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완주 안심사 금강계단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2020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기존 국문

안심사 금강 계단은 부처의 치아사리(齒牙舍利) 1과와 의습(衣襲) 10벌을 봉안하려고 17세기 중반인 1759년 쯤에 조성된 구조물이다. 석조 계단 중앙의 석종형 부도(높이 176cm)와 네 구의 신장상(높이 110cm~133cm), 그리고 넓은 기단을 형성한 방단의 석고 조형물들은 그 조형 수법이 탁월하여 새로운 미술사적 연구 자료로 평가된다. 특히, 단층 계단 면석의 연화문과 격자문양 등의 조각은 장식성과 섬세함이 부각되어 매우 우수한 조형미를 표현하고 있으며, 신장상의 조각도 갑옷과 신체의 세부 표현에서 매우 세련되고 풍부한 양감을 표현하고 있다. 이 석조 계단은 시기적으로 1613년의 대구 용연사 석조 계단과 관련이 싶으나 조각 기법은 이를 능가하며 조선 중기 불교 조각상을 이해하고 한국 불사리 석조 계단의 계보를 파악하는 데 필요한 귀중한 자료이다.

수정 국문

초고

금강계단은 부처님이 정한 계율에 따를 것을 서약하는 수계(受戒) 의식을 행했던 장소이다. 중앙에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종 모양의 탑이 있으며, 부처님이 늘 이곳에 계신다는 것을 상징한다.

안심사 금강계단은 안심사 사적비가 세워진 1759년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연화문과 격자 문양 등으로 장식한 사각 기단을 조성하였으며, 기단 중앙에 팔각형의 받침돌을 두고 그 위에 종 모양의 부도를 설치하였다. 부도 안에는 석가모니 부처의 치아 사리 1과와 의습 10점이 봉안되어 있으며, 이는 사적비에 기록된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다.

기단의 네 모서리에는 갑옷 차림에 투구를 쓰고 칼집을 허리에 찬 채 두 손을 앞으로 모아 칼을 잡고 있는 무장한 장군 형상을 하고 있는 신장상을 세웠다.

종형 부도 북쪽에는 크기가 작은 부도 1기가 더 있고, 부도 북동쪽 신장상 근처에는 배례석으로 추정되는 커다란 판석이 놓여 있다.

이 석조 계단은 시기적으로 1613년의 대구 용연사 석조 계단과 관련이 싶으나 조각 기법은 이를 능가하며 조선 중기 불교 조각상을 이해하고 한국 불사리 석조 계단의 계보를 파악하는 데 필요한 귀중한 자료이다.

  • 추가로 서 있는 부도에 대한 자료 추가 조사 예정
  • 1613년에 세워진 대구 용연사 석조계단(보물 제539호)은 ‘안심사계단’과 시기적으로도 가장 가까울 뿐 아니라, 신장상의 인물 형태와 세부 조각수법이 서로 근접하여 ‘안심사계단’의 성격 및 조성시기를 가늠하는데 좋은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출처:http://www.e-minwon.go.kr:8072/lfmn/CpmsmastR___01.do?p1=1123514340000&RADIO_NO=0 - 기존 문안에서 설명한 문화재의 가치와 동일한 내용. 원고의 마무리 부분에 해당 내용을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 검토 필요함.)
  • 안심사는 638년 신라의 승려 자장율사에 의에 창건되었다고도 전하나, 창건 시기는 확실하지 않다. 한국전쟁 전까지 30여 채의 전각과 13개의 암자가 있었던 큰 사찰이었으나 전쟁으로 대부분의 전각과 소장되어 있던 경판 전부가 소실되었다.

1차 수정

금강계단은 부처님이 정한 계율에 따를 것을 서약하는 수계(受戒) 의식을 행했던 장소이다. 중앙에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종 모양의 탑이 있으며, 부처님이 늘 이곳에 계신다는 것을 상징한다.

안심사 금강계단은 안심사 사적비가 세워진 1759년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연화문과 격자 문양 등으로 장식한 사각 기단을 조성하였으며, 기단 중앙에 팔각형의 받침돌을 두고 그 위에 종 모양의 부도를 설치하였다. 부도 안에는 석가모니 부처의 치아 사리 1과와 의습 10점이 봉안되어 있다.

