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 동사지 오층석탑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하남 동사지 오층석탑
Five-story Stone Pagoda at Dongsa Temple Site, Hanam
하남 동사지 오층석탑, 경기도문화재총람국가지정편, 경기도.
대표명칭 하남 동사지 오층석탑
영문명칭 Five-story Stone Pagoda at Dongsa Temple Site, Hanam
한자 河南 桐寺址 五層石塔
주소 경기도 하남시 춘궁동 466번지
지정번호 보물 제12호
지정일 1963년 1월 21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탑
시대 고려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하남 동사지 오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상징적인 조형물이다. 그러나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에도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 신앙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하남 동사지 오층석탑은 금당 자리 동쪽에 삼층석탑과 나란히 서 있다. 고려시대인 10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높이는 약 7.7m이며 2층의 기단, 5층의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 일부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의 모서리와 중앙, 그리고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다. 1층 몸돌은 특이하게 총 5개의 네모진 돌로 짜여 있는데, 4개의 네모난 석재를 두고 그 위에 1장의 돌을 얹은 모습이며 이러한 형태는 고려시대에 나타난 새로운 양식이다. 지붕돌은 위로 올라갈수록 받침의 수를 줄여 1층은 5단, 2층부터 4층까지는 4단, 5층은 3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처마의 끝이 위로 치켜 올려져 있어 경쾌한 느낌을 준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을 받치기 위한 부재인 노반(露盤)만 남아있다. 전체적인 탑의 비례와 짜임새가 좋은 석탑으로 기단을 2단으로 구성하고 지붕돌의 모서리를 살짝 들어 올리는 등 신라 석탑의 흔적이 보인다. 탑 주변에서 납석제수연 등이 발견되었으며 현재 하남역사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 금당 : 절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 본당

영문

Five-story Stone Pagoda at Dongsa Temple Site, Hanam

A pagoda is a symbolic monument enshrining the relics or remains of the Buddha. Although not all pagodas contain the true remains, they are nonetheless worshiped as sacred places that enshrine the Buddha.

This five-story stone pagoda stands alongside a three-story stone pagoda to the east of the site of the main worship hall of Dongsa Temple. The pagoda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in the late 10th century during the Goryeo period (918-1392). It measures about 7.7 m in height.

The pagoda consists of a two-tier base, five sets of body and roof stones, and part of a decorative top. The corners and sides of the base are carved to look like pillars, as are the corners of the body stones. What is uncommon about the first-story body stone is that it consists of five rectangular stones, with one of the stones placed atop the other four. This type of architectural style emerged in the Goryeo period. The undersides of the roof stones are carved into tiers: five on the first story, four on the second, third and fourth story, and three on the fifth story. The eaves are curved upward, creating a feeling of buoyancy. On the top of the pagoda, all that remains is the base of the decorative top.

Overall, the pagoda is well proportioned and structured. The two-tier base and the slight upward curve of the eaves of the roof stones are characteristic of stone pagodas of the Unified Silla period (668-935). Various artifacts were excavated in the vicinity, including part of the decorative top, which was made of agalmatolite. They are currently displayed at the Hanam Museum of History.

영문 해설 내용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상징적인 조형물이다. 모든 탑이 진신사리를 모신 것은 아니지만,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 신앙의 대상이 된다.

동사지 오층석탑은 금당 자리 동쪽에 삼층석탑과 나란히 서 있다. 고려시대인 10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약 7.7m이다.

탑은 2단의 기단, 5층의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 일부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의 모서리와 중앙, 그리고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다. 1층 몸돌은 특이하게 총 5개의 네모난 돌로 짜여 있는데, 4개의 석재를 두고 그 위에 1장의 돌을 얹은 모습이다. 이러한 형태는 고려시대에 나타난 새로운 양식이다. 지붕돌은 1층은 5단, 2층부터 4층까지는 4단, 5층은 3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처마의 끝이 위로 치켜 올려져 있어 경쾌한 느낌을 준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을 받치기 위한 부재만 남아 있다.

전체적인 비례와 짜임새가 좋은 석탑이다. 기단을 2단으로 구성하고 지붕돌의 모서리를 살짝 들어 올린 것은 신라시대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계승한 것이다. 탑 주변에서 납석으로 만든 머리장식 부재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으며, 현재 하남역사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문맥요소

Nodes

ID Class Label Description
하남_동사지_오층석탑 Object 하남_동사지_오층석탑
B00-0012-0000 Heritage (보물_제12호)_하남_동사지_오층석탑
하남_동사지 Place 하남_동사지
하남_동사지_삼층석탑 Object 하남_동사지_삼층석탑

Links

Source Target Relation
하남_동사지_오층석탑 하남_동사지 currentLocation
하남_동사지_오층석탑 B00-0012-0000 isDesignatedAs
하남_동사지_오층석탑 하남_동사지_삼층석탑 isNear

갤러리


참고자료

  • 경기도, 경기문화재연구원, 『경기도 문화재 총람 국가지정편_1』, 2019, 58~59쪽.
  • 하남 동사지 오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123100120000&pageNo=1_1_1_1 → 기단의 네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겨두었는데, 남쪽 면이 부서져 있어 그 안쪽으로 커다란 기둥돌이 들여다 보인다. 이 탑의 특징은 탑신부에서 드러난다. 첫층 몸돌이 2단인데, 아랫단을 4개의 네모난 돌로 두고, 그 위에 1장의 돌을 얹어놓았다. 이러한 예는 (전)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보물 제109호)에서도 볼 수 있는데, 고려시대에 나타난 새로운 양식이다. / 구조상 불규칙적인 면이 많지만, 각 부분의 끝맺음마다 규칙성이 느껴지고, 탑신의 비례도 조화로운 우수한 작품이다. 지붕돌 모서리의 치켜올려진 정도나 기단을 2단으로 구성한 점 등 통일신라 후기 석탑양식의 전형을 따른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지붕돌 받침수가 3∼4단으로 줄어든 점이나, 기단의 가운데에 새긴 기둥의 수가 줄어든 것 등으로 미루어 고려 전기인 10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