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산청 대포리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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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이중의 기단 위에 삼층의 탑신을 갖춘 신라의 전형적인 석탑이다. 몸돌은 옥신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구성되었는데 일측 옥신은 이·삼층에 비하여 높게 만들어졌다. 지붕돌의 아래에는 네줄의 지붕 주름을 만들었으며 현재 상륜부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이 석탑은 파손되어 전해지던 것을 1989년에 복원하였는데, 원형의 사리공이 있던 본래의 일층 옥신은 파손이 심하여 새롭게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몸돌의 비례가 알맞게 되어 있어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수정 국문

초고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상징적인 조형물이다. 모든 탑이 진신사리를 모신 것은 아니지만,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 신앙의 대상이 된다.

대포리 삼층석탑은 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오랫동안 무너져 있었던 1989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탑은 2단의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머리장식은 남아 있지 않다. 기단의 모서리와 중앙에는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는데, 아래층 중앙에는 2개가 있고 위층에는 1개만 있다.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도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으며, 지붕돌은 4단의 받침을 두었다.

1층 몸돌의 위쪽에 사리를 보관하기 위해 만든 원형의 구멍이 있었다고 전한다. 도굴로 인해 부재가 크게 훼손되었고, 이에 복원하면서 부재를 새로 만들어 끼웠기 때문에 지금은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없다.

석탑 바로 앞에는 석등의 하대석이 남이 있으며, 주변에서 기와 및 도자기 조각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이곳에 사찰이 있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지만, 이곳에 있었던 사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1차 수정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대포리 삼층석탑은 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오랫동안 무너져 있었던 1989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탑은 2단의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머리장식은 남아 있지 않다. 기단의 모서리와 중앙에는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는데, 아래층 중앙에는 2개가 있고 위층에는 1개만 있다.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도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으며, 지붕돌은 4단의 받침을 두었다.

1층 몸돌의 위쪽에는 사리를 보관하기 위해 만든 원형의 구멍이 있었다고 한다. 도굴로 인해 부재가 크게 훼손되었고, 복원 과정에서 부재를 새로 만들어 끼웠기 때문에 지금은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없다.

석탑 바로 앞에 석등의 하대석이 남아 있고 주변에서 기와나 도자 조각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사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탑은 2단의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머리장식은 남아 있지 않다. -> 탑은 상・하 이중기단과 3층 탑신부로 구성된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이며, 탑 꼭대기 장식인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다.
    • 탑의 문화재 가치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음 -> 이중기단에 3층 탑신을 갖춘 전형적인 9세기 탑으로서, 낮고 넓은 옥개석은 경남지역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2. 분야별 자문위원 2
    • 불탑은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축조물로, 불상과 함께 부처를 대신하는 상징물로 신성하게 여겨진다.
      대포리 삼층석탑은 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오랫동안 무너져 있었던 것을 1989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며, 주변으로 기와와 도자편 등이 발견되어 사찰터로 추정되나 이곳이 사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탑은 2단의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머리장식은 남아 있지 않다. 기단의 모서리와 가운데에는 버팀기둥이 새겨져 있는데, 아래층 가운데 버팀기둥은 2개, 위층은 1개만 있다. 각 층 몸돌 모서리에도 버팀기둥이 조각되어 있으며, 지붕돌은 4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낙수면은 얇고 편평하고, 추녀는 직선이다. 1층 몸돌의 위쪽에는 사리공이 있었다 하는데 도굴로 인해 부재의 훼손이 커 새 몸돌로 갈아 끼웠다.
      기단부의 구성, 몸돌과 지붕돌의 양식으로 보아 전형적인 신라석탑으로 이 시대의 중요한 역사적, 학술적인 자료로 평가된다.
  3.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대포리 삼층석탑은 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오랫동안 무너져 방치되었던 것을 1989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탑은 2단의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머리 장식은 남아 있지 않다. 기단의 모서리와 중앙에는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는데, 아래층 중앙에는 2개가 있고 위층에는 1개만 있다.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도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으며, 지붕돌은 4단의 받침을 두었다.
      1층 몸돌의 위쪽에는 사리를 보관하기 위해 만든 원형의 구멍이 있었다고 한다. 도굴로 인해 부재가 크게 훼손되었고, 복원 과정에서 부재를 새로 만들어 끼웠기 때문에 지금은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없다.
      석탑 바로 앞에 석등의 하대석이 남아 있고 주변에서 기와나 도자 조각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사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2차 수정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대포리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오랫동안 무너진 채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89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석탑 바로 앞에 석등의 하대석이 남아 있고 주변에서 기와나 도자 조각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사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탑은 2단의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머리장식은 남아 있지 않다. 기단의 모서리와 중앙에는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는데, 아래층 중앙에는 2개가 있고 위층에는 1개만 있다.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도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으며, 지붕돌은 4단의 받침을 두었다. 낮고 넓은 형태의 지붕돌은 경남 지역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특징이다.

1층 몸돌의 위쪽에는 사리를 보관하기 위해 만든 원형의 구멍이 있었다고 한다. 도굴로 인해 부재가 크게 훼손되었고, 복원 과정에서 부재를 새로 만들어 끼웠기 때문에 지금은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