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명화동 장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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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국문집필

기존 국문

광주 명화동 장고분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화동 170-5번지 일원에 위치하며, 북위 35°7'34", 동경 126°43'26" 지점에 해당한다.

장고분은 평면 형태가 앞은 네모지고 뒤가 둥근 소위 ‘전방후원형(前方後圓形)’ 무덤을 말한다. 명화동 장고분은 1992년 향토사학자 김희규씨가 국립광주박물관에 신고함에 따라 학계에 처음으로 알려졌다. 1993년 5월에 수습조사가 이루어졌으며, 그 후 1994년, 2010년에 봉분과 주위의 도랑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를 통해 밝혀진 규모는 길이 33m, 원부 높이 2.73m, 원부 직경 18m, 연결부 높이 1.87m, 연결부 폭 12m, 방부 높이 2.73m, 방부 폭 24m 이다. 봉분은 구지표(舊地表) 위에 점성이 강한 점토를 성토한 후 조성하였다. 매장시설은 원부의 서쪽에 치우쳐 축조된 굴식돌방(橫穴式石室)이다. 도랑은 봉분 둘레를 따라 U자형으로 조성되었으며, 서쪽은 민가로 인해 훼손되었다. 유물은 방부와 원부 연결부에 원통형 토기가 일정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었으며, 돌방에서 화살촉, 쇠도끼, 뚜껑접시, 금제이식 등이 출토되었다.

장고분의 축조연대는 6세기 전반 경으로 추정된다. 장고분은 형태가 일본의 지배계층 무덤인 전방후원분과 비슷하고, 출토 유물도 왜계가 일부 포함되어 있다.

수정 국문

명화동 장고분은 삼국시대인 6세기 전반 무렵에 만들어진 무덤이다. 위에서 보면 둥글고 네모난 봉분이 붙은 모습의 ‘전방후원형(前方後圓形)’ 무덤이고, 그 모습이 우리나라 전통 악기인 장고처럼 생겼다고 해서 ‘장고분’으로 불린다. 이와 같은 구조의 무덤은 일본의 고대 유적에서도 많이 발견되며, 고대 한국과 일본의 교류 관계를 보여주는 자료로 여겨진다.

이 고분은 1992년에 처음 알려졌고, 1993년과 1994년 두 차례에 걸쳐 조사되었다. 규모는 전체 길이 33m, 원형 부분 높이 2.73m, 원형 부분 지름 18m, 연결 부분 높이 1.87m, 연결 부분 폭 12m, 방형 부분 높이 2.73m, 방형 부분 폭 24m이며, 광주와 전라남도 지역에서 발견된 장고분 중 가장 작다.

조사 결과 원형 부분과 방형 부분은 동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원형 부분 아래에는 시신을 안치할 돌방을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도굴로 심하게 파괴되어 원래의 구조를 알 수 없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에는 금동 귀걸이, 쇠 화살촉, 띠고리, 접시, 경질토기 조각 등이 있다. 특히 주목할만한 것은 봉분의 가장자리에 원통형 토기 여러 개가 세워진 채 발견된 점이다. 원통형 토기는 원형 부분과 방형 부분을 잇는 연결 부분의 가장자리를 따라 배치되어 있었으며, 분구 주위에서 행해진 매장 의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