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완주 송광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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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이 건물은 송광사의 중심 법당으로 신라 말기에 보조(普照) 스님이 처음 지었다고 전한다. 원래 이층 법당이었는데 조선 철종 8년(1857)에 제봉스님이 일층 건물로 다시 세웠다. 대웅전 천장에는 부처의 진리를 찬탄하며 부처에게 음성과 춤 공양(供養)을 올리는 11점의 비천상이 그려져 있다. 다른 사찰의 벽화와 달리 채색과 선이 완벽하게 살아있으며, 한국민중예술과 불교 미술이 함께 어우러진 한국 최고의 아름다운 천장 벽화이다. 예향의 고장인 전라북도의 소리와 춤의 정수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벽화이기도 한다.

수정 국문

초고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곳으로, 절의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대웅’이라는 이름은 ‘세상을 밝히는 위대한 영웅을 모시는 전각’이라는 뜻이다.

완주 송광사 대웅전은 1636년 벽암대사가 절을 중창하는 과정에서 이층 전각으로 지었다고 전하며, 건물이 기울어져 1857년에 제봉선사가 단층으로 고쳐지었다고 한다.

대웅전의 네 면에는 각기 다른 편액이 걸려 있다. 정면의 ‘대웅전’ 편액은 선조의 여덟째 아들이자 명필로 이름난 의창군 이광(1589~1645)이 1636년 구례 화엄사 대웅전 편액에 써 준 글씨를 본딴 것이다. 나머지 면에는 각각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는 뜻의 무량수전, 약사여래를 보신 전각이라는 뜻의 유리광전, 송광사가 법화정토임을 밝히기 위한 보광명전이라는 편액이 있다.

건물 외벽에 있는 그림은 내부 천장에 그려진 비천도를 모사한 것이다. 지붕의 네 추녀 밑에는 용머리 장식이 달린 보조기둥을 두었다.

대웅전 내부 천장에 있는 11점의 비천무인도는 부처를 찬양하며 노래와 춤을 공양하는 비천상들을 화려한 색감으로 표현하였다. 당대의 무용 복식이나 연희되었던 춤의 형태 등을 알아보는 데에 도움이 된다.

불단에는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아미타여래와 약사여래를 배치한 소조삼존상(보물 제 1274호)을 모셨다.

삼존불상 사이에 왕과 왕비, 세자의 만수무강을 축원하기 위해 만든 ‘완주 송광사 목조삼전패(三殿牌)(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70호)’가 있다. 이것은 17세기 중반에 만들어졌고 1792년 수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병자호란이 끝나고 송광사를 중창할 당시 인조와 왕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왕자들의 안녕을 빌며 조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 「대웅전중건상량문(大雄殿重建上樑文)」[1857]에 의하면 1707년에 삼건(三建), 1814년에 사창(四創), 1857년에 오건(五建)되는 등 수리 공사가 계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제봉 선사의 중수 시기를 1814년 또는 1857년으로 제시하고 있어 둘 다 밝혀 적어야 할 것인지 고민 필요.
  • 대웅전 연혁 추가 설명? -> 1638년 후불화를 조성하면서 정문을 건립하는 불사가 이루어졌다고 기록되었다. 나한상을 추가 조성해서 대웅전에 봉안한 것은 1656년(효종 7)이며 이때로 개창 불사가 끝났다.
  • 송광사 연혁을 적을 것인지..? ('창건' 정보에 모순이 있음.)-> 송광사는 통일신라 경문왕 7년(867)에 도의가 처음으로 세운 절이라는 설이 있다. 그 뒤 폐허가 되어가던 것을 고려 중기의 고승 보조국사가 제자를 시켜서 그 자리에 절을 지으려고 했지만, 오랫동안 짓지 못하다가 광해군 14년(1622) 응호·승명·운정·덕림·득순·홍신 등이 지었다고 한다. 이후로도 인조 14년(1636)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절의 확장공사가 있었고 큰 절로 번창하였다. / 완주 송광사는 17세기 초반에 새롭게 창건된 사찰로, 유교 중심의 조선 사회에서 왕실의 후원 아래 창건된 유일한 사찰이다. 창건에 대해 인조의 숙부 의창군과 고모부인 신익성이 개창 비문을 짓고 당시 불교의 중건 중창에 큰 역할을 한 벽암대사와 그의 제자들이 동참해서 불사 진행을 이루었다.

1차 수정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곳으로, 절의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대웅전은 ‘세상을 밝히는 위대한 영웅을 모시는 전각’이라는 뜻이다.

완주 송광사 대웅전은 1636년 벽암대사가 절을 중창하는 과정에서 이층 전각으로 지었다고 전하며, 건물이 기울어져 1857년에 제봉선사가 단층으로 고쳐지었다고 한다.

