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함양 오담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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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이 건물은 정환필(鄭煥弼)이 조선 후기에 건립한 주택이다.

정환필은 조선 전기 문신인 정여창(鄭汝昌, 1450~1504)의 12대손으로 함양 일두고택(咸陽一蠹古宅)에서 분가를 하였다. 건물의 이름은 그의 호인 오담(梧潭)에서 따온 것으로 그는 1834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지만 관직에 나아가지는 않았다. 학식이 높아 당대 유명인들과 교유하였다.

정여창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사화에 연루되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으나 사후 우의정에 증직된 인물이다. 함양 일두 고택은 정여창이 태어난 곳으로 2007년 그의 호인 일두(一蠹)를 문화재 명칭으로 사용하였다.

오담고택(梧潭古宅)은 상량문을 통해 1838년에 사랑채를, 1840년에 안채를 건립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종가에서 분가한 양반계층의 주거형태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충분하며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1차 수정

오담고택은 정환필(鄭煥弼)이 조선 후기에 건립한 주택이다.

정환필은 조선 전기의 문신인 정여창(鄭汝昌, 1450~1504)의 12대손이다. 1834년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관직에 나아가지는 않았고, 학식이 높아 당대 유명인들과 교유하였다. 정여창 가문의 종택인 일두고택(一蠹古宅)에서 분가하면서 이 집을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집의 이름은 그의 호인 오담(梧潭)에서 따왔다.

오담고택은 사랑채, 안채, 곳간채로 구성되어 있다. 대문채는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사랑채와 안채는 각각 1838년, 1840년에 건립하였으며, 2006-2007년에 해체 수리하였다. 건물 앞뒤에 툇간을 들여 공간을 넓게 사용한 점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 가옥의 특징이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오담고택은 사랑채와 안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랑채영역은 부속 건물인 화장실,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으로 구성되며, 안채영역은 안채와 그 정면 우측편에 곳간채로 배치되어 있다.
  2. 분야별 자문위원 2
    • 관직에 나아가지는 않았고,-> 관직에 뜻을 두지 않았고
    • 사랑채와 안채는 각각 1838년, 1840년에 건립하였으며, -> 1838년에 사랑채를 짓고 1840년에 안채를 건립하였으며, 로 수정
  3.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오담고택은 정환필(鄭煥弼, 1798-1859)이 조선 후기에 건립한 주택이다.
    • 사랑채는 1838년에, 안채는 1840년에 건립하였으며, 2006-2007년에 해체·수리하였다.

2차 수정

이 건물은 오담 정환필(梧潭 鄭煥弼, 1798~1859)이 조선 후기에 건립한 주택이다.

정환필은 조선 전기 문신인 정여창(鄭汝昌, 1450~1504)의 12대손이다. 1834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지만 관직에 나아가지는 않았다. 학식이 높아 당대 유명인들과 교유하였다. 정환필이 정여창 가문의 종택인 일두고택(一蠹古宅)에서 분가하면서 이 집을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오담고택은 사랑채 영역과 안채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사랑채 영역은 부속 건물인 화장실,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으로 구성되며, 안채 영역은 안채와 그 정면 우측편에 곳간채로 이루어져 있다. 사랑채 1838년에, 안채는 1840년에 건립하였으며, 2006~2007년에 해체·수리하였다. 건물 앞뒤에 툇간을 들여 공간을 넓게 사용한 점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 가옥의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