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이우당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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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한중연 안내문안 작성

기존 국문

이 집은 안동권씨(安東權氏) 부정공파(副正公派) 임하지파(臨河之派) 이우당(二愚堂) 권환(權寏)의 종택으로 조선 인조(仁祖) 18년(1640)에 건립한 것이다.

‘口’자형 안채와 사랑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는 사랑채 앞에 대문 간채와 중문간채가 있었던 집이다. 사랑채는 안채의 동북쪽에 위치하여 책방과 통하게 되어 있다. ‘口’자형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6칸이다. 대청을 중심으로 양쪽에 방이 있는데, 왼쪽이 안방이고 그 앞에 부엌, 아랫방 아랫부엌이 있다. 터의 모양을 따라 북동향으로 지었으나 대청을 북쪽에 두어 여름에 시원하게, 온돌은 남쪽에 아궁이를 두어 겨울에 따뜻하게 하였다. 사당은 본채의 남쪽에 위치하며 담장과 대문이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이 집은 조선 중기의 문신 이우당 권환(二愚堂 權寏, 1580~1651)의 종택이다. 1640년(인조 18) 권환의 아들 권익시(權益時, 1617~1663)가 지었다.

권환은 안동권씨 부정공파(副正公波)의 파조 권통의(權通義)의 13대 손이다. 1610년(광해군 2)에 생원시에 급제했으며,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나자 의병을 일으켰으나 강화가 성립되어 전투를 벌이지 못했다. 1639년(인조 17) 60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여 예부좌랑과 문경 인근의 유곡도(幽谷道) 찰방, 강원도사 등을 지냈다. 권환의 아버지 권대기(權大器 1523~1587)는 이황(李滉, 1501~1570)의 문인이며, 권환은 이황의 고제 정구(寒岡 鄭逑, 1543~1620)에게 배웠다.

이우당종택은 사랑채와 안채, 사당으로 구성되었다. 안채는 정면 5칸·측면 5칸의 기와집으로 ‘ㅁ’자형이다. 6칸의 대청에는 우물 정(井)자 구조의 우물마루를 깔았다.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1773년(영조 49) 집을 수리하면서 높은 기단 위에 지은 것이다. 안채 왼쪽 뒤편에는 사당이 있으며 권환(※ 확인 예정)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이우당종택은 북동향인데, 이는 곡성산이 마을 전체를 동·남·서쪽 세 방향에서 둘러싸고 있어 북쪽 방향으로만 지형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1차 수정

이 집은 조선 중기의 문신 이우당 권환(二愚堂 權寏, 1580~1651) 가문의 종택이다. 종택은 한 가문의 맏이가 대대로 살아온 집을 말한다.

권환은 1610년에 생원시에 급제했으며,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났을 때 의병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1639년 60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지냈고, 관직 생활을 하는 중에도 지역 선비들을 교육하는 데 힘썼다.

이우당종택은 권환의 아들 권익시(權益時, 1617~1663)가 1640년에 지었으며, 1773년에 사랑채를 추가로 지었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들은 안채, 사랑채, 사당으로, 모두 1963년과 1994년에 보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