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태자사지 귀부 및 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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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국문집필

기존 국문

이 석조물은 신라 말기 국사(國師)인 낭공대사(郎空大師)의 백월서운탑비(白月栖雲塔碑)의 귀부(龜趺)와 용모양의 비머리(螭首)라고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한 제작연대는 알 수 없다.

둥근형의 지대석(地臺石) 위에 귀부를 얹고, 그 위에 용모양의 비머리를 올려놓았다. 비신은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 귀부의 머리는 용의 형상을 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거북의 몸체는 지대석과 별석으로 되어 있으며, 거북의 네 발은 지대석 윗면에 새겨져 있다. 용모양의 비머리는 앞면의 중앙부에 제액부(題額部)가 새겨져 있고, 제액의 양쪽에는 두 마리 용이 큰 구슬을 놓고 다투는 형상이 새겨져 있다.

비문(碑文)은 신라시대 명필인 김생(金生)의 글씨라고 하는데, 석조물의 조각 수법으로 보아 고려 전기 작품으로 우리나라 금석학(金石學)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이 석조물은 신라 말기 국사(國師)인 낭공대사(郎空大師, 832~916)의 행적을 기리는 백월서운탑비(白月栖雲塔碑)의 귀부(龜趺,거북모양의 돌비석 받침돌) 와 이수(螭首,용의 형상을 조각하여 수호의 의미를 갖도록 한 비신의 머릿돌)라고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한 제작연대는 알 수 없다.

비석의 몸체는 사라지고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다. 용의 형상을 하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귀부의 머리는 목 위 머리 앞부분이 깨져 없어졌다. 거북의 몸체는 땅에 닿는 부분인 지대석과 그 위쪽의 별석으로 되어 있으며, 거북의 네 발은 지대석 윗면에 새겨져 있다.

이수 앞면의 중앙부에 제액부(題額部,비의 명칭을 새기는 부분)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으나, 정작 제액 부분은 글자가 없이 빈 채로 있다. 제액의 양쪽에는 두 마리 용이 큰 구슬을 놓고 다투는 형상이 새겨져 있다.

1차 수정

이 석조물은 태자사의 옛터에서 발견된 것으로, 고승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탑비의 일부이다. 거북 모양의 받침돌을 귀부라 하고, 용의 형상을 새긴 네모난 머릿돌을 이수라 한다.

비문이 새겨진 몸돌이 사라졌기 때문에, 언제 누구를 위해 세워진 탑비인지는 알 수 없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통일신라시대의 승려 낭공대사 행적(郎空大師 行寂, 832~916)의 탑비라고도 한다.

귀부의 머리 부분은 앞부분이 깨져 없어졌고, 거북의 네 발은 네모난 바닥돌 위에 새겨져 있다. 이수에는 큰 보주를 두고 다투는 두 마리의 용이 새겨져 있다. 중앙의 네모난 부분은 탑비의 이름을 새기는 곳인데, 글자가 없이 빈 채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