대웅전의 네 면에는 각기 다른 편액이 걸려 있다. 정면의 ‘대웅전’ 편액은 선조의 여덟째 아들이자 명필로 이름난 의창군 이광(1589~1645)이 1636년 구례 화엄사 대웅전 편액에 써 준 글씨를 본딴 것이다. 나머지 면에는 각각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는 뜻의 무량수전, 약사여래를 보신 전각이라는 뜻의 유리광전, 송광사가 법화정토임을 밝히기 위한 보광명전이라는 편액이 있다.

대웅전 내부 천장에 있는 11점의 비천무인도는 부처를 찬양하며 노래와 춤을 공양하는 비천상들을 화려한 색감으로 표현하였다. 당대의 무용 복식이나 연희되었던 춤의 형태 등을 알아보는 데에 도움이 된다.

불단에는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아미타여래와 약사여래를 배치한 소조삼존상(보물 제 1274호)을 모셨다. 삼존불상 사이에는 왕과 왕비, 세자의 만수무강을 축원하기 위해 만든 삼전패(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70호)가 있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1
    • 단층으로 고쳐지은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므로, 19세기 중반이라 설명해야 한다.
    • 네면에 각기 다른 편액이 걸리게 된 시기는 2015년 5월20일 이후이다. 따라서 이전에는 <대웅전>편액 외에는 없었으므로, 이 시기에 네면에 각기 다른 편액이 걸리게 된 이유가 설명되어야 한다.
    • 소조삼존상, 삼존불상이 공존하고 있는데, ‘소조삼존불상’으로 통일하는게 타당해 보인다.
    • “19세기 중반에 단층으로 고쳐지어, 건물크기에 비해 불상이 커서 건물이 비좁은 느낌”이라는 설명이 있어야 한다.
  2. 분야별 자문위원2
    • 송광사 대웅전은 1636년에 만들어진 <송광사개창비(松廣寺開創碑)>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보조국사 체징이 점지해 두었던 터에 1622년부터 불사를 시작하여 7칸의 이층 대웅전을 건립했다고 한다.
    •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중형 건물로 팔작지붕 건물이다. 「송광사대웅전중건상량문(1857년)」에 따르면, 1622년 처음 지어졌을 때는 이층 건물이었으나, 1857년 건물이 기울어져 제봉선사의 주도 아래 49일만에 허물고 53명의 장인이 7개월만에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하였다고 한다.
    • 대웅전 내부에는 장방형의 불탁 위로 1641년에 조성된 소조석가여래불좌상(보물 제 1274호)과 약사여래, 아미타여래를 모셨으며, 삼존 불상 사이로 1792년 제작된 조선후기 최대 규모의 목조삼전패(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70호)가 있다.
    • 대웅전 천장에는 부처에게 음성과 춤 공양(供養)을 올리는 11점의 주악비천도가 천장반자에 그려져 있으며, 포벽에는 부처의 제자들을 표현한 나한도 32점이 있다. 다른 사찰의 벽화와 달리 채색과 선이 완벽하게 살아있으며, 화보에 등장하는 다양한 표정과 유려함이 돋보여 예향의 고장인 전라북도의 소리와 춤의 정수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벽화이다.
    • 대웅전 네 곳에는 각기 다른 편액이 걸려 있는데, 중앙 ‘대웅전’ 현판 글씨는 선조의 아들인 의창군(義昌君) 이광(1589~1645)의 작품이다. 나머지 네 면에는 각각 아미타불을 모신 의미의 무량수전, 약사여래를 모신 전각이라는 유리광전, 송광사가 법화정토임을 밝히기 위한 보광명전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2차 수정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곳으로, 절의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대웅전은 ‘세상을 밝히는 위대한 영웅을 모시는 전각’이라는 뜻이다.

송광사 대웅전은 1622년 이층 건물로 지었으나, 1857년 건물이 기울어져 제봉선사의 주도 아래 49일 만에 허물고 53명의 장인이 7개월 만에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하였다고 한다. 정면의 대웅전 편액은 선조의 여덟째 아들이자 명필로 이름난 의창군 이광(義昌君 李珖, 1589~1645)이 1636년 구례 화엄사 대웅전 편액에 써 준 글씨를 본 따 쓴 것이다.

내부 불단에는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아미타여래와 약사여래를 배치한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보물 제1274호)을 모셨다. 삼불좌상 사이에는 1792년 왕과 왕비, 세자의 만수무강을 축원하기 위해 만든 삼전패(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70호)가 있다.

천장에 있는 11점의 비천무인도에는 부처를 찬양하며 노래와 춤을 공양하는 비천상들을 화려한 색감으로 표현하였다. 채색과 선이 완벽하게 살아있으며, 당대의 무용 복식이나 연희되었던 춤의 형태 등을 알아보는 데에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