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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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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
Jeongmyeolbogung Hall in Jungdae Peak of Odaesan Mountain, Pyeongchang
평창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평창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
영문명칭 Jeongmyeolbogung Hall in Jungdae Peak of Odaesan Mountain, Pyeongchang
한자 平昌 五臺山 中臺 寂滅寶宮
주소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로 1211-92 (진부면, 월정사 적멸보궁)
지정번호 보물 제1995호
지정일 2018년 7월 4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불전
소유자 월정사
관리자 월정사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일곽
웹사이트 평창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적멸보궁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찰의 법당을 일컫는다. 태백산 정암사와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 오대산 월정사의 적멸보궁 등 강원도의 네 곳과 경남 양산 영취산 통도사의 적멸보궁을 합하여 5대 적멸보궁이라 한다.

월정사 적멸보궁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오면서 석가의 진신사리를 가져와 오대산에 봉안하고 이 보궁을 창건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낮은 한 단의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단층인 팔작지붕의 겹처마 집이다. 건물 전면의 중앙에만 두 짝의 판문을 달고, 좌우측에는 중방을 설치하고 협간 아래는 판벽을 하고, 그 위에 띠살창을 한 점이 특이하다.

이 건물은 그간 조선시대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어 왔으나, 최근 건물 내부의 구조에서 15세기 후반 양식의 다포와 고식 단청, 배흘림기둥 등의 특징이 조사되어 조선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적멸보궁은 보통의 법당과 달리 곁칸과 속칸이 벽으로 구분된 겹집의 형태라는 사실이 보고되어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적멸보궁은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에 예배하기 위해 세워진 전각이다. 진신사리는 보통 적멸보궁 근처의 탑이나 계단에 모신다.

643년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부처의 몸에서 나온 사리를 가져와 이곳을 비롯해 양산 통도사, 인제 봉정암, 영월 법흥사, 정선 정암사까지 다섯 곳에 나누어 모셨다.

84cm 높이의 석재에 5층 탑을 새긴 비석 모양의 마애불탑이 세워져 있는 적멸보궁 뒤편 언덕에 부처의 이마에서 나온 사리가 모셔져 있다고 하나, 정확히 어느 곳에 모셔져 있는지 알 수 없다.

사자암 뒤편에 자리한 적멸보궁 전각은 2000년에 보수를 위한 조사 중 보통의 법당과 달리 이중 구조의 건물로 지어졌음이 밝혀졌다. 두 공간은 특히 처마의 하중을 지탱하기 위한 부재인 공포(栱包)의 양식과 기둥을 세우는 방식 등에서 시대적인 차이가 드러난다.

정밀조사 이전인 1974년 수리가 이루어지면서 일부 변형되기는 했지만, 이렇듯 겉집과 속집을 벽을 세워 구분해 중간에 퇴칸을 둔 겹집 형태의 불전은 국내에서 유례가 없는 독특한 구조로 주목된다. 내부 공간을 확장 또는 보호하기 위해 후대에 외부 공간이 추가하면서 이러한 형태가 된 것으로 보이며, 건축 특징으로 볼 때 내부는 15세기 중반, 외부는 19세기 말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각 안에는 불단과 불상이 앉는 자리인 대좌만 놓여 있다.

  • 2000년에 진행된 조사과정에서 내외부 이중형식인 점이 확인되었다.
  • 내부는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진 건물들에서 보이는 여러 개의 공포를 사용한 형식으로 되어 있고, 외부는 새의 날개 모양을 한 부재를 활용한 이익공(二翼工) 형식으로 되어 있다.

1차 수정

적멸보궁은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나 진신사리를 봉안한 상징물에 예배하기 위해 세워진 전각이다. 진신사리란 석가모니가 열반한 후 시신을 화장하였을 때 몸에서 나온 유골이다. 적멸보궁에는 불상을 모시는 대신 적멸보궁 바깥쪽에 사리탑을 세우거나 계단(戒壇)을 만든다.

