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성동리산성(태봉산성)
2020 국문
초고
성동리산성은 포천시 영중면 성동리에 있는 태봉산에 쌓은 산성이다. ‘태봉성’ 혹은 ‘태봉산성’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첫 번째는 궁예가 911년에 세운 나라 이름 ‘태봉(泰封)’을 뜻한다는 것이다. 궁예가 왕건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쫓길 때 이 산성을 급히 쌓았다는 전설이 있어 태봉성이라 한다. 두 번째 설은, ‘태(胎)를 묻은 곳’이라는 의미를 붙여 ‘태봉산성(胎封山城)’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실제 이곳에 조선 순조의 아들이며 현종의 아버지인 익종(효명세자)의 태실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산성은 포천에서 철원 방면의 남북 교통로와 연천 전곡에서 포천 이동 방면의 동서 교통로가 교차하는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높이 2~5m, 둘레 1~2km정도 되는 성벽이 불연속적으로 남아있다. 조사 결과 3~5세기 백제 시대에 처음 만들어져, 그 뒤 고구려와 신라 그리고 후삼국 시대에도 사용되었음이 밝혀졌다. 그중 백제와 신라가 가장 활발하게 이용하였다고 한다.
수정
포천시 영중면 성동리에 있는 태봉산에 쌓은 산성이다.
‘태봉성’ 혹은 ‘태봉산성’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첫 번째는 궁예(弓裔, ?~918)가 911년에 세운 나라 이름 ‘태봉(泰封)’을 뜻한다는 것이다. 궁예가 왕건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쫓길 때 급히 이 산성을 쌓았다는 설이 있다. 두 번째는 ‘태(胎)를 묻은 곳’이라는 설이다. 실제 이곳에 조선 순조(1800~1834 재위)의 아들 익종(효명세자, 1809~1830)의 태실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산성은 포천~철원 방면의 남북 교통로와 연천~포천 방면의 동서 교통로가 교차하는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높이 2~5m, 둘레 1~2km 정도 되는 성벽이 불연속적으로 남아있다. 조사 결과 3~5세기 백제 시대에 처음 만들어졌으며, 그 뒤 고구려와 신라 그리고 태봉 때에도 사용되었음이 밝혀졌다. 그중 백제와 신라가 가장 활발하게 이용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