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함양 법인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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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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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법인사 극락보전에 봉안되어 있는 이 불상은 죽은 이를 서방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그의 영혼을 구제하는 아미타여래를 나타낸 것이다.

1657년에 조성된 이 불상은 영규(靈圭)가 불사의 책임을 맡고, 조능(祖能) 등 7명의 조각승들이 제작에 참여하였으며, 덕유산 장수사(長水寺)의 부속 암자였던 은신암(隱身菴)에서 조성되었다.

불상은 결가부좌를 하고 있으며, 오른손은 가슴 높이까지 들고 왼손은 무릎에 얹어 엄지와 가운뎃손가락을 맞대고 있다. 이 손 모양은 중생에게 설법하는 아미타여래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 불상은 법의의 주름이 특징적이다. 다리를 덮은 옷자락 중앙에는 부채꼴 모양의 주름을 표현하였으며, 무릎 좌우의 주름은 각기 다르게 조각하였다.

불상 안에 봉안되어 있던 조성발원문과 경전, 다라니 등의 유물들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41호로 지정되었다. 발원문은 불상 안에 다시 봉안되었고, 나머지 유물들은 해인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1차 수정

이 불상은 죽은 이를 서방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그의 영혼을 구제하는 아미타여래를 나타낸 것으로, 조선 효종 8년(1657)에 조성되었다. 모든 중생이 성불하고 왕실과 백성이 안녕하기를 기원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영규(靈圭)와 조능(祖能)을 비롯한 총 7명의 승려 조각가들이 제작에 참여하였고 700여 명이 시주하였다.

불상은 결가부좌를 하고 있으며, 오른손은 가슴 높이까지 들고 왼손은 무릎에 얹어 엄지와 가운뎃손가락을 맞대고 있다. 이 손 모양은 중생에게 설법하는 아미타여래를 상징하는 것이다. 양어깨를 덮은 상의(上衣), 그 안의 내의(內衣), 그리고 오른쪽 어깨 일부와 왼팔을 감싸고 있는 대의(大衣)를 입고 있으며, 두 다리 사이에서 부채꼴 모양으로 힘있게 표현된 옷자락의 주름이 매우 특징적이다.

불상 안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 경전, 다라니 등의 유물들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41호로 지정되었다. 발원문은 불상 안에 다시 봉안되었고, 나머지 유물들은 해인사 성보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이 불상은 죽은 이를 서방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그의 영혼을 구제하는 아미타여래를 나타낸 것으로, 조선 효종 8년(1657)에 조성되었다. 모든 중생이 성불하고 왕실과 백성이 안녕하기를 기원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영규(靈圭)와 조능(祖能)을 비롯한 총 7명의 승려 조각가들이 제작에 참여하였고 700여 명이 시주하였다. --> 이 불상은 서방정토에 머물면서 중생을 극락으로 이끈다는 아미타여래좌상이다. 발원문에는 조선 효종 8년(1657) 영규(靈圭)와 조능(祖能)을 비롯한 총 7명의 승려 조각가들이 제작에 참여하였다는 내용이 있어서 여러 명의 조각승들이 분업을 통해 불상을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2. 분야별 자문위원 2
    • 불상의 원 제작봉안처 표기 -> 경상도慶尙道 안음安陰 북령北嶺 덕유산德裕山 은신암隱身菴
    • 불상의 형태 설명문장 수정 -> 얼굴, 몸, 수인, 의습 등의 특징을 순차적으로 정리.
    • 시주질 내용을 추가 -> 시주에 참여한 승려들 가운데는 단연 벽암각성의 문도가 두드러지며 17세기 불교 조각을 주도했던 여러 유파의 조각승(彫刻僧)들이 대거 시주자로 참여하고 있는 점이 특색있다.
  3.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이 불상은 극락보전의 주불로 죽은 이를 서방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그의 영혼을 구제하는 아미타여래를 나타낸 것으로, 조선 효종 8년(1657)에 경상도(慶尙道) 안음(安陰) 북령(北嶺) 덕유산(德裕山) 은신암(隱身菴)에서 조성되었다. 모든 중생이 성불하고 왕실과 백성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영규(靈圭)와 조능(祖能) 등 7명의 승려 조각가들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벽암(碧岩) 각성(覺性)과 호구당(虎丘堂) 계주(戒珠) 등 대선사가 불사를 이끌어, 700여 명이 시주하였다.
      이 불상은 전체적으로 비례가 맞고 안정감이 있다. 손의 모양인 수인은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고 오른손은 손등을 위로 하여 중지와 엄지를 맞댄 중품하생인(中品下生印)으로 중생에게 설법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양어깨를 덮은 상의(上衣), 그 안의 내의(內衣), 그리고 오른쪽 어깨 일부와 왼팔을 감싸고 있는 대의(大衣)를 입고 있으며, 두 다리 사이에서 부채꼴 모양으로 힘있게 표현된 옷자락의 주름이 매우 특징적이다. 코가 높고 입이 가늘어서 날카로운 인상을 주지만, 은은한 미소가 감돌고 있어 부드러움을 주고 있다.
      불상 안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은 불상 안에 다시 봉안되었고, 나머지 경전, 다라니 등의 복장 유물들은 해인사 성보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조선 후기 불상 조각양식의 계승과 변화과정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2차 수정

법인사 극락보전의 주불인 이 불상은 죽은 이를 서방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그의 영혼을 구제하는 아미타여래를 나타낸 것이다. 모든 중생이 성불하고 왕실과 백성이 안녕하기를 기원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조선 효종 8년(1657) 여름 덕유산 은신암에서 제작되었다. 불상 제작에는 영규(靈圭)와 조능(祖能)을 비롯한 총 7명의 승려 조각가들이 참여하였고, 700여 명의 시주자들이 동참하였다. 시주자로 참여한 승려 중에는 17세기 불교 조각을 주도했던 여러 유파의 승려 조각가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불상은 결가부좌를 하고 있으며, 오른손은 가슴 높이까지 들고 왼손은 무릎에 얹어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다. 이 손 모양은 중생에게 설법하는 아미타여래를 상징하는 것이다. 양어깨를 덮은 상의(上衣), 그 안의 내의(內衣), 그리고 오른쪽 어깨 일부와 왼팔을 감싸고 있는 대의(大衣)를 입고 있으며, 두 다리 사이에서 부채꼴 모양으로 힘있게 표현된 옷자락의 주름이 매우 특징적이다.

불상 안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은 불상 안에 다시 봉안되었고, 경전과 다라니 등의 나머지 복장 유물들은 해인사 성보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