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추봉도와 용호도 포로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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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추봉도와 용호도 포로수용소
Prisoner-of-War Camps on Chubongdo and Yonghodo Islands, Tongyeong
대표명칭 통영 추봉도와 용호도 포로수용소
영문명칭 Prisoner-of-War Camps on Chubongdo and Yonghodo Islands, Tongyeong
한자 統營 秋蜂島와 龍虎島 捕虜收容所
주소 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면 용호리 산 110-1 , 추봉리 642 외
지정(등록) 종목 경상남도 기념물 제302호
지정(등록)일 2020년 10월 8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근대정치국방/국방
시대 기타
수량/면적 825,231㎡
웹사이트 통영 추봉도와 용호도 포로수용소,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통영 추봉도와 용호도 포로수용소는 한국전쟁 포로를 수용하던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포화 및 과밀화를 해소하고 포로와 민간인 억류자를 나누어 수용하기 위해 1952년에 지은 시설이다. 추봉도에는 민간인 억류자 수용소가, 용호도에는 전쟁 포로수용소와 국내 유일의 국군 귀환 집결소가 지어졌다. 추봉도와 용호도는 민간 지역과 떨어져 있으면서 식수가 풍부하고 거제도 포로소용소와 가까워 소규모 단위의 포로를 집중적으로 관리하기 좋은 최적의 장소였다.

추봉도와 용호도 포로수용소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역사적 현장을 잘 보존하고 있는 유적으로, 전쟁과 평화의 공간으로서 가치가 높다고 평가된다.

영문

Prisoner-of-War Camps on Chubongdo and Yonghodo Islands, Tongyeong

These prisoner-of-war (POW) camps on Chubongdo and Yonghodo Islands were built in 1952.

During the Korean War (1950-1953), the UN military headquarters built a POW camp on Geojedo Island for captured soldiers of the Communist Army. However, as the camp facilities on Geojedo exceeded their capacity, it became necessary to separate the military POWs from the civilian POWs. So, it was decided to additionally build a camp for civilians on Chubongdo Island and a camp for military personnel on Yonghodo Island. Yonghodo Island also was equipped with the only domestic staging post for South Korean military personnel returning home after having been taken as POWs by the North Korean army.

These islands were chosen for the construction of the camps as they were located far away from any residential areas and had enough drinking water to sustain and effectively control a small number of prisoners. The site is a valuable landmark of Korea’s contemporary history.

영문 해설 내용

추봉도와 용호도의 포로수용소는 1952년에 지어졌다.

한국전쟁 당시 UN군 사령부는 공산군 포로를 수용하기 위해 거제도에 포로수용소를 지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과밀화를 해소하고 포로와 민간인 억류자를 나누어 수용하기 위해, 추봉도에는 민간인 억류자 수용소를, 용호도에는 전쟁 포로수용소를 추가로 지었다. 또한 용호도에는 인민군에 붙잡혔다가 돌아온 국군을 위한 국내 유일의 국군 귀환 집결소도 지어졌다.

추봉도와 용호도는 민간 지역과 떨어져 있으면서 식수가 풍부하고 소규모 단위의 포로를 집중적으로 관리하기 좋은 최적의 장소였다. 한국 현대사의 역사적 현장을 보여주는 가치 있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