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앨버트 테일러 가옥(딜쿠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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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앨버트 테일러 가옥(딜쿠샤)
Dilkusha House, Seoul
서울 앨버트 테일러 가옥(딜쿠샤),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서울 앨버트 테일러 가옥(딜쿠샤)
영문명칭 Dilkusha House, Seoul
한자 서울 앨버트 테일러 家屋(딜쿠샤)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2길 17 (행촌동)
지정(등록) 종목 국가등록문화재 제687호
지정(등록)일 2017년 8월 8일
분류 등록문화재
시대 일제강점기
수량/면적 1동 / 현황실측면적 293.8㎡
웹사이트 서울 앨버트 테일러 가옥(딜쿠샤),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딜쿠샤는 미국인 사업가 겸 언론인 앨버트 W. 테일러와 아내 메리 L. 테일러가 1924년에 지은 집으로,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이다.

앨버트 W. 테일러는 운산금광 광산기술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1897년에 조선에 왔다. 광산업과 상업에 종사하다 1919년에 AP통신사의 통신원으로 활동하며 고종의 국장과 3·1운동, 일제의 제암리 학살사건 등을 취재하여 전 세계에 알렸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일어나고 이듬해 테일러 부부는 조선총독부에 의해 미국으로 추방되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오기를 바랐던 앨버트 W. 테일러는 1948년 사망 후,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묻혔다.

딜쿠샤는 지하 1층, 지상 2층의 서양식 주택으로 1926년에 화재를 겪은 후 1930년 재건되었다. 1942년 테일러 부부가 떠난 후 소유주가 바뀌고 공동주택으로 사용되면서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다. 그러던 중 아들 브루스 T. 테일러가 어렸을 때 살았던 기억을 되살려 2006년 딜쿠샤를 다시 찾으면서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2016년부터 진행된 복원사업을 거쳐 시민들에게 공개되었다.

영문

Dilkusha House, Seoul

This house was built in 1924 by the American journalist and entrepreneur Albert Wilder Taylor (1875-1948) and his wife the English actress Mary Linely Taylor (1889-1982). It is named after a house in the Dilkusha area of Lucknow, India, which had impressed Mrs. Taylor during a visit there. The name means “Palace of Heart's Delight” in Sanskrit.

Albert W. Taylor came to Korea in 1897, following his father who was working at a gold mine in Pyeonganbuk-do Province. From 1919, he also worked as a correspondent for the Associated Press and covered many important events such as King Gojong’s funeral, the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the massacre in Jeam-ri Village committed by the Japanese Imperial Army, and many others. In 1942, year after the breakout of the Pacific War (1941-1945), Albert and Mary were deported by the Japanese authorities to the USA. Albert, who always wished to come back to Korea, died in 1948 and was buried at Yanghwajin Foreign Missionary Cemetery in Seoul.

The house has two-stories and a basement. It is made of red brick and stands on the granite foundation. The house was severely damaged during a fire in 1926 but was reconstructed in 1930. After the deportation of Albert and Mary Taylor, the house changed its owner and at some point was even used as a multi-family house, which is why its original layout was changed. The identity of the house was only rediscovered in 2006 when Albert and Mary’s son Bruce Taylor (1919-2015) visited Korea to find the house he grew up in. The restoration of the house started in 2016, and in 2020, Dilkusha House was opened to the public.

영문 해설 내용

딜쿠샤는 미국의 언론인이자 사업가인 앨버트 테일러(Albert Wilder Taylor, 1875-1948)와 그의 아내 메리 린리 테일러(Mary Linely Taylor, 1889-1982)가 1924년에 지은 집이다. 딜쿠샤는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이다.

앨버트 테일러는 평안북도의 한 광산에서 일하던 아버지를 따라 아버지를 돕기 위해 1897년 조선에 왔다. 1919년부터는 AP통신사의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고종의 국장, 3.1 독립선언, 일제의 제암리 학살사건 등을 취재하여 전 세계에 알렸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일어나고 이듬해 테일러 부부는 조선총독부에 의해 미국으로 추방되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오기를 바랐던 앨버트 W. 테일러는 1948년 사망 후,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묻혔다.

딜쿠샤는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로, 화강석 기단 위에 붉은 벽돌로 쌓은 집이다. 1926년 화재로 큰 피해를 입어 1930년 재건되었다. 1942년 테일러 부부가 떠난 후 소유주가 바뀌고, 한때 공동주택으로 사용되며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다. 2006년 한국을 방문한 아들 브루스 테일러(Bruce Taylor, 1919~2015)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딜쿠샤를 다시 찾으면서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2016년부터 복원 사업이 추진되어 2020년 일반에 공개되었다.

참고자료

No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