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안동 흥해배씨 임연재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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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한중연 안내문안 작성

기존 국문

이 건물은 조선 명종(明宗) 13년(1558) 황해도 관찰사를 지낸 임연재(臨淵齋) 배삼익(裵三益, 1534~1588)이 세운 것으로 몸채, 금역당, 사당 등으로 되어 있다. 금역당(琴易堂) 배용길(裵龍吉, 1556~1609)은 임연재의 아들로 충청도 도사(都事)를 지냈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一’자형이며, 안방이 안마당을 향하고 있어 전망이 잘 고려된 배치형식이다. 안방을 북쪽에 두지 않고 남쪽에 둔 것은 특이한 경우이다. 별당인 금역당의 남쪽 4칸은 온돌방이고 북쪽 4칸은 대청으로 되어 있다. 대청에 있는 「임연재」, 「도목촌」이라는 현판 글씨는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친필이라고 한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맞배집이다. 안동댐 건설로 인하여 1973년 예안면 도목동에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수정 국문

초고

이 집은 임연재 가문의 종택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배삼익(裵三益, 1534~1588)이 1558년 지은 집이다. 종택은 한 가문이 대대로 살아온 집이고, 임연재는 배삼익의 호이다.

배삼익은 퇴계 이황의 제자로 1564년 문과에 급제한 수재이다. 명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기도 했고 황해도 관찰사를 지내기도 했다. 관찰사 시절 흉년을 구하기 위해 병든 몸으로 열심히 일하다 돌아오는 길에 사망하였다. 글씨를 잘 쓰기로 유명했다.

현재 몸채와 금역당, 사당 등 3개의 건물이 남아 있다. 별채인 금역당은 배삼익의 아들인 배용길(裵龍吉, 1556~1609)의 호에서 따온 건물이다. 금역당 안에 ‘임연재 도목촌(道木村)’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이 현판은 퇴계 이황이 직접 쓴 글씨이다.

원래 위치는 안동시 월곡면 도목리에 있었으나 1974년 안동댐이 건설되며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1차 수정

이 집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배삼익(裵三益, 1534~1588, 호: 임연재) 가문의 종택으로, 1558년에 지어졌다. 종택은 한 가문의 맏이가 대대로 살아온 집을 말한다. 임연재종택은 원래 월곡면 도목리에 있었으나 안동댐을 건설하면서 1973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배삼익은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2~1570년)의 제자로 1564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명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기도 했고 황해도 관찰사를 지내기도 했다. 관찰사 시절 흉년을 구하기 위해 병든 몸으로 열심히 일하다 돌아오는 길에 사망하였다. 글씨를 잘 쓰기로 유명했다.

현재 종택에는 안채와 별당인 금역당, 사당 등 3개의 건물이 남아 있다. 금역당은 배삼익의 아들인 배용길(裵龍吉, 1556~1609)의 호에서 따온 건물이다. 금역당 안에 ‘임연재’, ‘도목촌(桃木村)’이란 현판이 걸려 있는데, 모두 이황이 직접 쓴 글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