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안동 하회마을 옥연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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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기존 국문

이 정사는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이 선조 19년(1586)에 지은 것이다. 조용히 거처할 곳으로 부용대 기슭에 터를 잡은 후 재력이 부족해 짓지 못하다가, 승려 탄홍(誕弘)이 건축을 주관하고 물자를 지원해 주어 10년에 걸쳐 완성하였다. 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강물이 이곳에 이르러 깊어지는데, 깨끗하고 맑은 물빛이 옥과 같아서 정사의 으름도 ‘옥연(玉淵)’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곳은 류성룡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임진왜란에 대해 기록한 징비록(懲毖錄, 국보 제132호)을 쓴 장소로도 그 의미가 깊다.

2020 초고

옥연정사는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이 만년에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지었다. 관직에서 물러난 류성룡이 임진왜란 당시의 경험을 기록한 『징비록(懲毖錄, 국보 제132호)』을 쓴 장소이기도 하다.

류성룡은 조용히 거처할 곳을 마련하기 위해, 하회마을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갈 수 있는 부용대 기슭에 터를 잡았다. 1576년에 집을 짓기 시작하였지만 가난하여 공사를 계속하지 못하다가,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승려 탄홍(誕弘)의 도움으로 1586년 마침내 옥연정사를 완성하였다. ‘옥연(玉淵)’이라는 이름은 부용대와 하회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깨끗하고 맑은 물빛이 마치 옥과 같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옥연정사는 대문채, 안채, 사랑채, 별당채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부엌이 가운데에 있고 양옆에 온돌방을 둔 독특한 구조이다. 별당채는 류성룡이 『징비록』을 집필한 서재이고, 맨 안쪽의 사랑채는 류성룡이 서당으로 사용하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