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가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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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가남정
Ganamjeong Pavilion, Hapcheon
합천 가남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합천 가남정
영문명칭 Ganamjeong Pavilion, Hapcheon
한자 陜川 伽南亭
주소 경상남도 합천군 빙연길 7-9 (야로면, 제실)
지정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80호
지정일 1983년 12월 20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합천 가남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 재사(齋舍)는 임진왜란 때 종군하여 공을 세운 문암 정인기(鄭仁耆), 금월헌 정인함(鄭仁涵), 우천 정인철(鄭仁徹), 낙제 정인지(鄭仁止) 4형제를 추모, 배향하는 곳으로 일명 사우정(四友亭)으로도 불린다. 이들 4형제는 5촌 형제인 의병대장 정인홍(鄭仁弘, 1535~1623)을 도와 의병 활동에 참여하였다. 정인함은 중앙과 지방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고 사후에는 이조판서를 추증받았다. 4형제는 영조 14년에 우계리(牛溪里)의 세덕사(世德祠)에 시조와 함께 배향되었고, 세덕사는 철종 13년에 운계서원(雲溪書院)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지된 것을 1919년에 다시 가남정을 세워 지금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앞면 4칸·옆면 2칸의 규모로,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정자 앞에는 금월헌 정인함의 신도비(神道碑)가 있으며, 앞에는 선생이 손수 심었다고 하는 수령 사백년이 넘는 느티나무가 있다.

영문

Ganamjeong Pavilion, Hapcheon

This pavilion was built in 1919 by the Seosan Jeong Clan to commemorate the four brothers Jeong In-gi, Jeong In-ham, Jeong In-cheol, and Jeong In-ji. It is also known as Saujeong, meaning “Pavilion of Four Friends.”

The brothers were all disciples of Jo Sik (1501-1572), a renowned scholar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they participated in the local civilian army to help Jeong In-hong (1536-1623), their first cousin once removed, who led the civilian army. Notable, Jeong In-ham (1546-1613)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601,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and was posthumously promoted to minister of personnel.

This was originally the site of a shrine built in 1740 to honor not only the four brothers, but also Jeong Sin-bo, the founder of the Seosan Jeong Clan, and his son Jeong In-gyeong. In 1862, the shrine was elevated to the status of a Confucian academy, but in 1868, it was demolished when most shrines and Confucian academies were shut down by a nationwide decree.

In front of the pavilion, there is a stele honoring the life and achievements of Jeong In-ham, next to which is an over 400-year-old saw-leaf zelkova that is said to have been planted personally by him.

영문 해설 내용

가남정은 서산정씨 집안에서 정인기, 정인함, 정인철, 정인지 4형제를 추모하기 위해 1919년에 세운 정자이다. '네 친구의 정자'라는 의미의 '사우정'이라고도 불린다.

형제는 모두 조선시대의 저명한 유학자였던 조식(1501-1572)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5촌 형 정인홍(1535-1623)을 도와 의병 활동에 참여하였다. 특히 정인함(1546-1613)은 1601년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고, 사후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원래 이곳에는 4형제와 서산정씨 시조인 정신보, 그의 아들 정인경을 추모하기 위해 1740년에 세운 사당이 있었다. 사당은 1862년에 서원으로 승격되었으나,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 후손들이 가남정을 세웠다.

정자 앞에는 정인함의 신도비가 있고, 그가 직접 심었다고 전하는 400년 이상 된 느티나무가 있다.

참고자료

  • 합천의 추모 재사, 가남정-170126, 겨울섬, 개인 블로그 https://gotn.tistory.com/323 -> 가남정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 하나는 담장과 기단, 입구등에 사용된 돌은 재사 앞을 흐르는 야천(倻川)의 돌을 이용했으며, 둘은 가남정(伽南亭)앞을 지키고 서있는 장대한 모습의 느티나무입니다. 금월헌(禁月軒) 정인함(鄭仁涵) 손수 심었다는 수령 450년이 넘은 느티나무로, 나무의 높이는 20m, 둘레 6여m로 합천군의 보호수로 지정이 되어 있는 보호수입니다. 가남정 옆에는 느티나무의 주인인 금월헌(禁月軒) 정인함(鄭仁涵)의, ‘금월간신도비(琴月幹神道碑)’를 볼 수가 있습니다. 서산정씨(瑞山鄭氏) 4형제는 남명 조식의 제자로 사촌형인 의병대장 정인홍(鄭仁弘 1536-1623)의 휘하에서 의병활동을 하였으며, 그 중 정인함(鄭仁涵)은 중앙과 지방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고 사후(死後)에는 이조판서로 추증(追贈) 되었습니다. / 4형제의 후손들이 1911년 4월 이곳에 가남정(伽南亭)을 건립하였다고 하며, 해마다 3월 20일에는 유림에서 행사를 열어 추모하고 있습니다.
  • 운계서원, 서원연합회 http://www.seowonstay.com/bbs/board.php?bo_table=slist&wr_id=978&page=9 -> 가남정 안내판 및 사진 ; 운계서원은 1740년(영조 16) 세덕사(世德祠)로 창건되었다. 정신보(鄭臣保)와 정인경(鄭仁卿)을 주향하고 정인기(鄭仁耆)와 정인함(鄭仁涵), 정인흡(鄭仁洽), 정인준(鄭仁濬)을 배향하였다. 본래 서산 정씨의 세덕사로서 1862년(철종 13)에 승호하여 서원이라 하였다. 철종 때 이와 같이 서원으로 승격되었으나 1868년(고종 5) 훼철되었다. 그 후 정자를 세워 사우정(四友亭)이라고 하였다.
  • 정인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C%A0%95%EC%9D%B8%ED%95%A8&ridx=0&tot=1428 -> 일찍이 1592년 임진왜란 때는 합천에서 곽재우(郭再祐)와 더불어 의병을 일으켜 왜적토벌에 힘썼고, 선조가 의주로 피난하자 어가를 호종하였다. 이에 그 충의가 가상히 여겨져 호종공신 2등에 책록되었다. 광해군이 즉위하여 정치가 문란해지고, 또 인홍과의 갈등으로 벼슬을 버리고 향리인 합천에 은거하여 여생을 보냈다. 인조 때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 (참조) 서산정씨의 유래, 뿌리를 찾아서 http://www.rootsinfo.co.kr/info/roots/view_roots.php?Bid=3513 -> 서산정씨 시조 정신보‧정인경(1237-1305) 부자 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