오대산 적멸보궁은 양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 영월 법흥사, 정선 정암사의 적멸보궁과 함께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으로 일컬어진다. 신라시대의 승려 자장(慈藏, 590~658)이 당나라에서 불사리와 정골(頂骨)을 가져와 오대산, 통도사, 봉정암, 법흥사에 직접 봉안하였고, 정암사의 사리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 유정(四溟大師 惟政, 1544~1610)이 왜적의 노략질을 피해서 통도사의 것을 나누어 봉안하였다.

오대산 적멸보궁 뒤편 언덕에 불사리가 모셔져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곳에는 석탑 문양을 새긴 비석을 세워 불사리가 있는 곳임을 표시하였다.

오대산 적멸보궁의 가장 큰 건축사적 가치는 이중 구조로 지어진 불전 건축물이라는 점이다. 이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이고, 내부 건물을 확장하거나 보호하기 위해 외부 건물을 후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두 건물은 처마의 하중을 지탱하기 위한 부재인 공포(栱包)의 양식과 기둥을 세우는 방식 등에서 시대적인 차이가 드러나며, 내부 건물은 조선 초기인 14~15세기, 외부 건물은 조선 후기인 19세기의 양식과 기법을 보여준다. 특히 내부 건물은 구조나 장식 면에서 조선 전기의 목조 건축물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어 가치가 높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적멸보궁에는 불상을 모시는 대신 적멸보궁 바깥쪽에 사리탑을 세우거나 계단(戒壇)을 만든다. -> (사리탑과 적멸보궁의 인과관계에 오해의 소지 있음.) 적멸보궁은 바깥쪽의 사리탑 또는 계단이 예배의 대상이기 때문에 전각내에 불상을 모시지 않는다.
    • 오대산 적멸보궁 뒤편 언덕에 -> 오대산 적멸보궁 뒤편 암반
    • 가장 큰 건축사적 가치는 이중 구조로 지어진 -> 가장 큰 건축사적 가치는 속집과 겉집의 내외 이중 구조로 지어진
    • 구조이고, 내부 건물을 확장하거나 보호하기 위해 외부 건물을 후대에 세운 것으로 -> 구조로, 처음 지어진 건물을 보호하면서, 공간을 확장하기 위해 후대에 좀 더 큰 집을 덧씌운 것으로
    • 두 건물은 처마의 하중을 지탱하기 위한 -> (두 건물 아님. 하나의 건물에 속집과 겉집 이중 구조임.) 내부의 속집과 외부의 겉집은 처마의 하중을 지탱하기 위한
    • (1) 전체적으로 ‘내부 건물’, ‘외부 건물’은 ‘내부의 속집’, ‘외부의 겉집’으로 수정 필요.
      (2) 속집의 경우 단순히 조선 전기 건축양식을 보여준다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조선초 다포건축 사례라는 점을 명확 강조하여야 함.
  2. 분야별 자문위원 2
    • 석가모니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법당을 “적멸보궁”이라 한다. 이곳에는 불상을 모시지 않고 법당 바깥이나 뒤쪽으로 사리탑을 세우거나 계단(戒壇)을 만든다.
      신라시대의 승려 자장(慈藏, 590~658)이 당나라에서 불사리와 정골(頂骨)을 가져와 경남 양산 통도사(通度寺),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태백산 정암사(淨巖寺), 사자산 법흥사(法興寺) 적멸보궁에 직접 봉안하여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으로 일컬어진다. 그 중 정암사 사리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 유정(四溟大師 惟政, 1544~1610)이 왜적의 노략질을 피해서 통도사의 것을 나누어 봉안했다고 알려져 있다.
      오대산 적멸보궁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로 내․외 이중 구조의 불전 건축물이다. 내부 건물과 외부 건물을 이루고 있는 기둥은 각 건물이 독립적이고, 서까래만을 공유한 건축구조이다. 내부 건물을 확장하거나 보호하기 위해 외부 건물을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두 건물은 처마의 하중을 지탱하기 위한 부재인 공포(栱包)의 양식과 기둥을 세우는 방식 등에서 시대적인 차이가 드러나며, 내부 건물은 조선 초기인 14~15세기, 외부 건물은 조선 후기인 19세기의 양식과 기법을 보여준다.
      오대산 적멸보궁은 내․외 이중구조로 지어진 국내 유일한 건축물이며, 특히 내부의 구조나 장식은 조선 전기의 목조 건축물 양식을 잘 유지하고 있어 건축적, 예술적, 학술적인 가치가 매우 높다.
  3.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적멸보궁은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나 진신사리를 봉안한 상징물에 예배하기 위해 세워진 전각이다. 진신사리란 석가모니가 열반한 후 시신을 화장하였을 때 몸에서 나온 유골이다. 적멸보궁에는 불상을 모시는 대신 적멸보궁 바깥쪽에 사리탑을 세우거나 계단(戒壇)을 만든다.

