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들공소
한들공소 Handeul Chap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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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한들공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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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Handeul Chapel |
한자 | 한들公所 |
주소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연장리 1376 |
지정(등록) 종목 | 향토문화유산 제1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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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한들공소는 1901년에 설립된 천주교 공소이다. 1922년 목조 7칸의 성당과 목조 5칸의 사제관을 준공하고 진안 어은동에 있는 본당을 이곳으로 이전하면서 진안 지역 천주교회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1941년 신설된 진안 본당과 함께 진안 지역을 담당하였지만, 1942년 말 폐쇄되어 한들공소로 환원되었다. 1977년 다시 한들 본당으로 승격되었지만, 교구의 장기적인 사목 계획에 따라 1985년에 다시 폐쇄되어 진안 본당 관할의 한들공소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한들공소에서는 한 달에 두 번 본당 신부의 방문으로 미사가 진행되며, 그 외의 주일 미사는 진안성당에서 이루어진다.
영문
Handeul Chapel
This small chapel located in Yeonjang-ri Village was established as a chapel-of-ease, called gongso in Korean, for Catholic followers who lived far away from the local parish. A priest does not usually reside in a chapel-of-ease, but visits regularly to hold mass.
Handeul Chapel was first built in 1901. In 1922, the current chapel and presbytery buildings were newly constructed, and the chapel was promoted to parish church until 1942, when it again became a chapel-of-ease. It served as the parish church again from 1977 to 1985. Currently, priests from the parish church in downtown Jinan visit twice a month to perform mass.
영문 해설 내용
연장리에 있는 이 작은 공소는 본당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천주교 신자들을 위해 세워졌다. 평상시에는 신부가 상주하지 않고, 정기적으로 신부가 방문했을 때 미사를 집전한다.
한들공소는 1901년에 세워졌으며, 1922년 예배당과 사제관을 준공하였다. 1942년까지 진안 지역 천주교회의 중심지 역할을 하다가 다시 공소가 되었고, 1977년 본당으로 승격되었다가 1985년 다시 공소가 되었다. 지금은 한 달에 두 번 본당 신부가 방문해 미사를 진행한다.
참고자료
- 쉽게 쓰여진 시, 다음 블로그 http://blog.daum.net/gemma070/12065653 -> 한들은 1895년, 블랑신부가 전라도에서 사목활동을 할 때 복사를 서며 음양으로 도움을 주었던 박중현 안드레아 회장에 의해서 신앙의 씨가 뿌려졌다. 그 해 박회장은 정부의 대사면령으로 박해로 잃었던 재산을 거의 찾게 되자 이곳 진안 마령 연장리(한들)에 정착해 교우들을 불러들여 전답을 나누어 주며 교우촌을 이루었던 것이다. 한들이라는 이름은 산 아래 넓은 들에서 상평, 중평, 하평 마을이 함께 농사를 짓는다고 해서 생겨난 이름이라고 한다. 1900년 전주 본당에서 분리된 어은동 본당은 지리적으로 본당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되어 제2대 이상화신부 때 진안읍에 본당 터를 찾았다. 그러나 교세가 약하여 본당 유지가 어렵다고 판단되자 한들에 사는 박참봉(덕화, 다미아노)이 신부를 모셔다가 본당을 세울 수 있도록 터를 제공하여 1922년 한들 본당이 설립되었다. 박덕화는 강경에서 중국인 상인들을 상대로 무역을 하였던 호상(豪商)이었는데 애덕 실천에 뛰어난 인물로 박중현의 손자였다.
- 전주교구 : 진안 한들 공소, 한국의 성지와 사적지 http://www.paxkorea.kr/bbs/zboard.php?id=1001&no=626 -> 이미지 출처 / 박해가 일어나 많은 교우들이 체포되자 1878년 9월 박중현 회장은 블랑 신부님을 용담 양명리(현재 진안군 주천면 운봉리)로 피신시켜 드리고 자신도 진안군 마령면 방각리(현 부귀면 세동리 방각)로 이사를 왔다. 1895년 정치범에 대한 대 사면령이 내려져 박해 때 잃은 양반의 명예와 재산을 찾았으나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마령면 대평리 한들로 이사해 한들 공소의 초석이 되었다. 2008년 그의 이름을 딴 박중현 안드레아 교육관을 신축하였다.
- 디지털진안문화대전 http://jinan.grandculture.net/Contents/Index?local=jin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