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석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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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국문집필

기존 국문

이 건물은 조선 선조(宣祖) 20년(1587)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이 50세 되던 3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8월에 완공한 정자이다. ‘석문’이란 당호(堂號)는 정자 서쪽에 바위 둘이 마주보고 서 있는데 골짜기가 마치 문과 같으므로 지은 것이다.

석문정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ㄴ’자형이며, 처마는 홑처마이고 지붕의 정면 ‘一’자 부분은 팔작지붕이며, 뒤쪽 돌출부분은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이 건물은 ‘석문정’과 ‘석문정사’란 편액이 각기 대청 내부와 바깥쪽 도리에 걸려 있다. 자연과 벗하며 유유자적하면서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전력하고자했던 학봉은 자연경관이 뛰어난 이 곳을 매우 좋아했다. 동왕 22년 12월 일본통신부사로 뽑혀 이듬해 사신길에 오르기 전 그는 이 곳에서 ‘…(사행을 성공적으로 마친)뒤에 고향에 돌아와 내 죽도록 이 산에 은거하는 사람이 되리[然後賦歸來 永作山中人]’라는「제석문정사(題石門精舍)」시(詩) 한 수를 적고 떠났다. 그러나 이 곳에서 말년을 보내려 했던 그의 바램은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이루어지지 못했다.

수정 국문

초고

석문정은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학자 학봉 김성일(鶴峯 金誠一, 1538~1593)이 선조 28년(1588)에 지은 정자이다. ‘석문(石門)’이라는 이름은 정자 서쪽에 서로 마주하고 있는 바위가 문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졌다.

김성일은 1568년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의 수제자 중 한 사람으로 경상도 지역 유림의 중추 역할을 하였다.

김성일은 말년에 학문을 연구하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한 장소로 쓰기 위해 이 정자를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신으로 일본에 다녀온 김성일은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하였으나,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그는 자신의 과오를 씻기 위해 경상도 지역을 돌며 의병 활동을 독려하고 군량미 확보에 전념하는 등 침략군과의 전쟁에 투신하였으며, 진주성에서 항전하다가 병으로 죽었다.

건물은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방향에서 왼쪽부터 온돌방과 나무판으로 된 문을 단 마루방이 있으며, 온돌방 뒤쪽으로 온돌방 하나를 더 놓아 ‘ㄱ’자형의 평면이 되었다.


  • 본채에 속한 온돌방의 측면에 돌출되어 있는 지붕은 건물 전면부에 연장된 지붕과 연결된다. -> 건물의 정확한 평면 확인 필요
  • 현재의 건물 기단부는 후대에 정비된 것으로 보이며, 돌의 색으로 보면 비교적 최근일 것으로 보이나 언제 수리되었는지는 검색으로 확인되지 않음.
  • 이 집의 대공(보 위에 설치해 보와 도리를 받쳐주는 부재) 형식은 17세기 이전의 오래된 건물에서 찾아볼 수 있다.
  • 대청 안에는 ‘석문정’ 편액이, 바깥쪽 입구에는 ‘석문정사’ 편액이 걸려있다.
  • 지붕은 앞면 ‘ㅡ’자 부분은 팔작지붕으로, 뒤쪽 돌출 부분은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1차 수정

석문정은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학자인 학봉 김성일(鶴峯 金誠一, 1538~1593)이 선조 20년(1587)에 지은 정자이다. ‘석문’이라는 이름은 정자 서쪽에 서로 마주하고 있는 바위가 문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졌다.

김성일은 안동 천전리 출신으로 선조 1년(1568)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주요 관직을 역임하였다.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의 수제자 중 한 사람이며 경상도 지역 유림의 중추 역할을 하였다.

김성일이 청성산 중턱에 석문정을 지은 것은 권호문(權好文, 1532~1587)과의 인연에서 비롯되었다. 두 사람은 이황의 문하에서 같이 공부하며 깊이 교유하던 사이였다. 권호문은 명종 16년(1561)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고, 명종 21년(1566) 청성산에 연어헌을 짓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선조 18년(1585) 김성일이 관직에서 잠시 물러나 고향에 머물렀을 때, 권호문에게 청성산의 일부를 내어줄 수 있겠냐는 편지를 썼고, 권호문이 이에 흔쾌히 응하였다. 두 사람은 자연과 벗하여 함께 말년을 보내려 하였으나, 석문정이 완공되기 한 달 전 권호문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김성일은 권호문을 그리워하며 “머리 돌려 옛날 놀던 곳을 바라보다, 들판에서 젓대 울어 홀로 누에 오르네”라는 시를 남겼다.

석문정은 왼쪽의 온돌방과 오른쪽의 마루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온돌방 뒤쪽으로 온돌방 하나를 더 놓아 전체적으로 ‘ㄱ’자형을 이루고 있다. 앞면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돌출된 뒤쪽은 맞배지붕을 올려 독특한 형태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