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사천 우천리 도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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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니구산(해발 378m)의 말단부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경사 아래의 해발 60m 구간에 위치하고 있는데 예전에는 아래쪽으로 도로가 개설되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구룡저수지의 수변에 해당된다. 도요지가 자리잡고 있는 범위는 350m 길이에 폭이 100m 정도이나 상당부분 저수지 물아래에 잠겨 있다.

경남문화재연구원에서 학술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이곳에서 녹갈유와 흑갈유의 도기(옹기)를 제작한 가마터가 확인되었다. 그릇의 종류는 항아리, 병, 주전자, 사발 등으로 주로 생활용기들로 당시 일반인 들이 손쉽게 사용하였던 것들이다. 여기서 출토된 가마터는 길이 10m, 폭 70cm 정도와 길이 6m, 폭 120cm 정도 등 2기가 확인되었다. 가마는 벽체를 2~3차례 보강한 흔적이 있으며 유적내의 곳곳에는 상당량의 벽체편이 확인되어 다수의 가마터가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되나 민묘와 경작으로 인해 많은 가마터가 훼손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출토된 도기는 경남지역에서 학술조사를 실시한 도기가마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16세기 후반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수정 국문

초고

이곳은 주로 17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옹기를 주로 제작하던 가마터이다.

이곳에서는 2002년에 실시된 시굴 조사를 통해 벽체를 두세 차례 보강한 흔적이 남아있는 2기의 가마가 확인된 바 있다.

조사 당시 곳곳에서 가마의 벽체로 추정되는 구조물이 많이 확인되었지만, 이미 무덤과 경작지로 훼손되어 있었다. 현재 확인되는 가마터는 구릉을 따라 형성되어 있으며, 길이 약 350m, 폭 약 100m 가량의 범위에 해당한다. 그러나 1950년 구룡저수지를 조성하면서 수몰된 곳까지 가마터가 형성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 그 면적 또한 꽤 넓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발견된 유물들은 녹갈색 혹은 흑갈색이 유약을 발라 구운 항아리, 병, 주전자, 사발 등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던 그릇 종류가 대부분이다.

이 지역에서 출토된 도기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은 16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 지역 도자기 역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 『泗川 牛川里 陶窯址』(경남문화재연구원, 2005) 단행본 자료 있으나 인터넷으로 열람 불가 -> 확인 필요.
  • 가마터 면적에 대한 확인 필요 -> 기존 문안:350m 길이에 폭이 100m / 문화재청: 구릉면을 따라 길이 200여m, 폭 약 30m
  • 구룡저수지가 조성된 것이 ‘1950’년이라고 하므로, 2002년 조사는 노출된 구역만 이루어진 것으로 봐야 함.
  • 우천리 도요지는 1996년 8월 초 김남진이 발견하였다.

1차 수정

우천리 도요지는 조선 전기의 분청사기 가마와 조선 후기의 백자 및 도기 가마가 밀집해 있는 유적이다. 현재 남아있는 가마는 니구산(해발 378m)의 남서쪽 구릉 해발 60m 구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1950년 구룡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 수몰된 곳까지도 가마터가 남아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일대는 태토의 수급, 연료 확보, 생산된 물품의 유통 등에 유리한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어, 조선시대 전 시기에 걸쳐 도자기 전문 생산 단지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들어 발굴조사가 시작되었으며, 현재까지 도기 가마 4기가 조사되었다. 1호와 1-1호 가마는 천장이 붕괴된 상태였고, 2호는 절반 가까이 저수지 물에 잠겨 있는 상태였으나 천장이 무너지지 않아 비교적 원래의 모습을 잘 갖추고 있었다. 3호는 가까운 곳에 민묘가 조성되어 상당 부분 훼손되었으며, 남아있는 규모로 보아 길이 10m, 너비 7m에 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녹갈색 혹은 흑갈색 유약을 발라 구운 항아리, 병, 주전자, 사발 등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던 그릇 종류가 대부분이다. 출토된 도기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은 16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우천리 도요지는 조선 전기의 분청사기 가마와 조선 후기의 백자 및 도기 가마가 밀집해 있는 유적이다. 현재 남아있는 가마는 니구산(해발 378m)의 남서쪽 구릉 해발 60m 구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1950년 구룡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 수몰된 곳까지도 가마터가 남아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일대는 태토의 수급, 연료 확보, 생산된 물품의 유통 등에 유리한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어, 조선시대 전 시기에 걸쳐 도자기 전문 생산 단지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발굴조사가 시작되었으며, 현재까지 도기 가마 4기가 조사되었다. 1호와 1-1호 가마는 천장이 붕괴된 상태였고, 2호는 절반 가까이 저수지 물에 잠겨 있는 상태였으나 천장이 무너지지 않아 비교적 원래의 모습을 잘 갖추고 있었다. 3호는 가까운 곳에 민묘가 조성되어 상당 부분 훼손되었으며, 남아있는 규모로 보아 길이 10m, 너비 7m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곳에서 수습된 유물들은 녹갈색 혹은 흑갈색 유약을 발라 구운 항아리, 병, 주전자, 사발 등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던 그릇 종류가 대부분이다. 출토된 도기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은 16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2. 분야별 자문위원 2
    • ~ 이 일대는 태토의 수급, 연료 확보, 생산된~ -> 태토(胎土, 도자기를 만드는 흙 입자)의 수급, 연료 확보, 생산된~
      → 민묘(民墓, 일반백성의 무덤???)
  3.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2차 수정

우천리 도요지는 조선 전기의 분청사기 가마와 조선 후기의 백자 및 도기 가마가 밀집해 있는 유적이다. 현재 남아있는 가마는 니구산(해발 378m)의 남서쪽 구릉 해발 60m 구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1950년 구룡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 수몰된 곳까지도 가마터가 남아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일대는 도자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흙의 수급, 연료 확보, 생산된 물품의 유통 등에 유리한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어, 조선시대 전 시기에 걸쳐 도자기 전문 생산 단지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들어 발굴조사가 시작되었으며, 현재까지 도기 가마 4기가 조사되었다. 1호와 1-1호 가마는 천장이 붕괴된 상태였고, 2호는 절반 가까이 저수지 물에 잠겨 있는 상태였으나 천장이 무너지지 않아 비교적 원래의 모습을 잘 갖추고 있었다. 3호는 가까운 곳에 민묘가 조성되어 상당 부분 훼손되었으며, 남아있는 규모로 보아 길이 10m, 너비 7m에 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녹갈색 혹은 흑갈색 유약을 발라 구운 항아리, 병, 주전자, 사발 등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던 그릇 종류가 대부분이다. 출토된 도기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은 16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