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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개평리 하동정씨 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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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개평리하동정씨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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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개평리 하동정씨 고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함양개평리하동정씨고가
영문명칭 0
한자 咸陽介坪里河東鄭氏古家 "
주소 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213번지"
지정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61호
지정일 2004년 10월 21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수량/면적 1곽(1770㎡)
웹사이트 함양 개평리 하동정씨 고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하동정씨 고가는 1880년에 지은 집으로서 당초 건립 시에도 사대부가의 저택답게 사랑채를 비롯한 여러 건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모두 훼철되고 현재의 모습만 남아있다.

특히 안채는 남도의 특징인 일(一)자형 건물에 개방형이며, 정면 6칸 측면 1칸에 전후퇴를 두었으며, 맞배지붕에다가 부섭지붕을 하였다.

건물 배치 방식에서 조선후기 남부지방 상류주거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좋은 자료로 학술적 가치가 크며 보전상태도 영호한 편이며. 본 고택의 소유자인 정병조선생은 성균관대 학장과 문공부 차관을 역임했다.

수정 국문

초고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213번지에 있는 하동정씨의 옛 가옥이다.

1880년에 건립된 주택으로 풍천노씨가 처음 지었으나 하동정씨 종가에 매매되었다. 안채의 종도리 하부의 장여에 ‘숭정기원후상지십칠년경진(崇禎紀元後上之十七年庚辰)’이라고 쓰여 있어 건립 연도를 확인할 수 있다. 건립 당시에는 안채 정면에 큰 사랑채가 있었고, 그 정면에는 대문채가 있었다. 대문채와 큰 사랑채 사이 동쪽에는 초가 형태의 작은 사랑채인 청선암(聽蟬蓭)이 있었다. 안채는 남도의 특징인 일(一)자형 건물이며 개방적 형태를 가지고 있다. 큰 사랑채는 멸실되어 원형을 알 수 없다.

함양군의 하동정씨(河東鄭氏)는 고려 말 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를 지낸 정지의(鄭之義)가 오늘날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정착하여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정복주(鄭復周, 1367~?), 정육을(鄭六乙, ?~1467), 정여창(鄭汝昌, 1450~1504)으로 대를 이어 함양에 기반을 두었다.

1차 수정

이 고택은 풍천노씨 가문에서 1880년에 처음 지었으나 0000년* 하동정씨 종가에서 매입하였다. 하동정씨는 고려 말의 문신인 정지의(鄭之義)가 개평리로 이주하면서 함양에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현재 이 집은 대문채, 작은사랑채, 안채로 이루어져 있다. 건립 당시에는 안채와 대문채 사이에 큰사랑채가 있었고, 안채의 왼쪽과 오른쪽에는 각각 곳간채와 아래채가 있었다고 한다. 안채는 왼쪽에서부터 부엌, 온돌방, 마루, 온돌방, 마루로 구성되어 있고, 건물 양옆을 반 칸씩 늘리면서 부섭지붕을 달았다. 개방적인 형태의 일자(一)형 건물은 남도 지방 안채의 특징이다.


  • 하동정씨 종가에서 매입한 시기 확인 필요. 문화재 명칭이 ‘하동정씨 고가’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지정된 2004년에는 이미 하동정씨 소유였던 것으로 보임. 따라서 2004년이라고 해도 ‘최근’이라고 하기 어려움.
  • 하동정씨가 나중에 매입한 집이라는 정보가 빠지면, 1880년 최초 건립 때부터 하동정씨가 거주한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음.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이 고택은 풍천노씨 가문에서 지은 것으로 안채의 종도리 하부의 장여에서 숭정기원후상지십칠년경진(崇禎紀元後上之十七年庚辰)이라고 적혀 있어 1880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97년 8월에 하동정씨 종가에서 매입하였다. 하동정씨는 고려 말의 문신인 정지의(鄭之義)가 개평리로 이주하면서 함양에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2. 분야별 자문위원 2
  3.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에’, ‘의’ 같은 조사가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곳에 배치돼 있습니다. 가능한 조사를 빼는 것이 안내문의 가독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 이 집의 정확한 설립연대가 1644년이라고 안채 상량문 기록에 나오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문화재청 자료). 그렇다면 이 연대를 정확하게 기입해 주는 것이 더 신빙성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 함양 개평리 하동정씨 고가는 안채와 사랑채의 구분, 솟을대문의 사용, 배치방법 등으로 보아 조선 후기의 남부지방 상류주거의 건축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다고(한국학중앙연구원 자료) 하는데 이 부분이 부각되면 이 집의 가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수정 문안으로는 이 집이 왜 문화재 자료인지 이해하기 힘들어 보입니다.
    • 부섭지붕 같은 부분은 일반인들이 흔히 쓰거나 들을 수 있는 단어가 아니어서 알기 쉽게 풀어주셔야 이해가 가능합니다.

2차 수정

이 고택은 풍천노씨 가문에서 1880년에 처음 지었으며, 1997년 8월 하동정씨 종가에서 매입하였다. 하동정씨는 고려 말의 문신인 정지의(鄭之義)가 개평리로 이주하면서 함양에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현재 이 집은 대문채, 작은사랑채, 안채로 이루어져 있다. 건립 당시에는 안채와 대문채 사이에 큰사랑채가 있었고, 안채의 왼쪽과 오른쪽에는 각각 곳간채와 아래채가 있었다고 한다. 안채는 왼쪽에서부터 부엌, 온돌방, 마루, 온돌방, 마루로 구성되어 있고, 건물 양옆을 반 칸씩 늘리면서 부섭지붕을 덧달았다. 개방적인 형태의 일(一)자형 건물은 남도 지방 안채의 특징이다.

문맥요소

Nodes

Links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