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덕성을 표현하는 열 가지 이름 중 하나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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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상 위에 드러난 암반은 비바람으로부터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지붕을 얹어 놓은 듯하다. 불상은 연꽃 대좌 위에 발을 좌우로 벌리고 뒤꿈치가 서로 닿을 듯이 어색하게 서 있으며, 몸 주변의 광배*는 마치 불꽃을 표현한 듯하다. 눈은 감은 듯 가늘고 귀는 늘어져 어깨에 닿아 있으며, V자형의 규칙적인 옷 주름이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다. 목에 있는 세 개의 주름은 삼도(三道)인 번뇌, 업, 고통을 상징한다. 광배, 연꽃 대좌, 입술, 옷 등에는 붉은색을 칠했던 흔적이 있는데, 이처럼 색이 남아 있는 마애불은 매우 드물다. | ||
− | + |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던 중 이곳의 용바위에 올라 서라벌을 향해 통곡했다고 한다. 이후 신라의 후손이 마의태자를 추모하기 위해 이 불상을 조각하였다고 하여 마의태자불이라고도 부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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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광배: 부처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하여 몸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화한 것.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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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상은 용암사의 서쪽 바위에 조각한 마애여래입상이다. 마애란 암벽에 새겼다는 뜻이고, 여래는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덕성을 표현하는 열 가지 이름 중 하나이다. | 이 불상은 용암사의 서쪽 바위에 조각한 마애여래입상이다. 마애란 암벽에 새겼다는 뜻이고, 여래는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덕성을 표현하는 열 가지 이름 중 하나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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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927~935 재위)의 아들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던 중 이곳의 용바위에 올라 서라벌을 향해 통곡했다고 한다. 이후 신라의 후손이 마의태자를 추모하기 위해 이 불상을 조각하였다고 하며, 불상은 마의태자불이라고도 부른다. |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927~935 재위)의 아들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던 중 이곳의 용바위에 올라 서라벌을 향해 통곡했다고 한다. 이후 신라의 후손이 마의태자를 추모하기 위해 이 불상을 조각하였다고 하며, 불상은 마의태자불이라고도 부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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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23일 (목) 01:29 판
옥천 용암사 마애여래입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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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옥천 용암사 마애여래입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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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沃川 龍岩寺 磨崖如來立像 |
주소 |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삼청리 산51-4 |
지정(등록) 종목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7호 |
지정(등록)일 | 1976년 12월 21일 |
분류 | 유물/불교조각/석조/불상 |
수량/면적 | 1기 |
웹사이트 | 옥천 용암사 마애여래입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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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옥천 용암사 뒤편의 대형 암벽에 새겨져 있는 마애여래입상은 통일신라시대 혹은 고려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마애란 암벽에 새겼다는 뜻이고, 여래는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덕성을 표현하는 열 가지 이름 중 하나이다.
불상 위에 드러난 암반은 비바람으로부터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지붕을 얹어 놓은 듯하다. 불상은 연꽃 대좌 위에 발을 좌우로 벌리고 뒤꿈치가 서로 닿을 듯이 어색하게 서 있으며, 몸 주변의 광배*는 마치 불꽃을 표현한 듯하다. 눈은 감은 듯 가늘고 귀는 늘어져 어깨에 닿아 있으며, V자형의 규칙적인 옷 주름이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다. 목에 있는 세 개의 주름은 삼도(三道)인 번뇌, 업, 고통을 상징한다. 광배, 연꽃 대좌, 입술, 옷 등에는 붉은색을 칠했던 흔적이 있는데, 이처럼 색이 남아 있는 마애불은 매우 드물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던 중 이곳의 용바위에 올라 서라벌을 향해 통곡했다고 한다. 이후 신라의 후손이 마의태자를 추모하기 위해 이 불상을 조각하였다고 하여 마의태자불이라고도 부른다.
- 광배: 부처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하여 몸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화한 것.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불상은 용암사의 서쪽 바위에 조각한 마애여래입상이다. 마애란 암벽에 새겼다는 뜻이고, 여래는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덕성을 표현하는 열 가지 이름 중 하나이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 혹은 고려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연꽃대좌 위에 두 발을 벌리고 서 있는 모습이며, 몸 주변에는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나타내는 광배가 있다. 눈은 감은 듯 가늘고 귀는 늘어져 어깨에 닿았다. 목에 새겨진 세 개의 주름인 삼도(三道)는 번뇌, 업, 고통을 상징한다. 광배, 연꽃대좌, 입술, 옷 등에 붉은색이 남아있는데 이는 색을 칠했던 흔적으로 보이며, 마애불로서 이렇게 색이 남아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927~935 재위)의 아들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던 중 이곳의 용바위에 올라 서라벌을 향해 통곡했다고 한다. 이후 신라의 후손이 마의태자를 추모하기 위해 이 불상을 조각하였다고 하며, 불상은 마의태자불이라고도 부른다.
참고자료
- 교리상식 : 여래란 무엇인가?, 한국불교. http://www.kbulgy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1802
- -> 여래의 의미
- 충청권 문화유산과 그 삶의 이야기, 문화재청 문화유산 스토리 마당. http://www.cha.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nttId=64095&bbsId=BBSMSTR_1222&mn=NS_03_08_03&ccbaCpno=2113300170000®ionGbn=33&pageUnit=10&pageIndex=1&rnum=1
- 불상, 우리역사넷(국사편찬위원회). http://contents.history.go.kr/front/tt/view.do?levelId=tt_b08
- 용암사마애불,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95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