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이규채 선생 행적비
2020 국문
초고
포천 출신의 독립지사 이규채(1866-1948) 선생의 행적비이다. 이 비에는 선생의 평생 행적이 기재되어 있다. 선생은 본관이 경주, 포천 출생이며 일명 규보(圭輔)라고도 불렸다. 3·1운동 후 창신서화연구회를 창설하여 비밀리에 항일투쟁을 전개했고, 상해로 망명한 뒤 1924년 상해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출되고 1928년 김구 선생 등과 함께 한국독립당 결성에 참여하였다. 1935년 상해 일본영사관 왜경에게 체포,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1940년 가출옥하였다. 8·15 민족 해방 후에는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벌였다. 1963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단장이 수여되었다. 앞면은 ‘독립투사 정우 이규채 선생 행적비“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의 비문은 원홍균이 짓고 김용진이 글씨를 썼다.
수정
포천 출신의 독립지사 이규채(李圭彩, 1866-1948)의 평생 행적을 기록한 비이다. 조국 광복에 바친 공로와 독립투쟁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82년 건립하였다.
이규채는 포천에서 출생했으며, 이규보(李圭輔)라는 다른 이름도 있다. 3·1운동 후 창신서화연구회를 창설하여 비밀리에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상해로 망명한 뒤 1924년 상해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출되고, 1928년 김구(金九, 1876~1949) 등과 함께 한국독립당 결성에 참여하였다. 1935년 상해에서 왜경에게 체포되어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1940년 가출옥되었다. 광복 후에는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1963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단장이 수여되었다.
비의 앞면은 ‘독립투사 정우 이규채 선생 행적비’라고 새겼으며, 뒷면의 비문은 원홍균이 짓고 김용진이 글씨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