오대산 적멸보궁은 양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 영월 법흥사, 정선 정암사의 적멸보궁과 함께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으로 일컬어진다. 신라시대의 승려 자장(慈藏, 590~658)이 당나라에서 불사리와 정골(頂骨)을 가져와 오대산, 통도사, 봉정암, 법흥사에 직접 봉안하였다. 정암사의 사리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 유정(四溟大師 惟政, 1544~1610)이 왜적의 노략질을 피해서 통도사의 것을 나누어 봉안하였다. 오대산 적멸보궁 뒤편 언덕에 불사리가 모셔져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곳에는 석탑 문양을 새긴 비석을 세워 불사리가 있는 곳임을 표시하였다. 오대산 적멸보궁의 가장 큰 건축사적 가치는 이중 구조로 지어진 불전 건축물이라는 점이다. 이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이고, 내부 건물을 확장하거나 보호하기 위해 외부 건물을 후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두 건물은 처마의 하중을 지탱하기 위한 부재인 공포(栱包)의 양식과 기둥을 세우는 방식 등에서 시대적인 차이가 드러나며, 내부 건물은 조선 초기인 14~15세기, 외부 건물은 조선 후기인 19세기의 양식과 기법을 보여준다. 특히 내부 건물은 고식 단청, 배흘림기둥 등의 구조나 장식 면에서 조선 전기의 목조 건축물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어 가치가 높다.

2차 수정

적멸보궁은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나 진신사리를 봉안한 상징물에 예배하기 위해 세워진 전각이다. 진신사리란 석가모니가 열반한 후 시신을 화장하였을 때 몸에서 나온 유골이다. 적멸보궁은 바깥쪽의 사리탑 또는 계단(戒壇)이 예배의 대상이기 때문에 전각 내에 불상을 모시지 않는다.

오대산 적멸보궁은 양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 영월 법흥사, 정선 정암사의 적멸보궁과 함께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으로 일컬어진다. 신라시대의 승려 자장(慈藏, 590~658)이 당나라에서 불사리와 정골(頂骨)을 가져와 오대산, 통도사, 봉정암, 법흥사에 직접 봉안하였다. 정암사의 사리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 유정(四溟大師 惟政, 1544~1610)이 왜적의 노략질을 피해서 통도사의 것을 나누어 봉안하였다.

오대산 적멸보궁 뒤편 암반에 불사리가 모셔져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곳에는 석탑 문양을 새긴 비석을 세워 불사리가 있는 곳임을 표시하였다.

오대산 적멸보궁의 가장 큰 건축사적 가치는 속집과 겉집의 이중 구조로 지어진 불전 건축물이라는 점이다. 이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로, 처음 지어진 건물을 보호하면서 공간을 확장하기 위해 후대에 좀 더 큰 집을 덧씌운 것으로 추정된다. 속집과 겉집은 처마의 하중을 지탱하기 위한 부재인 공포(栱包)의 양식과 기둥을 세우는 방식 등에서 시대적인 차이가 드러나며, 속집은 조선 초기인 14~15세기, 겉집은 조선 후기인 19세기의 양식과 기법을 보여준다. 특히 속집은 고식 단청, 다포양식, 배흘림기둥 등 구조나 장식 면에서 조선 전기의 목조 건축물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어 가치가 높다.

