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안동김씨 태장재사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2021년 국문집필

기존 국문

이 건물은 안동김씨 시조인 태사(太師) 김선평(金宣平)의 묘단(墓壇)을 지키고 제사를 받들기 위한 곳으로 조선 영조(英祖) 26년(1750)에 건립하였다. ‘口’자형 재사와 ‘一’자형 이상루(履霜樓)와 ‘ㄷ’자형 관리사로 구성되어 있다. 제사에 쓰이는 음식을 준비하는 곳, 외지에서 오는 후손들이 침식하는 여러 개의 방, 묘제 후에 음복(飮福)과 문중회의를 여는 이상루가 있다. 이상루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누각이다. 이 재사는 간결하고 검소하며 이 지역 재사 가운데서도 규모가 크고 각 부분이 용도에 따라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 매년 음력 10월 10일에 묘제를 지낸다.

수정 국문

초고

이곳은 신(新)안동김씨의 시조 김선평(金宣平)의 묘단을 관리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세워졌다.

김선평은 고창(안동의 옛 지명) 지역의 성주였는데, 고려 태조 왕건(877-943)과 후백제의 견훤이 930년에 이 지역에서 전투를 할 때 고려의 편에 서서 왕건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곳은 조선 영조 26년(1750)에 처음 지어졌고, 정조 17년(1793)에 다시 지어진 후 여러 차례 보수되었다. 재사와 누각, 관리사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매년 10월 10일에 후손들이 모여 제사를 지낸다.

태장재사는 경사면 위에 높은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세워졌으며, 재사 건물은 경내에서 가장 안쪽 높은 곳에 세워져 있다. 이곳은 제수를 준비하는 유사실, 제관들이 사용하는 참제원실과 전사청 등 제사를 준비하기 위한 공간과 외지에 사는 후손들이 모였을 때 사용하는 여러 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공간마다 나무판을 걸어 그 용도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건물 전체에 난간을 두른 쪽마루가 둘러져 있으며, 처마 끝에는 빛이나 비를 막기 위해 차양을 설치했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이상루(履霜樓)는 2층으로 된 누각이다. 이곳은 제사를 마친 후 음식을 먹거나 문중 회의를 여는 장소로 사용된다. 2층은 창호로 된 문을 달고 밖으로 쪽마루를 돌렸으며, 계단이 있는 자리를 제외한 모든 면에 난간을 달았다. 1층 바깥쪽에는 나무판으로 된 벽을 세웠다.

  • 이상루를 향해 섰을 때 왼쪽에 보이는 곳이 관리사 건물이다. 현재 재사로의 출입은 관리사 방향을 통해 가능하다. 기록에 따르면 이상루를 중건하면서 재사의 오른편에 주사 8칸을 지었다고 되어 있다. 원래 재사에 주사가 있었지만 무너져 버렸으므로 다시 자리를 옮겨 새로 지었다는 것이다.
  • 식수난과 질병이 겹치자 사헌부지평 양근(養根)이 승려의 집을 철거하고 지금의 위치에 터를 닦아 1793년(정조 17)에 28칸으로 중건하고 익실(翼室)과 문루(門樓)를 옮겨 지었다. 1913년 4월 주사를 확장하여 10칸으로 중건하였고, 1960년 풍수해가 나자 보수하였다.
  • 2013년에 대대적인 수리를 거쳐 지금은 모든 건물에서 한옥 체험이 가능하다.

1차 수정

태장재사는 신(新)안동김씨의 시조 김선평(金宣平, 901~?)의 묘단을 관리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세워졌다. 영조 26년(1750)에 처음 지어졌고, 정조 17년(1793)에 다시 지어진 후 여러 차례 보수되었다.

김선평은 고창(안동의 옛 지명) 지역의 성주였다. 930년 고려 태조 왕건(王建, 918~943 재위)과 후백제의 견훤(甄萱, 867~936)이 고창에서 전투를 벌이자, 김선평은 권행(權幸), 장정필(張貞弼, 888~?)과 함께 고려가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도왔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고려는 936년 마침내 후삼국을 통일하였고, 왕건은 세 사람을 공신으로 추대하며 태사(太師)의 벼슬을 하사하였다. 또한 고창에 ‘동쪽을 평안하게 하다’라는 뜻의 ‘안동’이라는 새 이름을 내렸다.

태장재사는 재사, 누각인 이상루(履霜樓), 관리사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매년 10월 10일에 후손들이 모여 제사를 지낸다. 재사 건물은 경내에서 가장 안쪽 높은 곳에 세워져 있다. 제수를 준비하는 유사실, 제관들이 사용하는 참제원실과 전사청 등 제사를 준비하기 위한 공간과 외지에 사는 후손들이 모였을 때 사용하는 여러 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상루는 제사를 마친 후 음식을 나누어 먹거나 문중 회의를 여는 장소로 사용된다. 위층은 창호로 된 문을 달고 밖으로 쪽마루를 돌렸으며, 계단이 있는 자리를 제외한 모든 면에 난간을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