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안동 죽암서실
2022년 국문집필
기존 국문
기존 문안 없음.
수정 국문
초고
이곳은 풍산 김씨 14대손 김대현(金大賢, 1553-1602)이 학문을 수양하고 자손들을 가르치기 위해 1577년에 처음 지었다.
김대현도 이곳에서 공부한 끝에 1582년 과거에 합격했다고 하며, 이후에도 문중 자녀들의 독서 및 강학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초가로 지어졌던 첫 건물은 세월이 흘러 사라졌고, 1822년 김대현의 후손들이 기와 지붕을 올려 다시 지었다고 한다.
건물은 중앙에 마루가 있고 좌우에 온돌방을 배치한 구조이이며, 전면은 난간을 두른 누마루처럼 꾸몄다.
이곳은 1917년에 창설된 오릉학술강습소의 교실로 쓰이기도 하였다. 오릉학술강습소는 김응섭과 김병필 등 풍산 김씨 가문의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근대교육기관으로, 보통과정(지금의 초등과정)을 가르쳤던 것으로 추측된다.
- 현재 건물이 언제 지어진 것인지 한 번 더 확인할 필요 있음(1822년 중수 이후 개보수 기록 검색 어려움)
1차 수정
죽암서실은 조선시대의 학자인 김대현(金大賢, 1553~1602)이 자연을 벗 삼아 학문을 닦기 위해 선조 10년(1577)에 세웠다. ‘죽암’이라는 이름은 김대현이 젊은 시절에 사용하던 호에서 따왔다. 죽암서실이 위치한 오미리는 풍산김씨가 대대로 살고 있는 마을이다. 김대현이 선조 15년(1582) 생원시에 합격한 이후 죽암서실은 문중 후손들을 가르치기 위한 강학 공간으로 주로 쓰였다.
처음 김대현이 지었던 초가 건물은 세월이 흘러 사라졌고, 순조 22년(1822) 후손들이 기와지붕을 올려 다시 지었다. 지금의 건물은 ****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마루를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을 배치하였으며, 앞면은 난간을 둘러 누마루처럼 꾸몄다.
죽암서실은 1917년에 설립된 오릉학술강습소의 교실로 쓰이기도 하였다. 오릉학술강습소는 풍산김씨 가문의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운영한 근대식 학교로, 전통 한학교육과 신식교육을 겸하여 지역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후 오릉학술강습소는 도림강당과 화수당으로 옮겼고 1925년까지 운영되었다.
- 현재 건물이 1822년에 지은 그대로인지 확인이 안 됩니다. 이후 재건이나 개보수가 있었다면 해당 시기를 밝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안동시 피드백
- 1822년 중건한 건물이 현존건물이며 1773년에 당초 초가를 기와집으로 현재건물규모로 재건을 하였었는데 수해로 1822년 현건물이 중건되었읍니다.
- 오릉학술강습소의 설립일은 1917년이 아니고 1919년입니다.
- 죽암서실은 일제와 을사늑약후 단식 순국한 죽포 김순흠 열사와 일본천황을 저격하려고 이중교에서 폭탄을 투척하고 체포 투옥되어 고문 끝에 사망한 김지섭의사를 비롯한 다섯분의 일제침략에 목숨으로 저항 순국한 독립투사가 소시에 공부하던 기념비적인 건물임을 명시해야 문화재적 가치와 교육적 가치가 더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