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용주사 천보루
| 화성 용주사 천보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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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명칭 | 화성 용주사 천보루 |
|---|---|
| 한자 | 華城 龍珠寺 天保樓 |
| 주소 | 경기도 화성시 병점구 용주로 136(송산동) |
| 지정(등록) 종목 | 보물 |
| 지정(등록)일 | 2026년 2월 26 |
|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불전 |
| 수량/면적 | 1동 |
| 웹사이트 | 화성 용주사 천보루,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해설문
국문
화성 용주사 천보루는 능침사찰(陵寢寺刹)인 용주사의 정문으로, 정조 14년(1790)에 세워졌다.
천보루는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을 갖춘 2층 누각 건물이다. 위층은 내부에 넓은 공간을 만들어 대중이 모여 집회를 열 수 있는 강당으로 구성하였고, 아래층은 앞쪽에 높은 장대 기둥을 세워 누의 아래로 출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를 누하진입(樓下進入)이라고 하며, 누와 문을 함께 설치한 건물을 누문(樓門)이라고 부른다.
천보루의 양옆에는 행각을 두고, 그 끝에는 선당*인 만수리실(曼殊利室)과 승당*인 나유타료(那由他寮)를 배치하였다. 이러한 배치 방식은 궁궐과 조선 전기 왕실원찰에서 주로 나타나는 형식으로, 용주사가 왕실원찰의 건축적 전통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건물 내부에는 기둥을 세우지 않고 도리 5개를 얹어 지붕을 구성하였다. 기둥 위에 설치한 공포는 조선 후기 대표적인 양식인 이익공* 형식으로, 연꽃 봉우리로 장식하였다. 사찰의 누각에는 공포를 올리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천보루는 공포를 설치하여 일반적인 사찰 누각보다 화려하고 품격 있게 꾸몄다.
천보루는 건립 연대와 과정이 명확하게 밝혀져 있고, 처음 세워졌을 때의 모습도 상당 부분 보존되어 있어 왕실원찰의 전통을 보여주는 중요한 건축물이다. 또한 대규모 건축물이면서 처마의 추녀를 길게 뽑아 지붕이 날렵하게 보이도록 하고, 좌우 행각을 약간 뒤로 물려 배치하여 천보루가 더욱 돋보이도록 설계했다는 점에서 건축적·예술적 가치를 높이 평가할 수 있다.
- 선당(禪堂): 선을 수행하는 곳
- 승당(僧堂): 승려의 생활공간
- 이익공(二翼工): 새 날개 모양의 부재가 두 개 사용된 공포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천보루는 용주사의 정문으로 1790년에 세워졌다. 용주사는 정조(재위 1776-1800)가 1789년 아버지 사도세자(1735-1762)의 묘를 화성으로 옮기면서 제사와 묘소 보호를 위한 사찰로 세웠다.
천보루는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을 갖춘 건물이다. 아래층은 앞쪽에 높은 장대 기둥을 세워 누각 아래로 출입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위층은 내부에 기둥을 세우지 않고 넓은 공간을 만들어 대중이 모여 집회를 열 수 있는 강당으로 구성하였다. 또한 사찰의 누각에는 공포를 올리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천보루는 기둥 위에 공포를 설치하여 일반적인 사찰 누각보다 화려하고 품격 있게 꾸몄다. 천보루의 공포는 각각 새 날개 모양의 부재 2개와 연꽃 봉우리 장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는 조선 후기 건축의 대표적인 양식이다.
천보루의 양옆에는 행각을 두고, 그 끝에는 수행공간인 만수리실과 승려의 생활공간인 나유타료를 배치하였다. 이러한 배치 방식은 궁궐과 조선 전기 왕실원찰에서 주로 나타나는 형식으로, 용주사가 왕실원찰의 건축적 전통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천보루는 건립 연대와 과정이 명확하게 밝혀져 있고, 처음 세워졌을 때의 모습도 상당 부분 보존되어 있어 왕실원찰의 전통을 보여주는 중요한 건축물이다. 또한 대규모 건축물이면서 처마의 추녀를 길게 뽑아 지붕이 날렵하게 보이도록 하고, 좌우 행각을 약간 뒤로 물려 배치하여 천보루가 더욱 돋보이도록 설계했다는 점에서 건축적·예술적 가치를 높이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