문맥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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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s

참고자료

  • 평창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123219950000
  • 『국가지정문화재 지정‧인정 자료보고서 – 평창 월정사 적멸보궁』, 2017.
  • 적멸보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49146
  • 5대보궁이란 무엇입니까?, 법보신문, 2004.08.10. 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5771
  • 평창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 보물 지정, 문화재청 보도자료, 2018-07-04 https://www.cha.go.kr/newsBbz/selectNewsBbzView.do?newsItemId=155700880&sectionId=b_sec_1&mn=NS_01_02 → 적멸보궁의 가장 큰 건축사적 특징은 내·외부가 이중 건물로 된 불전 건축물이라는 점이다. 정면 3칸·옆면 2칸의 건물 내부에 다시, 정면 3칸·옆면 2칸의 건물이 있다. 이는 국내에서 유례가 없는 독특한 구조로, 내부 건물과 외부 건물이 시대를 달리하여 내부 공간을 확장 또는 보호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내부와 외부 건물 모두 동일하게 정면 3칸, 옆면 2칸으로 구성되었으며, 외부 건물은 익공식(翼工式), 내부 건물은 다포식(多包式) 건축양식이다. 외부 건물은 조선 후기(19세기)의 보편적인 이익공 양식 구조를 보이지만, 내부 건물은 조선 초·중기의 심원사 보광전(1374년, 황해도 황주군), 봉정사 대웅전(국보 제311호, 1435년 중창), 숭례문(국보 제1호, 1448년 중수) 등과 유사한 고식기법을 가지고 있다.
  • 고요함의 세계에서 인생을 씻어내다 오대산 적멸보궁, 매일경제, 2021.2.23.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21/02/178396/ → 사자암이라는 이름은 동물 사자에서 온 게 아니라 문수보살에서 비롯되었다. 진리의 부처 문수보살을 상징하는 게 사자이기 때문에 사자상이 있고, 이곳 이름도 사자암이 된 것이다. / 적멸보궁은 법당 안에 불상이 없다.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으므로 그 자체가 부처님인 것이다. 굳이 불상을 모실 필요가 없는 것이다. 법당은 작은 암자 수준의 크기다. 법당이 있고, 양쪽 벽 너머로 각각 두 사람 정도가 절할 수 있는 좁은 공간이 있다. 법당 안에서는 세 번 절하는 삼배까지만 가능하고, 그 이상 절할 사람은 그 복도에서 상황에 따라 108배를 하든 만 배를 하든 할 수 있다. 적멸보궁 정면으로는 일출을 볼 수 있는 동쪽 언덕이 있고,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은 적멸보궁 뒷쪽에 있다. 84cm 높이의 작은 마애불탑에는 오층 석탑을 양각으로 새겨놓았다. 단순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 작은 탑은 이곳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묻혀 있다는 표시석이다. 그런데 그 사리가 어디에 있는지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오직 탑만이 그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 35. 오대산 중대사자암, 법보신문, 2014. 11.10. 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84371 → 계단식 5층 절집이 나타났다. 중대사자암이다. 오대산의 5대(臺)를 상징하여 지었다고 한다. / 중대사자암은 조선 태종 1400년 11월 중창되었으며 이후 왕실의 내원당이었다. 명종 때에는 승영사찰이었다가 1646년 중수되었다. 1878년 고쳐지었고, 요사채 향각(香閣)이 낡아 정념 스님(오대산 월정사 주지)의 발원으로 불사가 이뤄져 2006년 오늘의 모습으로 마무리되었다. 법당인 비로전은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시고 문수와 보현이 협시보살상으로 조성되어 있다. / 중대사자암에서 다시 적멸보궁을 향해 걸었다. 계단을 오르고 오르면 마침내 적멸보궁이 나타난다. 적멸보궁은 단아하고 그윽했다. 보궁의 자리는 막 승천하려는 용의 정수리 부분으로 천하의 명당이라고 한다. / 보궁에는 부처님이 앉아 계심을 상징하는 붉은 방석만이 수미단 위에 놓여 있다. 부처님 사리는 어느 곳에 모셔져 있는지 알 수 없다. 정골사리이기 때문에 땅 속 깊숙이 묻혀있을 거라 추정할 뿐이다. 적멸보궁 뒤 쪽 봉분에는 5층탑을 양각으로 새겨 넣은 84㎝ 높이의 마애불탑이 서 있다. 모양이 초라해서 더 비범했다. 탑 뒤편 사리가 묻혀있을 법한 곳에 작은 바위들이 편하게 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