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제주 삼성혈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2022년 국문집필

기존 국문

삼성혈은 제주도 사람의 전설적인 발상지이다. 삼신인(三神人) [고을나(高乙那), 양을나(良乙那), 부을나(夫乙那)]이 이곳에서 태어나 수렵생활을 하다가 오곡(五穀)의 종자(種子)와 가축(家畜)을 가지고 온 벽랑국(碧浪國) 3공주를 맞이하면서부터 농경생활이 비롯되었으며, 탐라왕국(耽羅王國)으로 발전하였다고 전한다.

조선조(朝鮮朝) 중종(中宗) 21년(1526) 목사(牧使) 이수동(李壽童)이 처음 표단(標壇)과 홍문(紅門)을 세우고 담장을 쌓아 춘추봉제(春秋奉祭)하기 시작한 이래 역대 목사에 의하여 성역화(聖域化)사업이 이루어졌고 현재에도 매년 춘᠊추제 및 건시대제(乾始大祭)를 지내고 있다.

수정 국문

삼성혈은 탐라국을 세운 세 신인(神人)인 고을나(高乙那), 양을나(良乙那), 부을나(夫乙那)가 태어난 곳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각각 제주고씨, 제주양씨, 제주부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삼성혈이라는 이름은 ‘세 성씨가 태어난 구멍’이라는 뜻이다.

전설에 따르면 수천 년 전 제주에 아직 사람이 없었을 때, 한라산이 신령스러운 기운을 내려 세 명의 신인을 동시에 태어나게 했다고 한다. 삼성혈에 품(品)자 모양으로 있는 3개의 구멍은 이때 신인들이 땅에서 솟아나면서 생긴 것이다. 세 신인은 사냥을 하여 가죽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사이좋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동쪽 바다에서 흘러온 자줏빛 나무상자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 안에는 벽랑국에서 온 세 명의 공주가 있었다. 세 신인은 공주들과 각각 결혼하였고, 공주들이 가져온 다섯 곡식의 씨와 송아지, 망아지를 가지고 농사를 짓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후 자손이 번성하고 마을을 이루어 탐라국을 세우게 되었으며, 고려 숙종 10년(1105) 고려의 행정구역으로 편입될 때까지 왕국을 유지하였다.

조선시대인 중종 21년(1526) 제주 목사 이수동(李壽童)이 삼성혈 주위에 돌 울타리를 쌓고 제단과 비석을 세우면서, 삼성혈에서 제사를 지내고 주변 지역을 성역화하기 시작하였다. 숙종 24년(1698)에는 삼성혈 동쪽에 삼을나묘(지금의 삼성전)를 세워 세 신인의 위패를 모셨고, 순조 27년(1827) 전사청을 세우는 등 계속해서 성역화 작업이 이루어졌다. 현재 매년 4월 10일과 10월 10일에 고씨, 양씨, 부씨 후손들이 모여 삼성전에서 춘추대제*를 지내고, 헌관은 세 성씨가 돌아가며 맡는다. 매년 12월 10일에는 삼성혈 제단에서 제주도민제로 건시대제*가 열린다.

  • 춘추대제(春秋大祭):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를 기리기 위해 봄과 가을에 올리는 제의.
  • 건시대제(乾始大祭): 탐라의 개국을 기념하고 제주도민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올리는 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