기단의 네 모서리에는 신장상을 세웠는데, 갑옷 차림에 투구를 쓰고 칼로 무장한 장군 형상을 하고 있다. 종 모양의 부도 북쪽에는 크기가 작은 부도가 1기 더 있고, 부도 북동쪽 신장상 근처에는 배례석으로 추정되는 커다란 판석이 놓여있다.

1613년에 세워진 대구 용연사 석조계단(보물 제539호)과 시기적으로도 가장 가까울 뿐 아니라, 신장상의 인물 형태와 세부 조각수법이 서로 비슷하여, 이 시기에 만들어진 계단의 성격과 조성방법등을 가늠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1
    • 문화재 명칭에 맞고 사실 관계에 비교적 부합된다.
    • 용어사용도 비교적 절적하다.
    • “북쪽에는 크기가 작은 부도가 1기 더 있고” → 북쪽에는 크기가 작은 부도 1기가 있고
    • “1613년에 세워진 대구 용연사 석조계단(보물 제539호)과 시기적으로도 가장 가까울 뿐 아니라, 신장상의 인물 형태와 세부 조각수법이 서로 비슷하여, 이 시기에 만들어진 계단의 성격과 조성방법등을 가늠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1613년에 세워진 대구 용연사 석조계단(보물 제539호)과 제작 시기가 가깝고, 신장상의 인물 형태와 세부 조각수법이 비슷하여, 이 시기에 만들어진 계단의 성격과 조성방법 등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이다.
  2. 분야별 자문위원2
    • 금강계단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계율에 따를 것을 서약하는 수계(受戒) 의식이 이루어진 장소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곳이다. 중앙에 불사리를 모신 종 모양의 탑이 있어, 부처님이 항상 이곳에 계신다는 것을 상징한다.
    • 안심사 금강계단은 <안심사사적비(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10호)>의 비문을 통해 1759년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연화문과 격자 문양 등으로 장식한 사각 기단을 조성하였으며, 기단 중앙에 팔각형의 받침돌을 두고 그 위에 종 모양의 부도를 설치하였다. 부도 안에는 석가모니의 치아사리(齒牙舍利) 1과와 의습(衣襲) 10점이 봉안되어 있다.
    • 기단의 네 모서리에는 계단을 지키는 신장상이 있는데, 갑옷 차림에 투구를 쓰고 칼로 무장한 장군 형상을 하고 있다. 종 모양의 부도 북쪽에는 크기가 작은 부도가 1기 더 있으며, 부도 북동쪽 신장상 근처에는 배례석으로 추정되는 커다란 판석이 놓여있다.
    • 석조계단은 전국에 통도사, 금산사 등 대표적인 계단이 있으나 안심사 금강계단은 1613년에 세워진 대구 용연사 석조계단(보물 제539호)과 시기적으로도 가장 유사하다. 신장상의 인물 형태와 세부 조각 수법이 서로 비슷하여,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계단의 특징과 조성 방법 등을 가늠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3.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부도 안에는 석가모니 부처의 치아사리(齒牙舍利) 1과와 의습(衣襲) 10벌이 봉안되어 있다.
    • 기단의 네 모서리에는 갑옷 차림에 투구를 쓰고 칼로 무장한 장군 형상을 한 신장상을 세웠다.

2차 수정

금강계단은 부처님이 정한 계율에 따를 것을 서약하는 수계(受戒) 의식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중앙에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종 모양의 부도가 있으며, 부처님이 늘 이곳에 계신다는 것을 상징한다.

안심사 금강계단은 1759년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연화문과 격자 문양 등으로 장식한 사각 기단을 조성하였으며, 기단 중앙에 팔각형의 받침돌을 두고 그 위에 종 모양의 탑을 설치하였다. 탑 안에는 석가모니 부처의 치아사리(齒牙舍利) 1과와 의습(衣襲) 10점이 봉안되어 있다.

기단의 네 모서리에는 계단을 지키는 신장상이 있는데, 갑옷 차림에 투구를 쓰고 칼로 무장한 장군 형상을 하고 있다. 종 모양의 부도 북쪽에는 크기가 작은 부도가 1기 더 있으며, 북동쪽 신장상 근처에는 배례석으로 추정되는 커다란 판석이 놓여 있다.

안심사 금강계단은 1613년에 세워진 대구 용연사 석조계단(보물 제539호)과 제작 시기가 가깝고, 신장상의 인물 형태와 세부 조각 수법이 비슷하여,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계단의 특징과 조성 방법 등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