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하남 동사지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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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이 석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고려시대의 탑으로 높이가 3.6m이다. 이 탑은 기단의 아래층이 일부 매몰되었고, 탑의 상륜부가 남아 있지 않는 등 손상된 부분이 있으나 전체적으로 당당한 모습이다. 하층 기단의 각 면에는 3개씩의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고, 상층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 기둥隅柱[우주]이 새겨 있다. 탑신부의 각 층은 탑 몸돌과 지붕돌이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으며, 탑 몸돌의 각면에는 모서리 기둥이 표현되어 있다. 지붕돌의 지붕인 낙수면의 경사는 완만하고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 끝에서 살짝 들어올려져 있다. 이 탑은 2층 이상의 높이가 1층에 비해 급격히 낮아지고 있으나 기단과 지붕돌의 수법에서 신라 석탑의 양식을 계승한 면이 보이고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이 삼층석탑은 고려 초기의 절터 중 최대 규모로 추정되는 동사지(桐寺址)의 금당자리 동쪽에 오층석탑(보물 제12호)과 나란히 서 있다. 높이는 3.6m이다.

탑은 2층의 받침돌[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졌고 기단의 아래층 일부가 매몰된 상태이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안상(眼象)을 3개씩 새겼고, 위층 기단의 각 면 모서리와 중앙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다.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도 기둥 모양이 표현되어 있으며, 지붕돌은 5단의 받침을 두었다.

전체적으로 신라의 석탑 양식을 계승한 것으로 보이며, 석탑이 조성된 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되나 정확히 알 수 없다.

1966년 보수공사를 실시할 때 탑 안에서 곱돌로 만든 소탑(小塔) 29기, 금동불 1구, 동상 1구, 납석불좌상 등의 유물들이 발견되었으며, 2000년에도 해체 후 수리된 바 있다.

1차 수정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상징적인 조형물이다. 모든 탑이 진신사리를 모신 것은 아니지만,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 신앙의 대상이 된다.

동사지 삼층석탑은 금당 자리 동쪽에 오층석탑(보물 제12호)과 나란히 서 있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3.6m이다.

탑은 2단의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로 이루어져 있고,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졌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안상(眼象)을 3개씩 새겼고, 위층 기단의 모서리와 중앙, 그리고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 아래에는 5단의 받침을 두었다. 기단을 2단으로 구성하고 지붕돌의 모서리를 살짝 들어 올리는 등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매우 안정감 있고 세련된 수법을 보여준다.

1966년 탑을 보수하던 중, 탑 안에서 납석으로 만든 소형 탑 29기, 금동불 1구, 동상 1구, 납석불좌상 등의 유물들이 발견되었고, 2000년에 해체 수리하였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시기 위한 분묘와 같은 축조물이다. 여기에는 부처의 진신사리를 넣기도 하지만 경전과 같은 그의 상징물을 대신한 법사리를 봉안해 신앙의 대상으로 삼기도 하였다.
      1966년 보수공사 때 이 탑에서도 납석으로 만든 소형 탑 29기, 금동불 1구, 동상 1구, 납석불좌상 등의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이 탑은 2단의 받침돌, 3개의 몸돌과 지붕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져 남아 있지 않다. 맨 아래 받침돌에는 3개의 안상(眼象)으로 모서리와 가운데 버팀기둥을 대신하였으며, 윗 받침돌은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을 조각하였다. 몸돌과 지붕돌은 모두 1개의 돌로 만들어졌으며 몸돌의 네 모서리에 기둥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추녀 밑이 수평이며, 네 모서리를 살짝 들어 올리는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특징을 따르고 있다. 낙수면의 경사는 완만하며 지붕돌 밑면의 받침 수도 위로 갈수록 줄어들었다.
      이 석탑은 1층 몸돌이 큰 데 비해 2층, 3층으로 갈수록 급격히 작아지고 이에 맞추어 지붕돌도 작아진 것이 특징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탑의 짜임이 세련되고 안정감이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이다.
  2.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상징적인 조형물이다. 모든 탑이 진신사리를 모신 것은 아니지만,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 신앙의 대상이 된다.
      동사지 삼층석탑은 금당 자리 동쪽에 오층석탑(보물 제12호)과 나란히 서 있다. 오층석탑과 비슷한 시기인 고려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3.6m이다. 탑은 2단의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로 이루어져 있고,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졌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안상(眼象), 연꽃모양(확인필요)을 3개씩 새겼다. 위층 기단의 모서리와 중앙, 그리고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 아래에는 5단의 받침을 두었다. 기단을 2단으로 구성하고 지붕돌의 모서리를 살짝 들어 올리는 등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다. 전체적으로 매우 안정감 있고 세련된 수법을 보여준다.
      1966년 탑을 보수하던 중, 탑 안에서 납석으로 만든 소형 탑 29기, 금동불 1구, 동상 1구, 납석불좌상 등의 유물들이 발견되었고, 2000년에 해체 수리하였다.

2차 수정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상징적인 조형물이다. 모든 탑이 진신사리를 모신 것은 아니지만,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 신앙의 대상이 된다.

동사지 삼층석탑은 금당 자리 동쪽에 오층석탑(보물 제12호)과 나란히 서 있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3.6m이다.

탑은 2단의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로 이루어져 있고,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졌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안상(眼象)을 3개씩 새겼고, 위층 기단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겼다. 몸돌과 지붕돌은 모두 1개의 돌로 만들어졌으며 몸돌의 네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1층과 2층은 5단, 3층은 4단의 받침을 두었다. 기단을 2단으로 구성하고 지붕돌의 모서리를 살짝 들어 올리는 등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매우 안정감 있고 세련된 수법을 보여준다.

1966년 탑을 보수하던 중, 탑 안에서 납석으로 만든 소형 탑 29기, 금동불 1구, 동상 1구, 납석불좌상 등의 유물들이 발견되었고, 2000년에 해체 수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